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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8일 월요일

개복치 엘리티즘

 최근 화두인 1심 판결에 충격을 받은 분들이 그것을 비꼬려고 '나는 왕년에/자식 교육 할때 이렇게 저렇게 했는데 이것도 범죄겠네?'라며 SNS 상에 자진신고(?)를 하는 모양이다. 수사기관에 인지가 안 돼서 그렇지, 인지되면 수사대상이 될 만한 일들이 대부분 맞다. 그분들이 풍자로서 말하는 '장관 자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은, 풍자도 유머도 아닌 무척 정확한 사실인 것이다.


물론 수사기관이 원래는 안 그러다가 한 명한테 엄정하게 칼날을 들이댄 것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공명정대하게 하지 않고 카드놀이 패 꺼내듯이 수사하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지적된 문제고 그 개혁방안도 논의되고 있으므로 여기선 자세히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원에서 선고된 형량이 과도하지 않냐는 논의도 할 수는 있다고 본다(다만 판결문 전체를 읽어 보신 분들은 변호인단의 재판 전략이 안 좋아서 형량이 세진 거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혐의들 자체가 뭐가 잘못됐느냐는 주장은 명백히 너무 나갔다.

판결 때문에 충격받아서 잠시 그러는 것만은 아닌 것이, 한창 의혹이 터지던 작년에도 이미 이런 얘기들이 무수히 나왔었다. 누구보다도 연구윤리에 민감해야 할, 대학 총장 출신으로 교육감 하고 계신 분까지도 논문 1저자 그렇게 받은 게 뭐가 문제냐고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꼼수에 대한 윤리적 선이 이리 보면 낮은 듯, 저리 보면 높은 듯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 혹은 가까운 사람이 할 때는 다들 하는 거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아니꼬운 사람이 걸리면 끌어내려야 하는 이중성 같은 게 있다. 전자가 개선돼야 함은 물론이고, 후자 역시 연예인 등에게는 가혹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정치 유관심층에서 근 1년 넘게 진영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이슈 때문에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다. 이런 복잡하고 아픈 이야기들을 다 걷어내면, 나는 이 이슈에서 도출되는 일관되고 간명한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꼼수를 별거 아닌 걸로 여기는 사회 속에서 좀 잘나간다 싶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업보로 인해 예정된 몰락을 맞고, 그것을 아쉬워하는 동료와 지지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멋없는 모습과 숨겨진 욕망을 드러낸다. 그 누구에게도 좋을 게 없는 한국의 이러한 품격없는 엘리티즘, 쉽게 그 실체가 드러나고 몰락할 수밖에 없는 개복치 엘리티즘은 윤리의식 미비의 결과이자 계속되는 정치혐오의 원인이다. 정치로 제도를 고쳐서 윤리를 세워야 함을 고려하면 이는 지독한 악순환이다.

비겁한 성공이 아예 제지되지 못하는 사회보다는, 진실이 드러났을 때 명예와 실권을 잃는 사회가 분명히 낫기는 하다. 그걸 가능케 하는 다이나믹하고 민주적인 사회분위기는 한국이 가진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그것을 추동하는 정서가 연예인이나 유튜버 등에겐 지나치게 가혹하게 작용할뿐더러, 정치의 영역에서도 정책들이 아닌 정치인들에 대한 무한한 검증과 폭로, 덧없는 몰락과 멋없는 옹호 일변도의 싸이클이 연일 뉴스 메인을 장식하는 지금의 이런 사정을, 나는 결코 덮어놓고 건강하다고는 못하겠다.

한창 의혹이 터지던 시절 이미 지적했듯, 저것보다 더욱 성숙한 민주사회의 모습은 소위 엘리트들이 아예 그런 방식의 성공을 시도하지 않고 비자발적으로 포기하도록 인간적 미덕과 제도적 견제장치가 자리잡은 사회다. 그럴수록 국민들의 높은 정치참여 의지가 소모적이지 않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다.

제도를 비껴가는 꼼수가 아닌 윤리의 철저한 준수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미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여러 부문에서의 윤리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더 많이 준수되기 시작한다면, 지금의 이 사태가 그나마 발전적인 방향으로 끝을 맺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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