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비슷한 얘기 했던 것 같긴 한데, 우파 쪽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대해서 민주당쪽에서는 꾸준히 가볍게 비웃기만 하고, 뺏기면 안된다라는 진지한 걱정도 대체로 별로 안해온듯싶다. 자유민주주의를 특별히 적극적으로 말 안해도 당연하게 자신들이 담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애초부터 뉴라이트적 구호라고 인식하고 실제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인해, 민주당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부각될 일 자체가 크게 없었다. 또한 정부의 여러 정책이 자유와 반대되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 대해서도 해석이 들어가면서, 이제 대중적 인식상 자유라는 단어는 반쯤은 실제로 우파가 담지하는 가치가 돼버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소위 인민민주주의를 대립항으로 놓으면서 시민자유와 기업활동의 자유를 과잉되게 등치시키는 뉴라이트적 도식,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기독교정신과 근본적으로 연결돼있으며 자신들이 그걸 수호한다고 여기는 극우개신교적 도식 등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또한 보수정권에서 전반적인 시민자유가 증대되기는커녕 퇴행한걸 다수가 목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의 본성상 왜곡된 인식이 축적되면 실재를 유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유발된 실재는, 정확한 인식에 근거한 실재보다 여러 면에서 해롭다. 그러한 사태를 막으려면 정확한 인식을 적극적, 선제적으로 보여주고 실현해야한다. 그러나 단순히 '설득에 소극적인' 걸 넘어서, 책임자들과 지지자들에게서 자유를 둘러싼 개념투쟁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이 실제로 부족한게 맞고, 합의도 안돼있지 않나 하는게 요즘의 생각이다. 투쟁의 대상이 사라지고 건설자의 입장이 되니까 그런 합의의 부재가 드러난 것은 아닌가.
민주당을 좌파라고들 하지만 결국 현재 지형에서 기본적으로 택할수 있는 것은 리버럴일거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깔아둔 방향성 역시 그랬다. 그러나 현재에는 (그리고 차기까지도) 리버럴을 자신있게 표방하는 태도나, 국제적으로 확실히 그렇게 평가받을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액션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각에서 과도하게 폄하하는 것과 달리 전세계적으로 봤을때 제정신인 민주국가에 속하는건 맞을거고, 행정력에 의거한 동원을 민주적 권위가 아니라 반민주적 권위주의로 생각하는 서구권 일각의 평가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확고한 액션을 통해 한걸음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것.
보편가치로서의 자유를 둘러싼 논의는 확장성이 많아서 결국 국가의 전반적인 정책기조와 연관이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큰 그림이 있다기보다는 단기적인 정책 일변도로 흘러간 점도 아쉽다. '이념적이어서' 문제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일관되고 정합적인 이념적 기조가 아니며 전문가집단에게 지지받지도 못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불신, 혼란과 피로감을 많이 준것같다.
우파가 자유를 언급할 때 택도 없다고 비웃지만 말고, 혹은 자유라는 단어를 실제로 껄끄러워하지 말고, 정확한 개념과 확실한 기조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할 의무가 민주당 세력에게는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민주당에 남는게 무엇인가. 직업정치인과 지지자를 막론하고 퍼져버린 질낮은 비웃음과 어설픈 구애를 두 축삼아 서서히 퇴행해가고 말것인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은 애초부터 그런 곳이 아니라면서, 민주당에게 그런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기대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약 20년간 민주당 주류에서 꾸준히 쌓아온 논의는 실제로 명백히 그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본다. 막연한 기대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계승의식으로 보나 현재적 과제로 보나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역량도 의지도 안보이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안할 거라면 아예 대안을, 그중에서도 현대국가에서 실제로 잘 작동할수 있는 대안을 내놓던가.
이건 윤석열 전 총장의 출마선언을 보고나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 검찰총장 취임 시에 나온 대검 대변인실 설명자료에서도 예고되었고 이번 출마선언에서도 직접 드러났듯이, 윤석열 총장의 자유에 대한 인식 역시 그리 건강하다고 보이지는 않으며, 위에서 말한 뉴라이트적 도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걸로 의심된다. 그러나 자유라는 가치를 둘러싼 개념투쟁이, 그저 '먹금'의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민주당쪽의 첨예한 인식은 반드시 필요하겠다. 윤석열의 말을 빌리자면 "문명국가의 보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것이다.
윤석열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발언이긴 하지만 나는 살짝 비틀어서 민주당에게 저걸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 마스크 5부제를 보고 공산주의 배급이라고 하는식의 결과적으로 틀린 과잉된 언사들만이 비판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국제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에서도, 여러 의구심들을 도매금으로 극우취급 하지 말고, 아닌건 아니라고 확실히 함과 동시에 적극적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한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 지금으로서는 단지 설득만이 부족한게 아니라 실제로 합의도 역량도 부재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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