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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7일 화요일

백지고발장 의혹: 수사기관의 모럴과 민주적 견제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실이라면'이라는 따옴표가 너무 많이 붙은 언설은 표출하지 않는게 좋을 듯하여 참아 왔으나 김웅 의원의 매우 석연찮고 오락가락하는 대응을 보며 결국 몇 자 적어본다.


제기되는 백지고발장 의혹이 사실이라면, 선거 국면에서 반짝 공격하고 말 이슈가 아니다. 중대함의 정도를 떠나 수사기관의 공권력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 일반적인 네거티브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문제인데, 나는 이런 문제에 늘 관심이 있다보니 관심이 안 갈수가 없었다.


윤 당시 총장까지 개입을 했는지 어쩐지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는걸로 알아서 일단 그건 제껴두고, 고발장이라고 하는 문건의 존재사실과 전달사실이 있다면 그게 왜 문젠지 핵심만 얘기해보고, 그리고 그런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 내 생각도 써보려 한다.


고발장이 야당에 전달됐다는 보도를 봤을때 처음에는, 물론 있어서는 안되지만 자주 일어나는, 검찰의 수사정보유출을 얘기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고발장은 원래 검찰 바깥의 누군가(고발인)가 써서 검찰에 접수를 하는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손 검사인지 누군지 모를 검찰 내부인사가,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고발인 이름이 비워진 고발장 (소위 백지고발장) 을 직접 써서 검찰출신 정치인인 김웅에게 전달했다는 게 의혹의 내용이다. 이에, 고발인 이름을 채워넣어서 검찰에 접수하도록 검찰이 사주 한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것.

그리고 김웅 현 의원은 고발장을 작성 했다, 안했다, 모르겠다 등등 상당히 오락가락하며 수상한 해명을 하고있다.
(어떤 보도에서는 실제 그 백지고발장과 내용이 동일한 고발장이 대검찰청에 접수되었다고도 한다. 이부분은 찾아봐도 정확한 얘긴지는 모르겠다. 접수돼서 영향을 미쳤냐 안미쳤나에는 사실 관심이 크지않다. 그거에만 천착하게 되면 본질을 잃는다)

고발장과 관련해서 이런 프로세스가 존재한다면 수사기관이 원하는대로 사건을 기획할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사건을 기획한다는 말이 너무 세게 들리는가? 하지만 사태의 적확한 묘사인걸 어떡하는가. '어차피 수사 해야될, 수사 하게될 일이었다'라는 걸로는 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프로세스가 작동을 한다면, '어차피 해야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까지 작동하는 것은 정말로 쉽기 때문이다. 공적 권위가 행사될때는 그런 잠재적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가 되어야 한다.

왜 계속 이런일이 생길까? (마침 글을 쓰면서 뉴스를 보다보니 검찰이 이재명 관련 수사를 무리하게 하면서 사람들을 부적절하게 압박했다는 내용의 KBS 보도도 있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수사기관 특유의 모럴에 있지 않나 싶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수사기관의 구성원들의 모럴은 일처리에 있어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하면 안된다"며 자중하는 느낌보다는, "되어야 하는 일을 밀어붙여서 되게 해야한다"는 느낌에 가까워보인다.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총장이 여당과 처음 대립각을 세울때 여당 지지자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총장의 사퇴 이전까지의 행보가 어느정도 일관적으로 이해가 된다고 본다.

여하간 그런 모럴이 깔려있다보니 목적 달성을 위해 조금만 무리하거나 견제의 균형이 깨지면, 원칙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기 쉬울거라는것.

물론 수사기관은 온갖 꼼수를 쓰는 험한 양반들을 많이 다룰테니까 그런 태도가 일정부분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소위 검찰개혁의 과정에서 그런 태도가 완전히 깎여나간다면 손발이 잘리는 느낌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적절하게 쓰였을때, 혹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더라도 절차적 문제가 있었을 때는 그걸 당연히 철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일반의 법익이 심대하게 침해되게 된다.

더구나 이번 건은 산업스파이 잡는 것마냥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일도 아니고, (사실이라면) 야당 정치인에게 여당 정치인을 고발하도록 한것이라 명백히 부적절한 정치개입인것.

언론의 보도들도, 의혹을 충분히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 지인 중에는 정치뉴스 자체는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소위 정치덕후 내지는 고관심층까지는 아닌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도 김웅만 계속 언급되니까 '야당 동료 의원들끼리 고발을 기획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더라. (아마 김웅은 당시 의원도 아니었을거다) 의혹이 제기되는 사실관계는 검찰이 '너네 이름으로 한번 내봐라'라고 고발장을 미리 써놓았다는 거라, 공권력이 할수있는 일의 범위와 관련해서 질적으로 저거랑은 완전히 다른데 말이다.

이렇다보니, 의혹의 사실여부는 물론 더 봐야겠지만, 제기된 의혹 내용을 좀더 정확히 전달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그래야 의혹제기가 거짓일때 생기는 책임도 더 클것 아닌가.

여하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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