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대한 각종 루머(루머라고 해두자ㅎㅎ)들이 나오는 이 시점에 약간 엮어볼 수 있는 글을 공유해본다(https://www.facebook.com/yongjae.oh/posts/1143266179098419. 시공의 폭풍: 서사성의 붕괴와 탈맥락적 조합). 사실 반 장난식으로 썼지만 마음에 드는 글이라서 꺼리가 있을 때마다 다시 올리는 것이다.
원래의 글에서 간과된 점을 덧붙이자면, 기원 내지는 현재의 담지자를 서로 달리하는 문화적 상징들이 마음껏 조합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만큼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단군 신화의 내용을 현실에서 일어난 곰 세력과 호랑이 세력의 관계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고 해설하곤 하던데, 이 역시 그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마블의 MCU에서 어벤져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하여 인피니티 사가라는 거대한 기획이 성공하면서 나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강한 흥미를 느꼈다. 히어로들의 서사와 비중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서는 책임자의 결정도 있었겠지만, 각자의 취향을 가진 기획자들이 토론하며 수많은 조정을 거쳤을 것이다. MCU 영화 속 수퍼히어로들 간의 파워 밸런스 및 인간관계와, 그들을 창작하는 스튜디오 직원들 사이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들의 관계'를 이룬다. 말하자면 다층 연결망(multiplex network)인 것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어떤가. 일단 루머의 내용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소니에 속해 있는 스파이더맨이 MCU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이전에 애초에 원래 마블 캐릭터인데 소니가 가지고 있게 된 것 자체가 '무대 뒤'에서의 숱한 이해관계 조정의 산물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물며 이번에 나오는 출연 루머들이 사실일 경우 이벤트성 출연이건 보다 본격적인 세계관 통합이건간에 무척이나 깊은 수준의 줄다리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현실에서 각 주체들이 성공을 거두어왔느냐 아니냐에 따른 발언권의 차이가 여기에 동적으로 개입해왔음도 명백하다.
전작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극중 빌런이 주인공을 비롯한 히어로진영을 속임에 따라 영화 제작진도 관객들을 속이게 되는 '이중의 속임 구조'를 통해, 사실적 가상에의 immersive한 경험을 의도하는 영화 제작행위의 본성을 빌런의 서사에 그대로 이식하여 유쾌하면서도 소름돋게 풀어내었다. 이어서 후속작인 본작에서는 현대 영화가 가지는 대중문화 산업으로서의 특성이 인물과 서사에 직접 (그리고 필연적으로) 반영됨으로써, 과거작들에 찬사를 보내며 관객들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일종의 미학적 실험이 전작에 이어서 재차 감행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대 대중문화에서 대상들의 질적인 차이가 지워지고 무한히 재조합되는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가 형성되는 것은 (한국의 야인시대 혹은 영미권의 Bully Maguire를 필두로 한 '합성' 문화에서 보듯이) 불특정 다수 대중들의 유희 본위의 협력으로 가능해지는 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 유희를 넘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다른 국면, 어쩌면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국면을 요한다.
하필 상술한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의 대표사례인 Bully Maguire 밈 역시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척 인기있는 시리즈기에 대중적 밈의 소재도 되며 실제 산업적 콜라보레이션도 가능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는 그저 '하필'이 아닐지도 모른다. 루머들이 사실이라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해당 밈의 소스를 제공한 소수의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하는 '합성물 중의 합성물', '합성물 아닌 합성물'로서의 유일무이한 성격을 가지며, 밈에 대한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진본의 아우라를 귀환시킬 전망이다.
이것은 오직 현대화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디지털을 추동하는 리얼월드의 특수한 협력의 조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해진다. 권리의 아나키 상태에서라면 특수한 협력이 없어도 무한한 재조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서로 다른 것들을 불화 없이 엮어낼 힘을 가진 현대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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