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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금요일

5.18을 보는 관점: 강요되는 극복과 보편적 기념 사이에서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임행곡 가사를 보면서 부른 것이 뭐가 문제냐는 옹호에 큰 틀에서는 동감하지만, 옹호들 사이에서도 결이 좀 나뉘는거 같다. 그 중에서 임행곡이 잊혀져야 비로소 건강한 민주주의라는 의견들은 특히나 좀 미묘한 것 같다. 특히 그것이 민주당쪽에서 나올경우 더욱 그렇다. 외웠냐 안외웠냐로 공격하며 상징자산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하는 정치는 지양되어야겠으나, 몰라도 된다라는 친민주당 쪽의 옹호들 중 꽤 많은 수에도 ㅡ특히 뉘앙스에 따라서 하술할 강박적 쿨함이 느껴질 경우엔ㅡ 전적으로 동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수 진영도 임행곡을 거리낌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취하며 신의를 확보하게 되어야한다. 민주당 진영이 5.18의 가치를 부르짖는것 그 자체로 정치적 효용을 얻을수 없게 되어야 한다. 요컨대 5.18 아픔을 지워내고 극복하고 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야한다.


보수 쪽에서 호남에 열린 태도를 취하는 분들 중에서도 5.18을 보편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고 극복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그 미묘한 차이는, 호남이 보수정당에 표를 안 줘 온 현상을 '이상한', '비정상적인' 일로 취급하는지 여부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호남뿐만 아니라 그 어디의 표심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 늘 지적하듯이, 이상하다는게 사실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아픔을 극복해야 하는데 과거에 묶여 멈춰있다는 식의 저런 주장들은, 하루빨리 5.18 같은 정신적(?) 가치를 철회하고 자신들을 지지해 주면 좋겠다는 호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강요되는 망각, 강요되는 극복에의 요구는 매우 시혜적이다.


물론 일각에서 ㅡ주로 민주당을 관성적으로 옹호하기 위해ㅡ 호남인들은 5.18 정신과 같은 가치 본위의 현명한 투표를 한다 라며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나는 5.18에 대한 성역화가 있다며 과도한 불만을 토로하는 극우(내용적인 걸 떠나 성역에 대한 반감이라는 형식 면에서)적 주장을 매우 싫어한다.


그렇지만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이 5.18 정신을 자신들이 필연적으로 담지한다고 착각하고 관성적으로 외치며 활용하다가 문제를 일으킬때는, 혹은 기념의 과정에서 헛발질을 할때에는 아 저러니까 성역화라고 하는구나, 빌미를 주는구나 싶어 마찬가지로 화가 나기도 한다.


물론 그때 잘못은 그러한 정치인들에 물어야 할것이며, 그들을 지지하거나 선출한 ㅡ혹은 그렇다고 평면화되어 간주되는ㅡ 호남 유권자들을 타자화하며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일테다. 늘 말하지만 이것은 나쁜 일이기 이전에,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일각에서의 불만과 달리, 호남의 유권자라는 집단을 탓하는 일의 원리적 불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은 성역화라고 할 수 없다.


호남정치가 꼭 이념적 가치본위의 투표냐 하면 당연하게도 그렇지도 않다. 지역조직에서 민주당이 강세라 굉장히 많은 정치적 스펙트럼이 민주당 깃발 아래 모여있는 데서 오는 특수성 같은 게 있다. 진영을 떠나 각 지역의 정치적 특색을 '보편성 속의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타자화, 희화화 없는 제대로된 관점이 수립될수 있을것이다.


아무튼 말하고 싶던 건, 민주당 지지층 일각에서 90년대생인데 뭐 어떠냐고 옹호하는 것도, 그 구체적인 뉘앙스에 따라 다소간에 강박적인 쿨함으로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적인 쿨함은 의도치않게 위와 같은 극우로부터의 '강요되는 극복'에 동조하는 효과를 낼수 있으므로 경계해야한다.


가사를 봤느니 안봤느니 자체가 좀스럽고, 90년대 생이라면 모르는게 당연하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나는 사실 생각이 좀 다르긴 하다. 난 민주당에서 박지현 위원장만큼 올바른 언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근래에 없다고 보고, 이런 논란은 부당한 공격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외부자적인 위치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겠으나 그 또한 행보와 역량에 의해 가능한 포지셔닝일테다.


그래도 (비록 마이너한 디테일이긴 하겠으나) 이런 논란이 안 생기게끔 한번더 숙지하고 불렀다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근데 뭐 계속 안보고 부르다가 잠깐 본것이 캡쳐된 것이라고 하니 결국 다소 좀스럽게 공격을 한 쪽에 비판의 화살을 돌리게 되기는 한다.


잠깐 내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학부시절에 지나가는 킹반학우였기 때문에 대학가에서 흔하다는 민중의례도 직접 참여해본적 없는것같다. 그치만 일종의 너드적 취미 + 음악 찾아듣는 취미로 소련, 미국 등의 국가를 찾아 들어 보는거랑 기본적으로 비슷한 선에서, 그러나 불과 수십년전 우리나라에서 있던 일에 대한 구체적인 맥락을 아는 입장에서 조금 더 각별한 마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여러차례 들어보고 잘 외우고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홍콩 민주화운동에서 임행곡이 불리었다길래 기억에 더욱 선명히 남아있다.


암튼 외워서 부르든 보면서 부르든, 그렇게 보편적으로 기념하게끔 추인하겠다, 혹은 추인에 협조하겠다는 정치적 태도가 훼손되지 않으면 아무렴 상관없지 않을까 한다. 특히나 반말 써가면서 고압적으로 비난하는 일부 민주당 코어 지지층의 태도는 정말 불쾌하다. 자신들의 당 내에서 비대위원장 개인을 공격하느라 상징자산을 소모시키지 말고, 5.18의 헌법전문 수록을 비롯한 보편적 기념을 향해 묵묵히 힘써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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