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entify라는 단어에는 어떤 객체를 다른 객체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하고 이름을 붙이는, 사유의 보편적 기본단위와 관련되어 있는 굉장히 많은 맥락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한국어로 번역한다고 생각해보면 굉장히 난감할때가 많고, 여러가지 다른 뜻, 심지어는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뜻이 섞여 있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롭다.
먼저 이 단어에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어떤 것의 특징을 잡아내서 '감별'하고, '정체를 확인'한다는 의미가 있다. 아마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뜻일 것 같다. 예컨대 용의자를 특정하거나, 정체불명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을 identify라고 한다.
그런 한편, identify는 서로 다른 A와 B의 공통점을 찾아서 '동일시한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듯하다. 물론 그럴 때에 equate가 더 널리 쓰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분명히 identify도 이렇게 사용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적어도 내가 느끼기로는 위 두 가지 의미가 정반대에 가깝지 않느냐는 거다. 서로 구별되지 않던 것 사이에서 특정한 것을 지목하여 신원을 확인하는 것과, 서로 다른 것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것.
철학에서도 비슷한 게 있다. 인식능력에 의해 세상을 열심히 규정하다 보면 모든 것들이 분절되고 나뉘면서 이름이 붙게 될텐데, 내 직관에서는 이를 모든 것들이 '비동일화'된다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러한 과도한 계몽주의적(?) 합리성을 비판하고 원초적인 커다란 덩어리를 귀환시키는 작업을, 나는 '동일성'을 귀환시킨다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제로는 반대에 가깝다. 합리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아도르노 같은 사람의 텍스트를 읽을때, 혹은 학부 2학년 시절 김영 교수님의 <예술과 과학>을 수강할때 (이 수업에서는 레퍼런스가 일일이 제시되지 않았던지라 누구의 이론인지는 잘 모른다) '동일성'과 '비동일성'이라는 키워드가 종종 등장했는데 이것 때문에 좀 헷갈렸었다.
내 뇌피셜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음의 두 방식으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다.
먼저 동일성/비동일성, 그리고 보편성/특수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이 문제는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작동을 '개별자들의 특수성을 뭉개서 보편자로 이행시키는' 작업으로 보느냐, 아니면 개별자를 세밀하게 쪼개고 나누어서 '보편적으로 이해가능한 형태의 지식으로 정리하는' 작업으로 보느냐와 관련되어 있다. 나는 세밀하게 나눠볼수록 오히려 보편성을 향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인지 후자 쪽으로 생각을 했었는데, 아도르노 같은 사람이 계몽주의적 합리화가 사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할때는 당연히 전자 쪽으로 생각을 했을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어떤 거시적이고 원초적인 덩어리로서의 보편성과, 미시적이되 어디에나 잠재하는 원리로서의 보편성의 차이도 작용하고 있다. 자못 신비주의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원초적인 커다란 덩어리' 같은걸 생각하고, 그것도 보편성 아닌가? 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논의가 꼬이고 혼동된것이다. 그러한 덩어리를 분절하고 개념화하고 명명하는 과정을 나는 특수화라고 생각했고, 엥 근데 분절화되어 이해된, 곧 지식으로 포섭된 것이야말로 보편성 아닌가? 이렇게 된것. 이러한 도식에서는 합리성은 곧 '이름 붙이기'다.
내 전공분야에서 계산을 해서 이론을 전개할때도 identification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된다. 수식을 전개해서 여러 가지 항들을 얻었을 때, 각 항의 물리적 의미를 바탕으로 이름을 붙이고 표기를 정하는 과정을, 그 항들을 각 물리량으로 identify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합리성을 '이름 붙이기'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좀더 커다랗게 봐도, 적법하게 보존되는 양에 이름을 붙여서 중요하게 다룰 때와, 그렇지 않은 애매모호한 양에 이름을 붙일 때는 이론의 완성도와 아름다움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된다.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일 테다. 총체적인 chaos를 특정한 규율에 따라 질서있게 통제해야만 오히려 '이름을 붙일만한' 일관된 현상들이 나온다.
반면 상술한 아도르노 같은 경우에는 합리성에 의해 포섭되지 않은 채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개별자(~특수자 -> 비동일성)로 보고, 그러한 것들이 합리성에 의해 가공되고 특징이 지워지고 보편자로 승화되는 과정을 identification 즉 동일화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에서는 합리성은 곧 '이름 지우기'다. 합리화된 규율에 따른 질서있는 통제는 존재자들의 개별성을 억압하고 이름을 지우게 된다.
여전히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원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였던, identify의 두 가지 의미 관련해서 살펴보자. 여러 가지 사물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고 특정한 사물을 지목하여 '감별'하는 것은, 사실 그 특정한 사물을 무언가와 '동일시'하는 거라고 보면 위의 혼동이 해결된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어떤 사물을 그 사물의 이데아, 즉 그 사물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전형적인 특성들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사물을 감별해낸다고 보는 것이다.
즉 identify의 가장 제너럴한 인식론적 의미는 '공통점'을 뽑아내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어떤 사물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을 '이데아와의 동일시'라고 본다면, 신원 확인 과정을 identify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반면 신원 확인 과정을 서로 관계맺고 있는 사물들 사이에서 '차이점'을 부각해서 특정한 사물만을 '떠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identify라는 단어는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게 내가 느꼈던 이상함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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