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유용한 곳에 그대로 갖다 써서 증명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어디서 처음 퍼졌는지 서로서로 거의 비슷한 워딩으로 무척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경험상 이런 건 우연히 다들 비슷한 논리를 생각한 게 아니라 공통된 소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그럼에도 베낀 숙제와 직접 한 숙제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그 소스는 주로 정치쪽 유명 스피커들이다. 사람들이 어디어디 방송에서 봤다고 얘기를 하지 않고 마치 원래 알고 있는, 혹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안 보일 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에 원래 젤렌스키가 누군지도 몰랐을 사람들(나 포함)이, 푸틴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에 젤렌스키한테 무능하다고 조롱하는 얘기를 어디 방송 같은 데에서 듣고 왔는지 다들 똑같은 얘기를 읊던 장면도 생각난다.
그때 그런 부자연스러운 얘기가 널리 퍼지게 된 건, 당시 대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젤렌스키에 비유해서 공격하기 위한 무리수였던 걸로 추측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인 반서방주의와 러시아에 대한 재조명을 표방해오던 대안적 진보 스피커들이 탑승해서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염수를 유용하게 쓰는 것은 차라리 퍼포먼스성으로 일부러 몇 개 하려면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 대대적으로 '실제로 써라', '쓰자고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유해한게 맞을 것이다'라는 주장에는 내용 면에서, 그리고 효과 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내용적인 부분을 보면, 이 오염수라는 것이 양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관심 있는 스케일에서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개념 자체를 얘기할 수 없는, 어쩌다 생겨났고 한번 소모되면 끝인 말 그대로 폐기물같은 물 덩어리이지 수자원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실제 사회 및 산업 각 부문에서 굳이 기존 공급처를 놔두고 그걸 쓰자고 전환해서 일이 그런식으로 돌아가게 될 하등의 이유도, 프로세스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해서 증명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형식적으로 그 말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통쾌한 기분을 받고 끝나는 일종의 사이다 같은 것이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정합적으로 요구됨으로써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인데, 원전 관련 기관 및 회사들의 신뢰 확보는 그런 식의 질료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하라고 해서 진짜로 하더라도, 비용은 비용대로 낭비하고 코믹한 밈만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건 늘 왜 코믹하게 느껴질까? 신뢰의 확보라는 문제는 지극히 세밀한 것인데 비해서, 질료적(?) 퍼포먼스를 통한 증명은 전근대적이고 무대뽀 같은 느낌이 있다는 걸 국민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결국 사고와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국민 상대로 최대한 공개하고 설명해서 (이걸 안 한 게 아니고 나름대로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데 왜 와닿지 않는가에 대한 답답함은 백번 이해된다), 우리가 국민의 편이다 라는 신호를 실질적 실천을 통해서 발신하는게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쪽의 덧글들을 보니 비판의 방향을 또 틀게 되기도 한다. 사실관계와 숫자를 도대체 언제까지 설명해야 하냐며 국민의 무지몽매함(?)을 탓하는 부적절한 태도들이 많이 보여서 그렇다. 소통을 저해하고, 국민 편이라는 느낌을 못주는 이런 태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전문가 집단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늘 겪는 문제점 중에 하나다.
환멸을 표하는 그러한 태도 속에는 사실 '아무튼 나는 맞는 말 했으니 됐다'라는 느낌의 자기만족적 통쾌함도 섞여 있게 된다. 이는 상술한 반대진영의 태도와 겹쳐보이는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설득의 대상인 국민들을 도리어 탓해 버리는 그림이 나오며, 이로써 정작 설득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이렇다 보니 양 쪽 모두 덮어놓고 편들기 어렵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 같다. 게다가 국내 문제라면 사실관계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워보면 되는데, 외교적인 문제다 보니 국가간의 체면 및 실익 문제까지 많이 얽혀 들어와 버려서 더 그런 듯하다. 결국 일본이 은폐, 거짓말 등등 지나치게 불투명하게 나왔던 것도 실제 위험성과 별개로 명백히 잘못됐다고 의견이 모이는 듯하고, IAEA가 오염수에 대해 아예 직접적인 검증도 할 것 같으니 어느정도 괜찮은 출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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