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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7일 목요일

복개천을 통해 보는 언어현상과 토목의 도시공간사

얼마전까지 뜻을 정반대로 알고있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복개'이다.


나는 복개라는 한자어의 훈을 내 느낌대로 추측해서, 콘크리트에 덮여있던 청계천을 '다시 오픈한' 게 복개인 줄 알았다 (다시 복 자에 열 개 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에 청계천을 고가도로로 덮은 게 바로 복개공사였고, 그렇게 덮인 하천을 복개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개천을 MB 시장 때 다시 연 것은 복원공사 라고 부른다.

근데 웃긴 게, 이 단어의 원래 한자는 덮을 부 (거의 안쓰임), 덮을 개 (개연성, 두개골 등에서 쓰임) 자여서 굳이 말하자면 '부개'가 맞는데, 이 '덮을 부' 자와 위에 말한 '다시 복' 자가 사실 한자로는 같은 글자라고 한다. 이렇게 여러 음 (그리고 주로 그에 대응되는 여러 훈) 을 갖는 한자를 '다음자'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덮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거의 '복'이라고 읽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을 '속음'이라고 한다고 한다) 부개 대신 복개가 표준어로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속음인 독음과 맥락에 이끌려 내 마음대로 한자의 훈을 잘못 추측했는데, 사실 그 잘못 생각한 한자가 실제 한자와 같은 글자였던 (그러나 다음자여서 의미상으로는 정반대인) 묘한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속음에 완벽히 속음...


그리고 서울에 현재 존재하는 자동차 도로 중에서도 이러한 복개천 위에 차가 다니는 구조인 게 꽤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엥 그런가? 싶은데, 한번 생각해 보면 도심 하천이 갑자기 콘크리트 지붕 속으로 들어가면서 끊기는 건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복개천인 듯하다. 우리 학교 옆의 도림천, 그리고 본가 근처에서 가족들과 자주 산책했던 성내천이 이런 식으로 일부 구간 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구간 복개천인 곳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입구역 큰길 말고 그 바로 뒤편에는 술집이 많고 자전거타기 좋은, 나름 넓은 이상한 뒷길이 있는데 (학부때는 이 길을 6, 7, 8번 출구쪽 갈 때 봐서 그 존재만 알고, 제대로 탐색한 적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거기가 바로 봉천천이라는 하천을 복개한 도로라고 한다. 2024년에 복원할 예정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기대해볼 법하다.


그러면 애초에 이러한 복개를 왜 했는가? 먼저 하천들은 애초에 물길 겸 자연구획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현대적 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하천을 그대로 따라서 자동차 도로를 깔면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하천들 중에 백 년 넘게 아무리 공사를 해도 범람 및 위생문제가 계속되어온 경우, 이를 아예 덮고 하수도로 이용하면 해결된다는 장점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서울시내의 땅 모습이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어 온, 우리가 잘 모르는 구조물들이 굉장히 많다는걸 알면 기분이 신기해진다.

복개천 외에도, 마치 베네치아처럼 조선시대때 이미 늪지대에 나무 말뚝을 빽빽하게 박아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든 지역들이 서울 시가지에 있다고 한다. 훨씬 더 와닿는 또다른 예로, 지하철도 그냥 뚫어 놓았다고 끝이 아니라, 매일 수만 톤의 물을 펌핑해서 버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침수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여되고 있는 여러가지 물질, 에너지, 정보의 흐름 (혹은 그것들의 의도된 차단) 을 각 타임스케일에서 유지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인적, 물적 인프라들을 뽑아내서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도시공간에 대한 색다르면서도 본질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해외의 융성했던 고대 도시들이 전란을 겪으며 관리가 끊기면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유적으로만 남거나 심지어 땅에 묻혀 버려서 나중에 발굴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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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적 사고'에 대한 일부 해석을 보고: 열광과 가벼운 향유는 공존가능하다

IVE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 태도로 잘 알려진 '원영적 사고' 관련 글들이 뒤늦게 Facebook에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 글들 중에서 '원영적 사고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다 자기 편인 순진무구한 사람만이 할수있는 생각이므로, 그걸 소비하는건 진지한 열광이 될수 없고 가벼운 밈에 그친다'는 취지의 글은 자세한 취지도 알기 어렵거니와 내용 자체에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성장 배경도 좋고 외모와 실력도 뛰어난 장원영은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는 지지와 인기, 그리고 부를 얻고 있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극복해야 했던 억까는 단지 아이돌로서 캐릭터성 면에서의 서사 형성을 넘어 실제 장원영이라는 사람이 겪는 인간적 고난의 범주에 너끈히 속한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령 전자라고 해도 밈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살펴보자면, 사람들이 자기 편이 아니게 될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순진무구한 낙관은 전혀 아닐 듯하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라 유연하고 강하게 대응해서 긍정적으로 바꿔내려는 천생 낙관, 혹은 계속되는 억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로서 좋은 모습을 가지고 또 보여주려는 프로페셔널한 낙관 등에 가깝지 않을까.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사는 입장의 기만적인 긍정보다는 (그러면 밈이 아니라 오히려 소소하게든 크게든 논란거리가 되었겠지), 따라잡기 어렵지만 그래도 본받을 점이 있는 긍정에 조금 더 가깝게 소비된다는 게 내 인상이다. 그러한 긍정이 래디컬하게 추구되었을 때 내적 일관성을 갖추고 성립할수 있는지, 어떤 결과를 주는지를 따지는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밈을 소비하는 양태는 다면적이기 때문에 그냥 그 말 자체가 재밌고 좋아 보여서, 남들이 하니까, 큰 생각없이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 힘든 상황에서 쉬이 와닿지 않을만큼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보니 가볍게 냉소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며 집단적 위로를 꾀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많이 본 것 같다). 이 정도로 사실 충분하다. 밈의 소비 및 재생산과 그 담론화(?)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의 단정적인 분석은 무리다. 그러나 그런 글들처럼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분석적으로 생각해보고 파고든다면,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순진무구한 긍정'에 닿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밈이라고 해서 꼭 가볍기만 하고, 열광적인 태도를 가질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도 다소 의아하다. 사람마다, 혹은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계기가 겹쳐 있을 수 있다. 남다른 긍정에 진심으로 감명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열광적으로 쓰지 않겠는가. 밈의 strict한 개념을 레퍼런스하면서 과하게 의존하지 말고, 회색 부분까지 총체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해당 글에서 여러 차례 비판하는 열광이란 단어가 어느 글들에서 어떤 뉘앙스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런 글들에서 과잉되고 단정적인 분석들이 있었고, 그게 열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했나보다 싶기는 함), 그 열광이라는 단어가 꼭 비일상적 수준의 카타르시스적 경험을 일컫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가벼운 소비일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면 열광적인 인기라고 으레 표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해당 밈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적 태도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 하에서 언급될 때 강요로 작용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것 자체는 좋다. 또한 이런 류의 유행이 일각에서처럼 각종 리더십 강연(?)들과 어른들이 보는 tv 등에서 언급되게 되면 종종 실제로 위처럼 흘러가면서 생명력을 금세 잃는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그런 전형적인 '페북긴글'에서의 단정적인 분석과 논쟁 역시 밈들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해서 정확히 바로 그런 흐름에 일조한다는 것 역시 인지해야 한다. 사실 내가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쓰지 말걸 하고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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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일 일요일

aespa 정규 1집 더블 타이틀곡 'Supernova' 및 'Armageddon' 감상평

5월 14일

aespa 정규 1집 선공개곡인 <Supernova>를 처음 들어 봤는데, 곡이 화려한 요소 크게 없이 깔끔한데도 귀에 감기는 듯하다. 다만 정규앨범 수록될 곡인데도 메인 활동 곡이라기보다는 광고 삽입곡 내지는 ost 같은 느낌이 나는데 이건 왜인지 잘 모르겠다. 앞에 말한 대로 미니멀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드라마 테트리스의 삽입곡이었던 <Hold on Tight>와 약간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리고 듣다보니 은행플러팅 노래랑도 뭔가 비슷한 것 같음 ㅋㅋㅋ

(추가: 그동안 aespa 곡으로 발매된 것 중에 KENZIE 곡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Savage 앨범의 <I'll make you cry>, 수 퍼노바가 켄지 작곡이라고 해서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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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멜론 차트 보는데 수퍼노바 실시간 화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규앨범 곡의 제목들(총 10곡)도 멜론에 이미 다 공개되어 있으나 아직 들어 볼 수는 없다. <Licorice>도 곡이 참 좋던데, 민트초코 괴물과 싸우는 재미난 특촬물 스타일의 뮤비도 공개했지만 음원은 아직 열어 주지 않고 있다.
5월 27일에 공개될 타이틀곡 <Armageddon>은 장르가 올드스쿨 힙합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으로 쓰인 곡이라면 레트로 팬들이야 환장할 테지만 과연 어떤 부분에서 트렌디하고 에스파답다고 어필이 될지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 그렇지만 에스파 멤버들도 엄청 마음에 들어한다 하고 여러모로 기대해도 좋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단 기다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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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수퍼노바에서 '잔인한 queen 이며 scene 이자 종결' 이라는 가사를 실제로 그 표현에 걸맞는 위엄이 느껴지게 살린 게 신기하다. 보컬의 디테일한 뉘앙스랑 발차기 안무 덕분에 그런 것 같은데, 수퍼노바에서 코러스랑 댄스브레이크 외에 또 다른 킬링파트인 것 같고 계속 보게 된다. 켄지가 오랜만에 에스파 곡을 했는데 곡이 가벼우면서도 힘있는 것이 참 잘 어울리게 만들어낸 것 같다.

또다른 타이틀곡인 <Armgeddon>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긴 해도 곡에 특기할 만한 점이 좀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올드스쿨 힙합 장르는 특유의 길바닥(?) 느낌, 그리고 찰지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느낌이 탓에, 아마게돈을 비롯한 장엄한 개념들을 표현하기에 유독 잘 안 어울린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유머러스한 느낌은 이 곡에서 사용한 Armageddon과 Imma get em의 언어유희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장르와 잘 어울리는 유머지만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의 아우라는 파괴하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스쿨 장르는 묘한 세기말적 분위기로 인해 어두움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신적, 대자연적인 어둠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어둠에 가깝다보니 정작 별로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달까...

그런데 이번 곡의 경우 작법은 그쪽 스타일의 전형적인 찰진 비트 및 바람 빠지는 듯한 고음역의 꾸밈 효과음(?)들을 포함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연주하는 사운드는 기존 에스파 스타일의 쇠맛 악기들로 많이 배치함으로써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아포칼립스적이면서도 텁텁한 테마가 약간은 묻어나오는 것 같다. 멤버들의 흙맛이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한 듯싶다.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원하는 콘셉트와 색깔을 송라이팅에 구체적, 감각적으로 반영하는 프로듀싱은 산업화된 k팝의 역량 중 하나이고 스엠이 이런 면에서는 여전히 참 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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