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뜻을 정반대로 알고있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복개'이다.
나는 복개라는 한자어의 훈을 내 느낌대로 추측해서, 콘크리트에 덮여있던 청계천을 '다시 오픈한' 게 복개인 줄 알았다 (다시 복 자에 열 개 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에 청계천을 고가도로로 덮은 게 바로 복개공사였고, 그렇게 덮인 하천을 복개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개천을 MB 시장 때 다시 연 것은 복원공사 라고 부른다.
근데 웃긴 게, 이 단어의 원래 한자는 덮을 부 (거의 안쓰임), 덮을 개 (개연성, 두개골 등에서 쓰임) 자여서 굳이 말하자면 '부개'가 맞는데, 이 '덮을 부' 자와 위에 말한 '다시 복' 자가 사실 한자로는 같은 글자라고 한다. 이렇게 여러 음 (그리고 주로 그에 대응되는 여러 훈) 을 갖는 한자를 '다음자'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덮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거의 '복'이라고 읽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을 '속음'이라고 한다고 한다) 부개 대신 복개가 표준어로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속음인 독음과 맥락에 이끌려 내 마음대로 한자의 훈을 잘못 추측했는데, 사실 그 잘못 생각한 한자가 실제 한자와 같은 글자였던 (그러나 다음자여서 의미상으로는 정반대인) 묘한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속음에 완벽히 속음...
그리고 서울에 현재 존재하는 자동차 도로 중에서도 이러한 복개천 위에 차가 다니는 구조인 게 꽤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엥 그런가? 싶은데, 한번 생각해 보면 도심 하천이 갑자기 콘크리트 지붕 속으로 들어가면서 끊기는 건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복개천인 듯하다. 우리 학교 옆의 도림천, 그리고 본가 근처에서 가족들과 자주 산책했던 성내천이 이런 식으로 일부 구간 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구간 복개천인 곳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입구역 큰길 말고 그 바로 뒤편에는 술집이 많고 자전거타기 좋은, 나름 넓은 이상한 뒷길이 있는데 (학부때는 이 길을 6, 7, 8번 출구쪽 갈 때 봐서 그 존재만 알고, 제대로 탐색한 적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거기가 바로 봉천천이라는 하천을 복개한 도로라고 한다. 2024년에 복원할 예정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기대해볼 법하다.
그러면 애초에 이러한 복개를 왜 했는가? 먼저 하천들은 애초에 물길 겸 자연구획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현대적 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하천을 그대로 따라서 자동차 도로를 깔면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하천들 중에 백 년 넘게 아무리 공사를 해도 범람 및 위생문제가 계속되어온 경우, 이를 아예 덮고 하수도로 이용하면 해결된다는 장점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서울시내의 땅 모습이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어 온, 우리가 잘 모르는 구조물들이 굉장히 많다는걸 알면 기분이 신기해진다.
복개천 외에도, 마치 베네치아처럼 조선시대때 이미 늪지대에 나무 말뚝을 빽빽하게 박아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든 지역들이 서울 시가지에 있다고 한다. 훨씬 더 와닿는 또다른 예로, 지하철도 그냥 뚫어 놓았다고 끝이 아니라, 매일 수만 톤의 물을 펌핑해서 버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침수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여되고 있는 여러가지 물질, 에너지, 정보의 흐름 (혹은 그것들의 의도된 차단) 을 각 타임스케일에서 유지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인적, 물적 인프라들을 뽑아내서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도시공간에 대한 색다르면서도 본질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해외의 융성했던 고대 도시들이 전란을 겪으며 관리가 끊기면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유적으로만 남거나 심지어 땅에 묻혀 버려서 나중에 발굴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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