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5일에 열린 한 극적인 야구 경기의 전개가 실제 6.25 전쟁의 전황과 비슷해서, 각 팀을 국군과 북한군에 대응시키고 전황을 경기 상황에 대응시킨 짤방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K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 비유를 송출해서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 어떤 집단이더라도 그것이 북한에 비유된 것 자체로 상황에 따라 기분이 나쁘거나 심지어 낙인찍는 기제가 작동될 수 있을진대, 하필 팬덤이 강한 스포츠라는 부문이고, 또 하필 북한군의 역할(?)에 비유된 팀이 호남 연고 팀이다 보니 특히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순전히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는 것이지 호남을 북한과 엮는 지역차별의 맥락은 전혀 없다며 항변한다. 어제 이 내용을 접하고,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쟁점들이 있어 조금 자세히 써 본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역 차별 맥락이라는 문제성을 떠올리지 못하고 정말 해당 구도만 따와서 즐겼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지하긴 했지만 윤리와 평판의식이 작동해서 그런 의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그럼에도 소비 및 재생산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커다란 유튜브 채널(특히 공영방송에서 운영하는)에 올라가게 되면, 평소 인터넷의 모습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호남 혐오 덧글들이 줄지어 달리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방송은 그러한 판을 연 것에 대해 책임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을 굉장히 민감한 소재로 인식할 만한 사람들이, 하필 호남연고 팀이 북한이랑 엮인 것에 대해서는 '지역드립이 아니라 그냥 구도가 그런 건데 뭐가 문제임?' 하면서 유독 관대해지는 것 역시 명백히 문제적이다. 호남 혐오, 호남 희화화가 인터넷 공간상에서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을 제작한 사람들도 그 짤방을 가져올 때 사람들의 순수한(?) 소비 방식 외에 지역차별적인 소비 방식도 목격했을 것 아닌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던 것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을 때 확 오는 불쾌감을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줄 아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발화에서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작 자기가 의심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남초, 우파 분위기 위주인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어떤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흔한 오해와 달리 도덕적 태도는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재미는 중요하다. 그치만 그것이 공적 공간에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아닌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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