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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4일 목요일

야구경기 밈 보도와 호남 혐오: 문제적인 유머에는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지난 6월 25일에 열린 한 극적인 야구 경기의 전개가 실제 6.25 전쟁의 전황과 비슷해서, 각 팀을 국군과 북한군에 대응시키고 전황을 경기 상황에 대응시킨 짤방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K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 비유를 송출해서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 어떤 집단이더라도 그것이 북한에 비유된 것 자체로 상황에 따라 기분이 나쁘거나 심지어 낙인찍는 기제가 작동될 수 있을진대, 하필 팬덤이 강한 스포츠라는 부문이고, 또 하필 북한군의 역할(?)에 비유된 팀이 호남 연고 팀이다 보니 특히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순전히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는 것이지 호남을 북한과 엮는 지역차별의 맥락은 전혀 없다며 항변한다. 어제 이 내용을 접하고,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쟁점들이 있어 조금 자세히 써 본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역 차별 맥락이라는 문제성을 떠올리지 못하고 정말 해당 구도만 따와서 즐겼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지하긴 했지만 윤리와 평판의식이 작동해서 그런 의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그럼에도 소비 및 재생산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커다란 유튜브 채널(특히 공영방송에서 운영하는)에 올라가게 되면, 평소 인터넷의 모습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호남 혐오 덧글들이 줄지어 달리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방송은 그러한 판을 연 것에 대해 책임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을 굉장히 민감한 소재로 인식할 만한 사람들이, 하필 호남연고 팀이 북한이랑 엮인 것에 대해서는 '지역드립이 아니라 그냥 구도가 그런 건데 뭐가 문제임?' 하면서 유독 관대해지는 것 역시 명백히 문제적이다. 호남 혐오, 호남 희화화가 인터넷 공간상에서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을 제작한 사람들도 그 짤방을 가져올 때 사람들의 순수한(?) 소비 방식 외에 지역차별적인 소비 방식도 목격했을 것 아닌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던 것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을 때 확 오는 불쾌감을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줄 아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발화에서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작 자기가 의심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남초, 우파 분위기 위주인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어떤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흔한 오해와 달리 도덕적 태도는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재미는 중요하다. 그치만 그것이 공적 공간에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 지역차별을 의도로 해서 호남을 북한이랑 엮은 게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 않나. 심지어 요즘처럼 인터넷상의 드립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자리와 술자리,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서까지 말이다. 그러면 이번 것도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적어도 공영방송에선 송출되지 않는게 맞았을 것 같다.
설령 at first glance에서는 순수하게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더라도, 북한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데 하필 호남 연고 팀도 관련이 있으니 적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해당 경기의 상황이 6.25의 전개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각날 법한 상황임에도, 자기 생각이 아닌 외부 요인 때문에 (적어도 공영방송에서) 표현이 제한되고 창의성의 산물 하나를 잃는 것은 아쉬운 일일 수 있다. 타율로부터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추구해 온 내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자신의 재미에 찬물이 끼얹어졌을 때 발생하는 거부감은 그 존재는 인정되되, 즉물적으로 표출되는 대신에 철저히 반성되어야 한다.

이것도 결국 우리 나라에 쌓여 있는 여러 문화정치학적 갈등의 업보가, 유머에 대한 구성원들의 해석의 형식으로 불가피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것은 문제제기의 중단을 강요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밀하게 극복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다.

차별의 맥락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듯 반응하고 극복을 강요하는 공간은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아니라 디씨에 불과하다. 타율적 전제로부터의 자유는 그 타율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율에 의해 조건지어진 하에서 사고와 표현을 도구삼아 그 조건을 변화시켜 나가고, 종국에는 극복함으로써 진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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