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우리 동네 자율독서모임에는 지난 4월 4일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소 콜로퀴움에 강연하러 오신 민태기 박사님께 사인까지 받았던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가져와서 읽고 있다.
그날 강연의 중심 내용이었던, 과학혁명 시기를 중심으로 서구 근대 과학사를 주로 다룬 책 <판타 레이>와 비슷하게, 이 책도 과학지식 그리고 과학자들이 역사의 중요 사건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아 왔는지를 중심으로, 흔히 접할 수 있는 전쟁과 정치 위주의 역사서술과는 다른 각도에서 문화사와 정치외교사의 접점을 풍부하게 서술하므로 지극히 흥미롭다.
소소하게는 안창호 선생의 호인 '도산'이 하와이 섬을 보고 지은 것이라는 점부터, 책의 제목처럼 아인슈타인의 상대론과 양자 역학이 1920-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언론에 연재기사로 상당히 정확하게 소개되었고, 아인슈타인이 일본에 순회강연을 했을 때 (비록 조선 초청은 실패했지만) 조선에서도 연일 화제가 되었으며 최윤식 등이 상대론에 대한 순회 강연을 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 등등 잘 몰랐던 흥미로운 사실들이 이 책에서는 매 페이지마다 트럭 단위로 쏟아지며, 그런 사실들이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경성 에리뜨의 만국 유람기』라는 책처럼, 조선 후기 및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이 굉장한 수준의 국제적 감각과 실천을 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외 불확실성에 정면으로 노출된 채로 반세기 넘게 고도성장을 해온 대한민국에서, 세계정세 혼란과 국내 사회문제 누적으로 복합위기를 마주하고있는 현재의 우리가 오히려 배워야 할 태도가 많다고 보인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져서 학술검색엔진 Google Scholar에 검색을 해 봤는데, 우장춘 박사가 주창한 생물학 개념인 우장춘의 삼각형(Triangle of U)은 무려 2020년대 들어와서도 Brassica 속 식물에 대한 논문들에서 거의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활발히 인용되고 언급되고 있다. 20세기 초중반 한국의 선구적인 과학자들이 많고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우장춘의 연구가 해당분야에서 현재까지도 상당히 활발하게 인용되는 점은 특기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민태기 박사님의 다른 저작인 『판타 레이』와 이 책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근대화 시기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과와 문과의 구분이 상당히 희미했다는 점이다. 계몽운동과 정치개혁에 참여한 이들이 과학에 상당히 본격적인 수준의 관심을 표명하고 토론에 참여하거나 아예 직접 연구한 경우가 많다. 세상이 너무 복잡해져서 문/이과 분리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 문화』에서 지적되었듯이 이러한 분리는 부작용도 많으며, 한국에서도 장기간의 분리에 따라 상호이해와 교류가 부족한 면이 많다. 문이과가 다시한번 머리를 맞대고 당면한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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