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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신해철을 기억하며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틀어 주신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처음 접하게 된 신해철의 음악. 그 때부터 느리지만 꾸준하게,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 내 플레이리스트의 빼놓을 수 없는 큰 축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의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왜 작년의 오늘 이전에는 알지 못했을까. 있을 때 잘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인가.

신해철의 음악은 무한궤도 이후 솔로 시절의 감미로운 발라드부터, 넥스트 시절의 대곡지향적인 락 넘버들까지 정말로 다양한 장르적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모든 장르의 곡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자아 성찰, 현대성 비판 등을 담은 철학적인 가사들이다.

가끔은 강렬해서 오히려 더욱 순수하게 느껴지곤 했던 그의 소신있는 입담과 행동, 그런 그의 생각들을 바탕으로 한 때로는 꾸밈없는, 때로는 은유적인 음악들. 재치와 예술성을 겸비한 노래들에 감탄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신해철이 이제 우리 옆에 없다. 이제 과연 누가 그와 같은 말, 그와 같은 가사들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답답해질 때가 많다. 그러나 만약 신해철이, 누군가에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간 걸출한 음악가로, 다른 누군가에겐 언제나 가치있는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철학가로, 다른 누군가에겐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서 할 말을 했던 논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또 다른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기억된다면 그러한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까.

많은 이야기를 주고 간 사람이기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우리는 앞으로도 신해철을 꾸준히 이야기해 나갈 것이다.

2015.10.27

<신해철 - 단 하나의 약속 (2014.06.26 REBOOT MYSELF Part.1)>
이유 없이 화가 날 땐 모진 말로 내게 화풀이를 해도 좋아요
속상한 일들, 비밀들 내겐 털어놔도 좋아요
바쁠 때는 무시하세요. 힘들 때는 내게 기대요.
생일 약속도 다른 약속도 다 잊어버려도 좋지만
Baby 나 단 하나
Lady 더도 말고 이거 단 하나
이거 하나만큼은
맹세한다 내게 말해줘
Baby 어떡해도
Lady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그것만은 대신 해 줄 수도 없어
아프지 말아요
그거면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돋보이지 않아도 남들이 뭐라 해도
좀 더 게을러도 괜찮아요
겉모습이 변해가면 함께 새 옷을 찾아다녀요
매달 예민해 지는 날은 내가 많이 웃겨 줄께요
but promise me, don't lie to me, this time
Baby 나 단 하나
Lady 더도 말고 이거 단 하나
이거 하나만큼은
맹세한다 내게 말해줘
Baby 어떡해도
Lady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하나만 약속해줘
어기지 말아줘
다신 제발 아프지 말아요
내 소중한 사람아
그것만은 대신 해 줄 수도 없어
아프지 말아요
그거면 돼 난 너만 있으면 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은은히 타오르는 eternal flam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 and Love
It's you

archived on 2018.12.31.

2015년 10월 5일 월요일

모 사립고등학교 급식비리 사건을 보며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11410.html?fbclid=IwAR088-htpZxHz6P8M1hj4zcecheJhjDHja0ChIA0wbI6V7TCvH67hmYuV_c
[포토] 급식비리 알리려 직접 나선 충암고 학생들

  지난 4월, 급식비 미납 학생들을 교감선생님이 공개적으로 불러서 폭언 하고 모욕 줘서 논란이 된 학교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학교 전임교장, 행정실장 등이 수억 원 대 급식비를 횡령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4월의 '막말 논란' 당시에 그 학교 학생회장님이 페이스북에 올리신 글에 의아한 점이 몇 가지 있어 그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었다.

  그 학생회장 분은 당시에 "학생들이 급식에 불만이 많다. 가격 대비 떨어지는 질 때문이다. 그리고 가격 대비 떨어지는 질은 모두 미납자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미납 비용을 교장, 교감 선생님이 사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은 정당한 금액을 치르고 급식을 먹는 학생들의 여건이 나아지도록 노력을 하신 것이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준 것이 잘못된 행동은 맞으나, 쏟아지는 비난은 언론에 의해 과장된 것이다"고 말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가격 대비 떨어지는 질이 미납자 문제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부터가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미납이 되어 재정이 부족하다고 해서 이미 정해진 급식 업체를 갑자기 바꾼다던지 영양사의 조리운영 질이 갑자기 낮아진다던지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재료 구입의 경우에만 재정상태에 따라 어느 정도 유동적 운영이 가능할 것인데 이것 역시 학교와 업체들간에 월간 계획을 바탕으로 계약이 어느정도 되어 있어, 미납자 문제로 저렴한 재료로 바꾸는 것도 생각보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따라서, 급식비 미납분에 따라 유동적으로 급식 예산이 축소되는 것보다는, 급식비 미납분은 학교 재정상에 적자로 기록되고 급식은 계획대로 운영되며, 미납자들이 납부해주기를 기다리게 되는 구조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미납자 문제로부터 급식 질 저하가 시작된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이 급식비를 사비로 충당한다는 것 역시 합리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공금의 범위 내에서 적자 내고 납부를 기다리면서 운영할 수 있는데 굳이 사비로 충당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사실은 전임교장, 행정실장 등이 학생들이 낸 급식비 수억 원을 횡령해서 학생들 급식 질이 좋지 않게 된다는 게 밝혀졌다. 첫째로, 외부 용역을 안 맡겼는데 맡겼다고 거짓으로 기재한 후 그 용역 비용을 그들이 가져갔다. 그렇게 되면 기존의 직원만으로 업무를 해야 되기 때문에 급식의 질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식용유를 교체하지 않고 재사용하는 방법으로 남는 비용을 그들이 가져갔다. 이것 역시 급식 질이 안 좋아지는 명확한 원인이 된다.

  앞의 교감선생님이 전임교장과 행정실장의 비리를 알고 있던 것인지, 아니면 비리를 모르는 채로 급식 질 개선을 위한 모종의 어긋난 정의감에 그런 폭언을 하게 된 것인지는 뉴스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그 발언 자체를 보면, 급식 질의 저하가 급식비 미납 때문이 아닌 관리자들의 횡령 때문임이 밝혀지는 순간 그 폭언의 의미는 더욱 더 땅으로 떨어진다. 관리자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학생 돈을 횡령하면서, 왜 그것을 납부하지 않냐고 독촉한 모양새인 것이다.

  그 당시 해명했던 학생회장도 단순히 학생의 대표자로서 학교를 향한 비판이 당황스러워 그렇게 해명하였는지, 아니면 교원들의 말을 그대로 옮기어 전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누구보다 괴로울 것 같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돈 때문에 이렇게 비겁한 일을 하는 나쁜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청년들은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어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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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0.

2015년 10월 4일 일요일

KBS1 <명견만리> 시민참여단 - 인공지능 편

오랜만에 찾아간 KBS1 '명견만리' 녹화.

장진 감독님과 정지훈 교수님이 인공지능에 대해 취재하여 강연했다.

미래사회 이슈를 다루는 게 프로그램 취지인 만큼, 인공지능 자체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인공지능이 사회에 미칠 영향에 초점을 두어 진행되었다.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 소소한(?) 인공지능들은 우리 곁에 꽤나 가까이 와 있는 듯하다. 인공지능이란 게 경계가 애매하긴 한데, 학습을 통해 사용자친화적으로 컨텐츠들을 자동으로 추천해 주는 서비스들이나, 일본 같은 데서 열심히 만들고 있는 emotion에 초점을 둔 로봇들. 취재내용 보니 음식 메뉴도 새롭게 만들어서 추천하고 그러더라. 별게 다 있지만 이게 제일 신기했다.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데에 그 친구들이 일조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듯.

- 인공지능에서 살짝 벗어난 전반적인 자동화 이슈도 포함하는 얘기인데,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문제가 꽤나 크다고 한다. 특히 인공지능의 인력대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사람의 일을 대체하여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게 인공지능의 꿈일 텐데, 이게 사회양극화가 있다 보니 한쪽은 편하게 돈 벌고, 다른 한쪽은 집에서 놀 수밖에 없게 되는 그런 거다.

- 독일 지멘스 사의 경우엔 그 인공지능을 관리하고 output을 분석하는 위치의 새로운 직종을 창출해서 생산성을 몇 배 높이면서도 고용 수의 변화가 없도록 했다던데 참고해도 좋을 듯. 하여간 한국은 다방면에서 청년들 어지간히 괴롭힌다. 직업구조 변화에 따른 과도기일 뿐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나, 과연?

- 각종 SF 영화처럼 인터넷망 위에 살면서 인간을 지배하려 드는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대중들의 우려가 많다. 그러나 일단 그 정도의 능력을 갖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아직은 공상의 영역이라고 보는 게 학자들의 견해라고 한다. 그런 걸 하기 위해서 일단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컴퓨팅 시스템 자체가 엄청나게 거대하게 필요할 거고 구글 급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듯. 또한 그런식으로 하나로 합치기에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음. 아기자기한 인공지능들이 Locally 발전되어 나가는 게 좋은 것 같다.

- 위에서 말한 인공지능 스스로 폭주하는 그런 일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컴퓨터의 뛰어난 계산능력을 인간이 잘못 사용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이건 뭐 이미 가시적인 위험이 된 지 오래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당뇨환자의 상태를 파악해서 인슐린을 주사하는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을 해킹하여 치사량의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음이 보여지기도 했으며, 또한 뭐 무인자동차한테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줘서 도심에 큰 사고를 일으켜 테러할 수도 있을 거고. 프라이버시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 결국은 사람이 먼저다. 인공지능도, 다른 기술들도 결국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위에 썼듯이 그 존재목적을 깨려는 시도는 또 누가 하는가. 말하자면,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IT의 발달로 한 사람의 병크가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게 돼 버린 이 시대에, 사람의 폭주를 막기 위해 사회적인 견제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 녹화에서 은근히 답이 안 나오는 문제로 계속 제기된 것이 '인공지능이 피해를 입혔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이다. 무인자동차가 내부 알고리즘 오류로 탑승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해 보자. 예를 들면 그 인공지능을 감옥에 보낸다 해서 걔가 반성하고 회개하진 않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냥 걔를 사용 정지시키고 끝난다면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그 알고리즘을 만든 공학자를 처벌하기도 애매하며, 그 회사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더욱더 애매하다.

- 이 애매함은 본질적인 것이다. 분명 인간이 만든 것인 만큼 명백히 인간에 의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연 재해와 다를 바 없이 '이런 알고리즘에 따라 이게 이것으로 인식되어 이러한 학습과정을 통해 이렇게 되었다' 라고 절차적으로 완벽하게 설명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자동화된 시스템에는 항상 숙련된 관리자가 필요한 것 같다. 그냥 사고 일으킨 제품은 버리면 되고 모든 게 다 매뉴얼대로 자동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냥 기계장치 작동에 의해 사회가 돌아가는 거 아닌가. 책임질 사람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미적으로도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인공지능은 결국 사람에 의해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여튼 그 책임소재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정지훈 교수님이 말씀하신 게, 공학자, 생물학자, 철학자, 법학자와 같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여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한다. 굉장히 공감이 간다. 비단 이 문제뿐만 아니라, 각종 복잡하고 답없어 보이는 문제들에 대해 범학제적인 포럼이 필요하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 예를 들어, 과학적으로 모두가 다 다른데 사회적으로 어떻게 그걸 존중하면서도 또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것인가.. 뭐 이런 식의 엄청난 거대담론들은 이상적인 사회상을 추구하는 철학만으로도 안 되고, 구체적인 수치 가지고 하는 정책만으로도 안 되고, 사실 자체만을 밝히는 과학만으로도 안 된다. 그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주장을 이해해 가며 토론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러한 범학제적 포럼 내지는 공론장 같은 것이 국내에 많이 부족한 듯 하며, 우리 세대 사람들 중 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그런 데에 위기의식을 갖고 협력과 참여를 많이 많이 해 주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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