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주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상기할 때마다 대단히 안타깝다. 자유라는 단어를 내건 사람들이 헌정 민주주의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의 개념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 자유 개념의 쓰임이 현재와 같이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소위 주류집단에서 그러한 것을 조장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그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분석해 본다. 두 파트로 나누어서 쓰겠지만, 본질은 하나이다. 정치적 및 경제적 이념지형에 대해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쓰는 글은 아닌데, 읽어주시는 분들의 많은 지적을 통한 공부가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
첫번째는 보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에 대한 낡은 관념이 충분한 반성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특히 한국 사회 기득권층 내에서 그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주변부의 의미만을 취한 채로 맹목화되었는데, 그 잘못된 관념이 불행하게도 권력자들이 헤게모니를 쥐는 데에 매우 유용했기 때문에 계속 조장되고 사용되어져 온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란, 냉전시대 '공산진영'과 대립한 '자유진영'에서의 그 '자유'가 본래적 의미를 잃고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안티테제로서만 사용되기 시작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독재와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와,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모두 포괄하긴 하나, 후자는 이후 문단에서 논하고 여기에서는 전자에 포커스를 맞추겠다.
물론 자유를 추구한다는 말 자체는 현재에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의할 만한 좋은 일이나, 그 실상을 본다면 '자유진영'에서 그 반대 진영을 경계한다는 목적으로 사상교육과 인권침해를 강행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고,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 개념을 잘 수호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주 큰 무리가 있다. 현재에도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실태 및 정부기관과 보수단체에서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면, 공산진영 및 북한 독재정권에 반대되는 의미로 보수 진영에서 사용하는 자유라는 단어가 그 본래 의미대로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렇게 자유 개념을 왜곡시키지 않고도, 자유권 침해 관련해서만으로도 북한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 개념의 왜곡은 딱히 '분단관계라는 특수상황에서 불가피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유의 본질과는 매우 떨어져 있었던 것들을 자유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게 함으로써 보수적 헤게모니가 힘을 얻게 된 것은 비판당해 마땅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한창 논란이 되었을 때 진행된 TV 토론에서도 나는 이러한 '자유' 개념에 대한 시각차를 보았다. 국정화 반대 측에서 말한 자유가 내가 지지하는 것에 가깝고, 찬성 측에서 주장한 자유는 사실 그 본질과는 많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잘 봐 줘야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고 충돌이 잦던 시절,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남한 정권에서 국민들에게 감내하도록 한 희생(?) 정도이지, 전혀 진정한 자유의 수호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남한 정권마저도 반공을 명분삼아 독재체제로 이행되어 국민들을 탄압하는 등, 높은 수준의 자유를 결국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조치에 찬성하면서 이런 식의 자유 개념을 다시 꺼내든 것은 오히려 자유를 침해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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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재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자유와 현대 민주주의에서 보장하는 '자유권'에서의 자유 개념은 사실 불평등이 이슈인 21세기에 와서는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전자와 후자의 혼동은 매우 잦다. 비록 이 둘은 계몽주의를 위시한 그 근대적인 거대한 흐름에서 함께 출발해서 오랫동안 같이 흘러온 것들이긴 하나, 전자의 경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오히려 후자의 자유를 침해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러한 면에서 두 자유 개념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경우에 후자의 자유가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그 구분을 흐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능력이 없어서 도태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며,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하므로 그러한 것들을 일부러 없애자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주장들이다. 이들은 자유 경쟁 체제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 무한이기주의를 펼치는 순간 더이상 자유경쟁은 없다는 그런 역설은 고려하지 않고 래디컬하게 시장경제를 옹호한다. '자유롭게 추구하되,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추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는 자유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바로 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자유'가 힘을 얻을수록 경제적 이익을 얻는 이권단체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동이 조장되는 면이 상당하다고 본다. 자유경제원이 전경련 산하단체로 출발한 것에서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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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오독된 자유'가 교묘하게 결합되고 보수 헤게모니로 작동하면서, 현대 민주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권 개념과는 다소 떨어진, 한국 보수이념에서의 '자유'가 탄생한다. 바로 그래서 자유경제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아스트랄한 일이 가능한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의 가치가 이 사회에 잘 아로새겨지는 날은 언제쯤 올까? 각 개인 스스로가 하고 싶은 바대로 추구하되, 타인이 하고 싶은 바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건데, 이걸 실현시키는 길이 참 쉬운 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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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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