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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7일 토요일

대담

A: 감동적인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2분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중, 그의 은퇴 기자회견 직전의 2분 정도를 담은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평생 아름다운 상상력을 간직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살아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이 집약된 2분이다.
(https://youtu.be/oJhTQvyG0CI?t=1h51m49s)]

B: 헛웃음만 나와....... 나, IT 서비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살았잖아? 근데 역량 있는 핵심 엔지니어를 찾지 못해서 넉 다운 당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어.

A: 어떤 생각을?

B: 솔직히 아날로그와 미학적 아우라를 중요시하는 나 같은 인간이 왜 IT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려고 하는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이 확실한 내가 또 IT 서비스를 만들려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보니 지금, 16년 중순, 이 순간에 당당한 답을 할 수가 없더라. 왜 만들려고 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원해서야. 근데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절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나은 세상이란 건 말이야. 결국 나의 주관적 판단이 그려낸 이상이고, 내가 완벽하다고 믿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모순을 지니게 되는 거지. 그리고 고민을 했어. 그럼 난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B: 나는 이 세계가 싫었어. 그래서 이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허나 그 것은 나의 아집, 바꾼다고 해도 나는 바꿈과 동시에 스테레오타입이 되는 거야.

A: 프로젝트란 그렇지. 시스템의 밖에서 지적을 하는 역할에서 출발하나, 또 다른 시스템이 되어서 맹목화된다면 또 다시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니 B씨는, 그리고 인류는 끊임없이 반성적 사고를 해야 되는 겁니다. 라는 거지.

B: 정확히 이해했어.

B: 근데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르더라. 언젠가 내 조카가 디즈니랜드에 가서 줄을 서는 걸 보는데, 조카는 그 긴 줄을 서면서도 웃으면서 삼촌한테 온갖 장난을 치면서 웃는 얼굴로 기다리더라.

A: 어린아이에겐 모든 것이 놀이.......

B: 나는 오늘 어머니랑 수목원에 갔다 오는데 사람 많고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근데 얘는 왜 이럴까를 생각해보니 디즈니랜드는 이 아이들에게 있어 다른 세계의 신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야. 이상 속의. 내가 어머니랑 수목원 가는 것과는 다르지. 얼마를 기다리든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니까. 그래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A: 그렇지. 또 다른 세계. 어린 아이들이 상상 속의 친구, 상상 속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B: 응 맞아.

A: 워워, 근데 너무 큰 기획이야 그건.

B: 근데 이것저것 현실세계를 녹여내서 analogy 범벅을 만드는 건 그냥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거고, 나는 그냥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졌어. 즐거운 이야기. 신화 같은 이야기. 진짜 새로운 세계. 현실에 결부시키지 않은 이야기. 어중간하게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들 이야기 넣지 않고. 그냥 정말.......

A: 신화라는 단어를 꺼낸 게 나와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는데, 나도 그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B: 응. 더 말이 필요 없겠다. 그거야. 난 이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지브리라던가 디즈니라던가.

A: 새로운 세계의 창조 그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건데. 인간성을 최대한 발현시키셔야 하겠군요.

B: 응, 이제는 진짜 그냥 내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바치고 싶어. 결국 미래는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살려고. 이게 나 나름대로의, 2016년의 답이야.

A: 단편적이고 짧은 생각일 뿐이었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나는 세속주의자이자 인본주의자로서, 신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야말로 인간 고유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 그래서 환상의 세계를 좋아해. 물론 기술복제 시대가 도래하고 매스미디어가 처음 나올 때 많은 이들이 비판했듯이, 그런 것들이 실제 세상에 어중간하게 적용되어서 혼란을 낳을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결국 인간성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그런 혼란도 극복하고 진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B: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세계를 A라고 하자. 근데 나나 너나 B라는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안, 즐거움을 얻으면서 살아가. 이 B는 음악, 만화 등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야.

B: 우린 어쨌든 A에서 살아가. 그건 현실이야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이렇게 새벽에 친구와 대화하면서, 따로 파티션을 나누어 얘기할 또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 물리적인 공간은 아니야. 내용적으로도 A와 일치하지 않아. 하여튼 이렇게 A에서 살면서 B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며 행복하게, 아니,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런 것이 필요해. 작아져버린 인간으로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해.

A: 그런 게 필요하다. 도구적인 필요라기보다는, 이유는 없지만 우리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

A: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B: 왠지 서글플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A : 우리 인간들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거의 같은 유전자를 갖고, 지구라는 거의 같은 곳에서 살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의 회로와 우리가 자라오면서 한 경험들은 각자가 다 다르다고 볼 수도 있어. 따라서 우리들이 얘기하는 B적인 것들이 서로 같은 건지 완전히 검증할 수는 없어.

B: 응.

A: 그러나 우리의 유전자와 경험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뇌 구조는 이렇게 많이 다르면서도 결국 모두 서로 비슷하지. 따라서 우리가 B를 얘기할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들은, 많이 다를지라도 결국엔 많은 지점들을 공유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B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성립하고, 문학이 성립하고, 예술이 성립하지 않을까.

B: 뭐 예상대로랄까.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니라 눈물이 나오네. 모르겠다. 슬픈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A: 서글픈 느낌은 아니지 않아?

B: 벅차올라. 서글프기보단.

A: 열광 아니겠습니까....... 열광.

B: 응, 그러네.

B: 결국 우린 B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는 중에 우는 거고, 아니 어쩌면 나만 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어찌 정의할 수 있겠어.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이 안 나오는 주제긴 한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현실은 언제나 모두에게 달라. 그 70억 개의 다른 현실들 중엔 힘든 현실도 안락한 현실도 있겠지만, 현실들의 개별적인 속성을 막론하고 적어도 내가 만든 세계에 다이빙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길 바래. 아름다운 방향으로.

B: 사실 단순하고 짧은 얘긴데 너무 늘어뜨렸네. 미안하다.

A: 나는 매우 중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드는걸. 말씀하신 대로, 간단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오지.

B: 난 이제 미래를 위한 삶을 살련다. 미래라는 게, 나의 미래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 아이들의 꿈. 거기에 나의 모든 걸 바치고 싶어. 그리고 어른들도 내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무언가를 접하며 잠시나마 새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토이스토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즐거워하듯........ 청각예술이든 시각예술이든 상관없어.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난 이제 정말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다. B 세계를 열심히 만들 거야. 잘 해야지.

A: 맞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잘 해야지. 뭐 구체적으로 코멘트를 할 게 없네. 좋은 생각이야.

B: 이제 내 인생은 나를 위한 생이 아니야. 난 남을 위해 모든 걸 바칠래.

A: 위한다는 표현도 이상할 수 있겠다. ‘B에 임하는 삶’ 정도?

B: 그러네. 맞아. 난 새로운 세계를 만들래. 그냥 계속 그럴래. 눈물이 또.

A: 현실이라는 굴레는 매우 무겁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온갖 이성을 다 발휘하지만, 때로는 B의 창조에 우린 그저 그렇게 임하면 되는 것....... 그리고 현실이 확고히 있기에 그 모든 B는 의미를 가진다. 창조를 해 나가자.

with Sanghyeon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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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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