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18년 4월 3일 화요일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개의 바퀴

  우연적이고 유한한 세계 속에서 필연성과 무한성을 표상하는 능력과, 그 능력을 바탕으로 비약이 동반된 서사를 구성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만족 불가능한 충동이야말로 인간사의 가장 중대한 문제 중의 하나이며, 사태의 일회성/고유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한쪽 바퀴와의 모순적인 결합을 통해 인간을 작동시키는 두 번째 바퀴이다.

  예컨대 내가 지금처럼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할 때, 잠시 후에 있는 시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유일한 기회이며, 시덥지 않은 우연들에 의해서 결과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대비를 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첫 번째 바퀴). 반면에,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자의적인 그림 속에서 이 시험이 어디에 위치하며 어떤 중요성을 차지하는지를 상상함으로써, 시험을 잘 보아야만 내가 상정한 필연대로 삶이 전개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두번째 바퀴).

  이러한 충동은 일상에서 직접 나타나지는 않지만 우리 마음에서 별로 깊지 않은 곳에 늘 잠재하면서 우리를 움직이며, 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된 것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하지만, 지식과 문화의 풍부함을 낳는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충동을 잘 인지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스스로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고, 독단적인 사상누각을 세워서 스스로 속아넘어가거나 타인을 속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서사적 본능', '우연과 필연 사이의 투쟁'을 발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술(description)과 규범(prescription)을 분리하면서도 양쪽 모두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지식과 특유의 양적 방법에 대한 이해가 꽤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조만간 이에 대해 보다 자세히 써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


archived on 2018.12.3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