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의해 마주하게 되는 실존의 문제 앞에서 정치적, 도덕적 의식은 얼마든지 '한갓된' 것일 수 있다. 정치적 의식에 부합하는 선택과 스스로의 고통을 경감할 것으로 기대되는 선택이 서로 대립될 경우에,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가 전자를 택해야 마땅하다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모두가 위의 대립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견주어 보면서 선택을 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의경 제도를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가 중점을 두어 비판해야 할 것은 다수에 의해 지적되었듯이 징병에 의해 행사되는 국가폭력이 대외를 향하지 않고 대내를 향하도록 일부 전환하여 일상적으로 시민들과 충돌하도록 판을 벌여 놓고, 그 선택지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사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정서에 호소하여 투쟁을 어렵게 만들고 국가 폭력을 은폐하는 상황 그 자체이지, 그 안에서 나름대로의 선택을 한 개별 주체들이 아니다.
꾸준히 언급해 온 점이지만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개별 주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거나 가지지 않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들 개인에 대한 공적인 자리에서의 비난은 국가폭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지적으로, 실천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기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해와 달리, 내가 즐겨 쓰는 '정치적이기 전에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문장에서 '인간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정서적인 편안함을 추구해야 한다거나, 비정해서는 안 되고 무턱대고 관용을 가져야 한다는 따위의 상투적인 표현이 당연히 아니다. 그 의미는 선택의 주체인 인간이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 작용하는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자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군 복무 이행의 형태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 문장은 잘 적용된다.
징병제라는 국가폭력 하에서 누군가는 위와 같이 견주어 보는 과정을 통해 의경을 선택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같은 과정을 통해 반대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구조적 폭력에 대해 인식할 것을 주장하는 자가 의경을 선택한 자들에 대해 혐오발언을 자행하는 모습은 모순적이고 희극적이다. 구조를 보아야 할 때 구조를 보지 않고 개인을 본 것은 과연 누구인가?
+ 추가로 드는 생각은, 애초에 SNS 상에서 일어나는 몇 줄의 의견 교환으로는 서로의 논지를 확인하는 것부터가 어려울 만큼 전제의 차이가 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정치에서 기본적으로는 국가권력이 온건하고 민주적으로 행사되도록 감시하고 그렇게 행사되는 국가권력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국가권력과 분리된 영역에서의 의식화를 통해 사회 전체를 변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반민주적이니까 말이다. 개인들의 주체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그 개인들의 개별적인 선택에 도덕적 의무론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대중은 설득의 대상이지 계몽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면 나는 엄격한 의미에서 진보가 아니게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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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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