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18년 5월 8일 화요일

'내로남불'의 논리학과 화용론

  나는 소위 '내로남불'에 대해서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논리적인 일관성보다는 정치적 지형 상에서의 일관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논리적 오류가 존재하더라도 그 교정의 가능성은 언어 속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는 반면, 머릿속에서 정치 지형을 실제와 전혀 다르게(혹은 매번 다르게) 설정해 놓고, 제대로 된 조준 없이 자신의 주장을 '난사'한다는 것은 그 의제가 논의되고 있는 도식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므로 누구에게도 신뢰를 얻기 어려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내로남불의 문제점에 대한 여러 가지 비판이 생각보다 그 근거가 미약하며, 논리적 문제보다는 정치적 신뢰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내로남불을 대략 도식화해 보자면 "상대방은 A를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A를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 딱히 '논리적 오류'라고 볼 수는 없다. 위의 주장은 하나의 당위명제일 뿐, 그 안에 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만약 누군가가 자신이 저지른 내로남불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구성하고자 한다면 그 시도의 결과물은 얼마든지 논리학의 비판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타당할 수도,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논리는 구성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구성된 논리가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는 없으나, 반드시 하나 이상의 당위명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로남불은 정당하지 않다'라는 결론(당위명제)을 유도하고자 할 때, 당위명제가 아닌 사실명제들만을 전제로 하여 그러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은 자연주의의 오류를 포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쨌든간에 일반적으로 이러한 논리적 정당화의 시도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침묵하거나 아니면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내로남불에 대한 논리적 정당화의 시도, 그리고 그에 대한 반론의 시도는 일상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 위의 내용을 반대로 말하면, 논리는 어차피 구성하기 나름이므로 내로남불의 정당화에 대한 논리적 비판도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은 것이 된다. 보다 강력한 비판을 위해서는 결국은 사회적 계기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로남불은 심지어 '수행적 모순'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수행적 모순이란 화행(speech act)의 타당성이 부정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내로남불을 저지르는 발화는 그 자체로 솔직하고 투명한 주장이며, 그 내부에 모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수행하는 A'와 '내가 수행하는 ~A'는 엄밀히 말하면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로남불을 저지르는 발화(표출적 진술)가 아닌, 내로남불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발화(규범적 진술)는 그 타당성 요구에 대한 거부의 가능성을 허용한다. 따라서 내로남불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발화는 수행적 모순을 저지르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규범적 진술에 대한 타당성 요구 주장을 검토하는 작업에는 사회학의 영역이 개입되어야 하고, 언어만을 분석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한 분석이 유보된다.

  요약하자면, 흔한 오해와 달리 내로남불을 저지르는 발화는 그 안에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논리적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 수행적 모순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규범적 진술로서 내로남불을 정당화하는 발화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논리적으로 비판될 가능성이 있으며, 수행적으로도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내로남불의 문제점은 그저 그것이 노골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상호주관성의 측면에서 발화자에 대한 신뢰를 깎을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뿐이다. 무언가를 노골적으로 반복한다는 것은 그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여긴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며, 내로남불의 정당화 시도는 수행적 모순을 가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로남불을 저지르는 사람이 비판받자 '그그같'('그거랑 그거랑 같냐?')이라고 반문하는 클리셰가 설정되어 희화화되곤 하는데, '그그같?'에 대한 반박은 위와 같은 이유로 생각보다 어렵다. 실제로 모든 경우에 그거랑 그거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이 수행하는 A와 내가 수행하는 ~A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그같'이 내로남불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기계적 판단은 사실 그 근거가 미약하며, 그거랑 그거랑 비록 다르지만, 어느 정도 동질적인 성격의 것이라서 같은 잣대를 적용 가능하지 않냐고 주장함으로써 내로남불 정당화 시도의 수행적 모순을 입증하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일 것이다. 그리고 그거랑 그거랑 표면적으로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동질적인 성격의 것이 아닐 경우에는, 내로남불이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비판을 과감하게 돌파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


archived on 2018.12.3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