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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문/이과 융합적 교양 담론을 늘 의심하자

  나는 과학과 인문학 양 쪽 모두를 좋아한다. 하지만 매우 상이한 그 두 가지를 서로 섣부르게 합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 둘을 모든 수준에서 방법론적으로 치밀하게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층 수준에서 병존시킨 다음에 얼기설기 연결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과학과 인문학이 동일한 발생적 기원을 가지므로 그 둘은 사실 하나의 진리로 소급된다는 식의 '세련되지 못한 일원론'적 발상, 혹은 과학과 인문학이 지금까지 서로 다른 것이었지만 양 쪽에 능통한 내가 그 둘을 통합해서 하나의 멋진 컨텐츠를 만들겠다는 식의 '르네상스'적 발상 같은 것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발상들은 주로 종교적 신념과 같은 숨겨진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해서, 아니면 문화산업을 통해 정치적/금전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 발생한다.

  이러한 발상들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나, 많은 경우에 대중적으로 학술의 최전선으로 간주되며 이것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들은 현대에도 '통섭', '융합' 등의 이름을 취한 채,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그것을 선망하는 준비생들에게 일군의 교양적 담론을 공급하면서 문화적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교양적 담론에서 4차 산업혁명 등 최첨단 과학기술처럼 보이는 것과 명상과학 등 사이비적으로 보이는 것의 기이한 결합이 종종 관찰되는 것은 아마도 이 둘이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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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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