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쯤 전에 '젠더 이퀄리즘'의 개념적 공허함이 폭로되었음에도, 이퀄리즘은 그 이름만 '성평화'로 바꾼 채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에는 나무위키가 아닌 위키백과에 '성평화'문서가 만들어져 있다(위키백과 '성평화' 문서 링크. 내용이 부실하여 삭제 토론이 걸려 있다). 또한 한국성평화연대의 첫 워크숍 장소는 청년우파의 아지트 [라운지리버티]였으며, 몇몇 정당에서 한국성평화연대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 오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들 이퀄리스트들의 가장 큰 문제점 두 가지가 있다. 그 문제점들은 '이퀄리즘'이라는 이름보다 '성평화'라는 새로운 이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첫번째 문제점은, 이들이 내세우는 평화는 다름이 아니라 그저 겉보기에 싸움이 발생하지 않는 '기만적이고 억압적인 평화 상태'라는 것이다. 둘째, 이들이 하는 모든 활동은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을 비판하는 데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성차별의 개선이라는 보다 실질적인 문제에는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렇게 되면 성차별 타파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면서 그 안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를 뿐이라고 누가 믿어 주겠는가? 성차별의 타파를 향한 사회문화적 실천을 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이들 이퀄리스트들의 주장을 '내부 비판'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외부의 적'으로 봐야 할지는 명약관화하다.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함께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실질적 문제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진대, 이들의 행보는 그런 방향과는 정반대되며, 오히려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형태만을 주로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바로 개념적인 게으름과 비겁함이다. 사실 이걸 지적하는 것은 순전하게, 없는 개념인데 있는 척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내 개인적 성향 때문이다. 아래의 이퀄리즘 글에서도 지적했듯, '지금까지 없었지만, 선언을 했으니까 이제 있는 거 아니냐'라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아래의 글에서 '이퀄리즘'을 '성평화'로 바꾸어 보자. 2년 전 글이지만 현재의 상황과 완벽하게 겹친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바로 개념적인 게으름과 비겁함이다. 사실 이걸 지적하는 것은 순전하게, 없는 개념인데 있는 척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내 개인적 성향 때문이다. 아래의 이퀄리즘 글에서도 지적했듯, '지금까지 없었지만, 선언을 했으니까 이제 있는 거 아니냐'라는 주장은 잘못되었다. 아래의 글에서 '이퀄리즘'을 '성평화'로 바꾸어 보자. 2년 전 글이지만 현재의 상황과 완벽하게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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