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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1일 월요일

신선놀음 설화와 시간적 숭고의 가능성

  알고 있는 설화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을 낳은 설화이다. 산에 나무 하러 들어간 나무꾼이 신선들의 바둑놀음을 잠깐 구경하는 사이에 어느새 가지고 온 도끼의 자루가 썩어 있었고, 이에 갸웃거리며 산을 내려와서 마을로 가 보니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 설화는 연출 및 스토리텔링에 따라 희극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시간을 멍하니 보내서는 안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설화를 생각할 때 왜인지 모를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다. 각종 설화들에서 괴물들이나 신적 존재들의 크기가 이렇게나 컸더라, 이렇게나 복잡하게 생겼더라 할 때는 그 숭고감이 사실 그렇게 잘 와닿지는 않았는데(나의 상상력 부족 탓일지도 모른다), 이 설화에서는 시간축 상에서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인물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대규모의 시간성을 마주하도록 함으로써 군더더기 없는 방식의 '시간적' 숭고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러한 시간적 숭고가 내게는 상당히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숭고감이 기본적으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대상 혹은 양태를 뜬금없이 대면하게 될 때의 불쾌감으로부터 유발된다고 보는 입장에서(이는 칸트의 견해를 나름대로 수용한 결과이다), 시간적 숭고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종종 한다. 예를 들어서 시간에 따라 극도로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형물은 그 공간적 크기가 작더라도 양적으로 지극히 많은 것을 담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숭고감을 유발할 수 있다(이에 따라, 시간성을 도입한 조형물에서는 '아기자기함'과 숭고함이 한끝 차이인 것도 가능해진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이후로 밝혀진 시간여행의 가능성들 역시 이러한 종류의 시간적 숭고를 낳기도 한다. 빠르게 움직였다가 멈추었을 뿐인데 바깥 세상에선 극도로 많은 시간이 지나 버렸고 그것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불쾌하면서도 경이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를 설정에 도입한 작품 중 대단히 유명한 것으로 <인터스텔라>를 꼽을 수 있겠다.

  설화들에서 나타나는 설명을 거부하는 숭고감(아무튼 그랬대!)과 현대의 스페이스 오페라 류의 잘 설계된 장엄함의 차이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내가 많은 작품을 접해 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후자에서는 큰 규모의 대상이나 양태를 납득 가능하고 인과적인 설명으로 풀어내면서 극중 장치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이로써 작품의 장엄함은 획득되지만 그 대상들 자체의 아우라는 제거되곤 한다. 사실 나무꾼이 들어간 동굴은 숨겨진 우주선의 입구였고,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동안 우주선이 광속의 0.9999999999배의 속력으로 움직였을 뿐인 게 아닐까? 장르 자체가 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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