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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26일 수요일

극우적으로 동원되는 종교와 과학: 부당하게 자연화된 가치명제로서

 '차이를 인정하고 살라'는 주장은 우생학스럽고 차별적인 것인데도, 나름의 논리로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아서 찾아볼 때마다 놀란다. 예전에는 그 메시지를 나름대로 감추려 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아예 저 문장을 직접 말하는 경우도 많이 보인다.

박근혜정부 때 권력과 결탁했던 청년단체 쪽에서 좌파를 욕하던 맥락도,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차이가 있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걸 부당하게 전복하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한때 관심을 모으던 성평화라던가, 보수 유튜버들이 패시브로 깔고 가는 안티페미니즘(이는 사실 보수뿐 아니라 반대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에도 있으나 여기서는 일단 그것을 선명하게 극우담론에 복무시키는 매체 위주로만 다룬다)도 그렇다. 많은 청년 대안우파 흐름이 있지만 그들의 핵심은 결국 저 메시지로 요약된다고 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건 전통적인 성역할을 자연적인 것으로 강조하고 뉴에이지(?),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경계하는 극우 개신교 논리와 통해 있다.

물론 디테일한 차이점은 있다. 먼저 기독교 보수주의에서는, 상술한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자신들의 세계관 상에서의 모종의 질서가 붕괴될 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우려한다. 반면 청년 대안우파는 주로 과학과 이성을 내세워서 차이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과학 중 꽤 많은 것들은 사실 부정할 수 없는 '과학지식'이라기보다는, 환경과 사회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사회적 선호 같은 것을 과학적 진리라고 본인들 마음대로 생각한 것이거나, 혹은 그렇다고 주장하는 함량미달의 과학을 인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그들이 말하는 과학은 부당하게 자연화된 가치명제로서, 종교에서 말하는 자연의 섭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다.

물론 모범사례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사례에서 과학지식과 종교적 신념은 생산되고 소비되는 과정 자체가 매우 다르다. 그러므로 나는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과도한 신봉에서 오는 폐해를 비판하는 취지에는 동감할지라도) 그 차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이 외곽지대에서 왜곡된 형태로 극우논리에 동원되는 방식은 서로 별로 다르지 않다. 극우 개신교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이 기독교에 기반을 두었다는 등 자신들의 세계관과 세속국가인 한국의 국가관을 얼토당토않게 동일시한다. 이들은 심지어 국가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보수주의에 친화적이지 않은 국가권력은 제대로 된 권력으로 인정을 안 한다. 한편 청년 대안우파에서도 나름의 논리를 기반으로 좌파이념이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이질적으로 출발한 저 둘은, 자연스러운 차이가 지워짐에 따른 사회(혹은 국가)의 붕괴를 우려하는 보수주의라는 한 몸체의 양쪽 바퀴로 귀결된다.

이 양쪽 바퀴가 향하고 있는 길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먼저 청년 대안우파의 경우 크게 성폭력 개념의 확장에 따른 공포, 문화컨텐츠에 대한 PC로 요약되는 좌파적 개입에 대한 반감, 그리고 군대문제가 핵심으로 보인다. 앞의 두 개는 사실 잘못 흘러간 케이스가 분명히 없지는 않았던데다(그러나 잘못이 없다고 잘못 알려진(...) 케이스 역시 분명히 있다), 기존에 디폴트로 존재해온 잘못된 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에 그것과 싸우다 보면 헛발질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문제성은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대응하지만, 디폴트로 존재해온 문제적 인식은 별로 인정하지 않고, 타개하는 데 협조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문화컨텐츠에서 여성 소비자들의 발언권이 확장되는 과정 속에서 길게 봐야 하고, 더욱 시급한 것은 군대문제가 아닐까 한다.

군대 문제는 근본적으로 어처구니 없이 심각한 것이 맞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실질적인 개선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평상시 복무환경뿐 아니라 의료시스템이나, 사고 발생 시 대처 역시 매우 열악하며, 단순히 열악함을 넘어서 '할 수 있는데도 안 해서' 문제가 터지는 군대 특유의 뭣같음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잘만 한다면 정치적 효능감을 건전하게 발휘할 기회도 있을 것이나, 적어도 현재와 같은 식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그리고 보수정권이 아닌 현 정권에서 군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점이 많은데 이에 대한 홍보 역시 필요하다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개신교 극우주의에 대한 대응 문제다. 먼저 극우 개신교 커뮤니티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여러 '이상한' 주장들이 비과학적이며, 나아가 종교적 신념이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 자체가 우려스럽고 위험하다는 식의 비판은 많은 비종교적인 이공학도의 입장에서 꽤나 매력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명히 있는 종교적 경향을 지나치게 타자화시켜 오히려 그에 대한 통찰을 방해하고, 종교에 대해 인류가 기존에 쌓아 온 '문과적' 학술지식과의 접점이 많지 않아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정작 필요한 곳에 잘 가 닿지를 않는다. 예컨대 소위 신무신론의 일각에서 이야기되는 '밈 이론'은 방법론적으로 학술이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적, 유비적인 낯설게 보기에 가까우며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도 많지 않아 보인다. 극우 개신교의 이상한 주장들이 가진 문제점을 링 위에 올리려면, 그 주장들이 생산되고 소비되며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구조를 사회학적으로 따지는 구체성이 필요하다.

현재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서 나타나는 반사회적, 음모론적 태도를 포함하여, 한국 극우개신교에서 이상한 지식이 아무렇지 않게 유통되는 것은 현상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현상의 '원인'에 보다 가까운 것은 공적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지역사회 커뮤니티 기능과, 노인과 탈북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심지어 교육 기능 일부까지 과도하게 종교단체에 위임(극우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되어 있는 상황 자체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책임을 위임하는 대가로, 세속사회와는 다른 인지도식이 신도들에게 체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어떠한 반사회적 신념이 침투할지는 근본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며, 그 중 일부가 정치적으로 동원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암묵적으로 위임된 공적기능을 집행하는 종교활동 현장에서 사적 신념이 설파되는 것 자체를 국가가 신경써서는 안 되고, 게다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종교의 직접적인 정치동원만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만 해도 위험할 수 있다. 한편 비종교적 민간영역은 복지를 굴릴 유인이 없다. 따라서 이렇게 종교단체에 과도하게 위임되어 있는 사회적 기능을 비용을 들여서라도 국가가 어느정도 회수하여 집행할 필요가 있다. 공적 프로그램에서라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감시와 의견표출이 비교적 자유롭고, 조직 역시 종교지도자와 같은 특정인으로 소급되지 않기 때문에 보다 건전한 운영이 가능하다. 한편 세속적 민간영역에서 관심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각종 복지프로그램에 대한 진심어린 참여 및 감시와 함께, 컬트적이지 않은 지식을 공적 영역, 특히 교육 등에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것 역시 절실히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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