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으로 정리는 못 하겠어서 러프하게 나열만 해둠.
스포일러(?)가 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줄거리를 디테일하게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여서 크게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음.
1. 과학적 소재 및 설정에 대해
먼저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에서 늘 큰 떡밥이 되는, 소재 및 설정에 대해 생각해보자. 뭐 아래에서 길게 쓰긴 할 테지만, 사실 마이너 디테일이다. 영화 관람은 물리학적 원리 그 자체보다는 시간역행이 가능하다는 것만 알면 되고, 그 나름의 시간여행 설정이 일관적이면 된다고 생각해서, 디테일한 고증(이를테면, 시간을 역행하는데 순행자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게 일관성있게 정당화 가능한가 등)을 하고 싶은 욕구는 별로 들지 않았다.
사실 소재 자체(인버젼의 물리학적 원리)는 영화 감상에 그렇게까지 큰 진입 장벽은 아니었다고 본다. 만약 엔트로피 등에 대한 언급이 없고, 장치를 통과하면 시간을 역행해 갈 수 있다는 그 점만 소개되었다고 해도 작품 이해에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재미가 떨어졌겠지만...). 어려웠던 것은 오히려 설정보다는 스토리였던 것 같다. 테넷이라는 조직과 사토르의 조직이 펼치는 작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려면, 물리학적 원리를 공부하는 것보다는, 복잡한 시간선을 잘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큰 얼개는 알겠는데 최종 작전의 디테일은 아직 모르겠다...).
한 가지 눈에 밟혔던 점은, 역행과정 중에 순행과정 속의 '나'와 접촉해야만 소멸한다는 설정이다. 애초에 '나'의 경계가 애매하지 않은가? 역행과정 중의 '나'가 반물질이라면, 실제로는 '나'든 아니든, 그냥 순행과정 속의 아무 물질과 만나도 소멸해야 한다. 따라서 실제로는 소멸을 막으려면 방호복으로 감싸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장 같은 것으로 진공 속에 띄워져 있어야 할 것이며 그러면 영화상의 여러 작전 장면들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뭐 상술했듯 이 정도야 그냥 설정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나무위키에서는 시간역행 중에 산소호흡기가 필요한 것이 시간이 거꾸로 가므로 호흡이 곧 산소를 뱉는 것이 되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다기보다는 역행자는 반물질인데 순행과정의 산소는 물질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외에 뭐... 열의 흐름이 반대로 된다거나 하는 디테일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역행자 입장에서는 평범한 온도였다가 불에 닿으니 추워지는 것인데, 순행자 입장에서 그 장면을 보면 차갑던 애가 불에 닿아서 평범해지는 것이니 말이 된다.
2. 영화 내용에 대해: 첩보영화적 특성과 수렴적 구조에 주목하여
크리스토퍼 놀란은 근본적으로 범죄 영화, 첩보 영화 감독이구나 싶었다. 인셉션 및 다크나이트 3부작에서는 내용상 직접적으로 그러했으며, 놀란의 초창기 작품도 그런 장르였다고 알고 있다.
본작은 '세상을 구하는' 영화이며 과학적 설정이 대거 채용되었음에도, 모험적 색채가 있었던 <인터스텔라>와는 달리 그러한 범죄 및 첩보영화의 색채가 짙다. 아마도 영화의 핵심 사건에 있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시적인 이유 역시 제시되기는 하지만) 사토르라는 개인의 동기가 강력하게 부각되기 때문인 것 같다.
범죄, 첩보 영화에서는 주로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지식을 바탕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소수의 인물들이 극을 주도하며, 그 결과 역시 바깥에 공표되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놀란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한 술 더 떠서 그 인물들 역시 결국은 거대한 설정과 서사의 도구로 복무한다.
역행과정의 실현이 가능해지고 그것이 순행과정과 상호작용하는, 새롭게 발견된 현상이 영화를 성립시키는데, 영화에서 펼쳐지는 작전은 그 새로운 현상을 활용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이 일으킬 파국을 방지하고 존재를 은폐하여 기존의 것들을 수호하기 위함이다. 영화의 구체적인 흐름 역시 열린 구조라기보다는 닫혀있는 수렴적 구조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였던 몇몇 장면들이, 후반부의 자기 자신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정확히 표현하지는 못하겠는데, '일어난 일은 일어난 것이다'(?), '미래세대의 일은 미래세대의 몫이다'라는 대사들에서도 묘하게 그런 색깔이 느껴진다. 놀란 특유의 시대관, 세계관이 영화 속에서 '과학적으로 그러할 수밖에 없'는 것, 혹은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영화의 근본적인 성립 조건이 된다. 말하자면, 자연화된 한계인 것이다.
사실 <인터스텔라>도 그러한 면이 있다. 물론 <인터스텔라>의 주요 소재인, 갑자기 등장한 웜홀은 파국이 아닌 구원을 향하고 있으므로 <테넷>의 인버젼과는 다르다. 그러나 강한 중력 하에서는 시간이 엄청나게 왜곡되어 흐르고, 그것을 결코 돌이킬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주인공의 딸이 주인공보다 훨씬 늙게 되는 것은 상술한 자연화된 한계에 해당한다. 테서랙트를 통한 과거로의 신호 전달이 가지는 수렴적 구조도 <테넷>과 비슷하다. <인터스텔라>에서는 구원을 향한 모험서사가 주는 발산적 숭고감과, 이러한 자연화된 한계가 주는 수렴적 숭고감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반면 <테넷>은 훨씬 더 수렴적이다. 경고된 파국은 세계 전체가 멸망하는 것인데 설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특히 모험장르가 아닌 첩보장르의 특성상 그런 식으로 가면 긴장감을 유지하기 쉽지않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예상가능한 방식의) 문제의 해결은 반쯤 보장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디테일에 집중하여, 기존의 영화들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서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볼 때 시간여행이 소재라고 주워들었기 때문에, 쥐가 버튼을 눌러 앤트맨을 복귀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미래의 히어로들이 과거로 가서 쥐를 조종해서(...) 앤트맨을 복귀시키는 것인 줄 알았다(물론 실제로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이러한 방식에서는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간 것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시간의 흐름은 순행이다. 사실 대부분의 시간여행 영화에서 그러할 것이다. 반면에 이번 <테넷>에서는 시간이 아예 역행하며, 이러한 대담한 설정 속에서 장면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이 설정 속에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야 일관적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유의미한 장면을 만들지를 머리 싸매면서 고민했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서 '아 이건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오슬로 프리포트에서 등장한 괴한들의 정체, 배에서 어떤 여성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 영화 후반부에서 어김없이 떡밥 회수가 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여러모로 (지극히 복잡하긴 해도) 스토리상으로 떡밥을 남기기보다는, 깔끔하게 매듭짓고 끝내는 듯한 영화였다. <인셉션>처럼 해석이 분분한 결말도 아니고, <인터스텔라>처럼 그 정체가 해명되지 않는 존재가 개입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미래의 인류가 알려준 것이 아니라 고차원 외계인 같은 존재가 맞다는 내용을 본 것 같다). 물론 내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미회수 떡밥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다.
<테넷>에서도 역시 놀란 감독 특유의 차갑고 비인간적인 영상미(...)는 유지된다. 대표적인 것이 예고편에도 등장한, 바다 위에 풍력발전기가 쭉 깔려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액션 씬과 전투 씬도 상당히 다이나믹하게 연출되며, 특히 시간 역행을 이용한 비교적 소규모의 신기한 장면들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때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가 대단히 좋아하는 구성방식이 있다. 지구적인(?) 운명이 한두 사람의 삶의 장면과 근본적으로 얽혀서, 그 장면이 그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대표적인 것이 <트랜센던스>이다). 이 영화에서는 바로 사토르와 캣이 등장하는 배 위에서의 장면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애틋하고 운명적인 사랑과는 정반대로, 불화와 긴장이 극대화되는 내용이긴 했지만 말이다. 전지구적인 운명이 한두 사람이라는 좁은 창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이런 식의 연출은 묘한 숭고감을 자아낸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