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교훈(?)은 없고 재미로 써보는 학창시절 얘기.
중고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누구는 재능이고 누구는 노력파라는 식의 설왕설래가 꽤 있었다. 나는 공교육과 사교육에 널리 걸쳐있는 소위 영재교육(?) 클러스터에 다소 뒤늦게 진입해서 나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아이들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런 얘기들에 상당히 과몰입하게 된 편이었다.
또한 그런 것들이 사람 성격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문자 그대로 공부 방식에 대한 얘기로 받아들였고, 그땐 그게 나한테 더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특히 더 신경썼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나는 노력파 이미지로 종종 패싱되었는데(특히 중학교 때) 그게 상당히 불만스러웠다.
위에 말했듯 친구들이 그런 얘기를 할 때 반쯤은 실제 공부 습관에 대한 거였겠지만, 또 반쯤은 평소 성격을 보고 이미지화한 것 아니었겠나. 그런데 성격상 머리속의 착상을 적재적소에 짠 하고 꺼내놓기 어렵다보니(난 이게 의도하든 안 하든 일종의 쇼맨십 같은 면이 있다고 본다), 소위 천재 이미지를 갖는 데 있어 핸디캡을 깔고 가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남들이 아예 모르는 뭔가를 가져와서 풀면 뭔가 대단한 취급을 받기도 했는데, 나는 어머니가 교사셔서 그런지 학교에서는 학교 것만 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정석이나 학원 교재 꺼내면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또한 어려운 거 해서 멋있어 보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내가 하면 위화감이나 조성되고 말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노력파에 씌워져 있는(혹은 나에 대해 내 맘대로 만든 것일 수도 있는) 은근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사실 노력을 안 해도 문제가 풀리면 굳이 노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천재가 노력파보다 기본적인 우위를 깔고 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솔직히 수학문제를 막 애써서 푸는 것보다는, 고민 좀 하다가 한번의 착상으로 간단히 푸는 게 더 멋있어 보이지 않나.
그런데 나는 내가 하는 노력이 흔히 말하는 루틴한 노력과는 전혀 다르게, 이해와 재미에 기반해서 지식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나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공부한 게 노력이라는 단어로 평면적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사실 순전히 기계적인 노력이라는 게 어디 있겠나. 다들 각자마다의 방식으로 능동적으로 지식을 처리할 것이다. 고등학생쯤 되고 공부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그런 각자마다의 처리방식을 자연스레 들어보고, 배우기도 하면서 이런 종류의 생각은 조금씩 해소되어 갔다. 또한 내가 꼭 우직한 노력파로만 보이고 있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적분 같은 교과과정 수학과 달리 기하니 정수니 하는 경시수학은 아무리 해봐도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걸 잘 하는 친구들을 보면 진짜 머리가 좋은 게 있긴 하구나 싶기도 했다. 필요한 도구를 차근차근 익혔으면 좀더 잘 할 수 있었을지, 아니면 그래도 못 했을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뭐 내가 더 하기 싫어서 안했으니 미련은 없다.
요약하자면 재능이니 노력이니 하는 남들의 잣대가 평면적이라고 생각해서 불만을 가졌지만, 사실은 반대로 내가 가진 관점이 평면적이었기 때문에 안 가져도 될 불만을 가졌던 게 아닐까 한다. 총체적으로 보고 대범하게 생각하면 좋을 텐데 시야가 좁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학에 오고 나서도 내가 범접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무척 비범한 성과, 혹은 아예 몰랐던 카테고리의 성과를 발견하면 위와 같은 사고방식이 발동돼서 종종 큰 부러움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그 부러움을 촉발한 사람과 운좋게 가까워지고 얘기를 많이 듣다 보면, 아 저게 어떤 종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거구나, 얼만큼 시간투자를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이해가 되면서 비로소 그 사람이 좀 사람같이(...) 느껴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여러번 겪은 게 나한테 꽤 많은 도움이 됐고, 가끔씩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으면 발을 딛어 보기도 했다.
여튼 이런 과정을 통해 실력이라는 것의 정체를 무협지스러운 과몰입에서 약간은 벗어나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오가는 지능에 대한 설왕설래를 보면서 느껴지는 오글거림도, 사실 그것들에서 나한테 깊이 자리잡은 사고방식이 거울처럼 비춰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꼭 과거의 일만도 아닌 게, 매력적인 지적 성과물을 볼 때 그러한 사고방식이 다시 작동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이러한 쪼잔한 과몰입과, 지식추구에 대한 자의식 과잉이 공부하는 동력에 있어 한가지 축을 이루고 있는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앞으로도 이를 잘 통제해 가면서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활용해야 하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