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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8일 목요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1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그 배경이 된 궐위의 사유가 사유이다 보니, 민주당이 '져야 마땅한' 선거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서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는' 선거구도는 초반까진 분명히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크게 진 것은 먼저 궐위의 사유가 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이 불충분함을 넘어서 무척 부적절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정책실패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탓을 계속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잘못 앞에 솔직하지 못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에도 불구하고 시정을 내줄수 없다는 위기감이 지나치게 솔직하게 표출되면서, 피해를 입은 유권자들을 도리어 공격한 게 문제였다고 본다. 원팀이 되어 메시지의 교통정리를 확실히 하는게 그간의 장점이었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고 우왕좌왕하는 느낌이 컸다.

읭스러운 몇몇 공약과 해프닝식의 실언들은 몇 있었지만 후보의 역량과 전반적인 정책의 디테일은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실망한 여론에 그런 게 수월하게 전달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지형이 원망스러울수 있고 실제로 무리한 보도와 불충분한 정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전반적으로 후보와 정책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심판의 정서가 주도한 선거였던 것 같다.

보수 우세지역에서의 결집은 그렇다 치고 민주당의 전통적 우세지역에서도 민주당이 모두 밀린 것은, 부동산정책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평가에 기득권 수호를 위한 눈속임이 관여했다는 식의 도식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정반대로, 여당쪽 인사들이 사다리 걷어차기 하는거 아니냐는 인상까지 줘버렸지 않나. 집 마련을 준비할 나이가 됐는데 집값이 급등해서 못 사게 됐으니 화가 난다는 게 그렇게 복잡한 얘긴가? 그리고 앞으로는 안정될 건데 유권자들이 그것까지 내다보지 못한다는 얘기도 결국은 유권자를 탓하는 것이라 자제해야 한다.

또한 시의 고위공무원 중에서는 관료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운 느낌으로 시장을 보좌하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소위 정무라인?), 현재 민주당 일각, 특히 박원순 전 시장과 가까웠던 쪽에서 박원순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 단순히 상징적으로 단죄하는 차원이 아니라 피해자의 실질적인 일상회복이라는 측면에서도 사람들이 민주당계열 시정의 연장을 바라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세대론도 어김없이 많이 등장했다. 유권자들에 대한 진단은 설득과 전략수립이 목적이라면 정당하지만 훈계가 목적이라면 감정표현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모든 분석은 단순히 분석에 그치지 않고 그 분석대상인 현실에 영향을 주는법이다.

일반 지지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선거국면에서의 유불리와 연관되어 표출된다면 좋은 소리를 듣기는 당연히 힘들다 (사람들이 뉴스만으로 정치를 보나? 손윗가족이나 업계 선배가 세대론을 설파하면 그런 것도 결국도 다 인식에 영향을 주지 않겠는가). 욕먹는 특정세대가 설령 민주당에 몰표를 줬더라도 다른 세대에서 쭉 빠진걸 compensate하기 어렵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나아가 당직자는 아니지만 영향력이 강한 사람들이 외곽에서 하는 일들도 이번엔 문제를 많이 일으켰다. 물론 외곽에서 좀더 자유롭게 이것저것 하면서 지원하는게 선거에 도움이 될 때가 있지만 이번엔 해가 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았다. 지지자들의 의지에 따라 당이 행동하게 되는데 어떻게 그 두개가 칼같이 분리되나. 정신 차리자는 바른말은 배제되고 결집용 언설들만 떠돌았다.

반동적인 시정을 봐야 하는건 화가 나지만, '이렇게 한 이상은' 민주당이 질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는 데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반동 대 개혁의 구도 자체가 엄밀하게는 프레임일 뿐이기도 하고, 실효적으로 과연 얼마나 개혁적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궐위사유인 성폭력이 가장 큰 원죄지만, 정말 믿을만한 대응, 믿을만한 쇄신을 했다면 그래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할수 있었을것 같다. 그러게 좀 더 잘 하지 그랬을까 하는 생각들, (시장선거지만 정부여당에 대한 평가 성격이 있는만큼) 앞으로는 정신차리고 잘 할까 혹은 더욱 위기감만 보일까 하는 궁금증들만 든다. 내가 누구 뽑았는지는 안쓰겠다. 오세훈이랑 허경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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