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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0일 금요일

윤석열 예비후보의 과거와 현재

과거에 썼던 몇 개의 글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관련해서 해볼수 있는 논의들의 결을 깔아 놓은 바 있다 (하단에 링크함). 그 결들이 현재까지 꽤나 유효한 것 같아 그 연장선 상에서 윤석열의 현재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2013년 내내 언론에 오르내린 국정원 덧글사건은 내가 정치에 본격적 관심을 가진 첫 계기였다. 당시 윤석열 검사가 많은 국민들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발언은 직분에 충실한 검사로서의 직업윤리를 무척 잘 설명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민주적(?)인 가치와 얼만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인지는 사실 의문이다.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대단히 가치있는 하나의 구현사례는 될수 있으나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요체까지는 아니라는것.

그래서 민주당 쪽 정치인들의 윤석열 응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한 걱정이 되었다. 윤석열이 정치적 신념이 아닌, 검사로서의 신념 때문에 그렇게 하는것이기를 바랬고, 새누리당 정권의 외압도 이겨내야 하지만 동시에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과도하게 이용되지도, 과도하게 신뢰받지도 (이 둘은 어찌보면 동의어다) 않았으면 했다. 이건 정권이 교체되고 윤석열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것은 검찰총장 취임 시점이었다. 당시 대검 대변인실에서 낸 자료를 보자.

"신임 총장은 시카고학파인 밀턴 프리드먼과 오스트리아학파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고, 자유시장경제와 형사 법집행 문제에 관해 고민해 왔다”, “시장경제와 가격기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인류의 번영과 행복을 증진해 왔고,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검찰총장에게 기대되는 종류의 발언인가? 물론 기업활동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오히려 원칙을 어기는 재벌기업을 단죄해야 한다고 선해할 수 있고 실제 본인의 생각도 이런 느낌이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메시지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당식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구분짓는 (물론 그 연료를 민주당 정치인들이 잊을만하면 제공해주지만) 보수우파 특유의 자유관(觀)과 겹쳐 보이는, 그리고 헌법의 자유 개념보다는 불필요하게 한 발짝 더 구체적인, 어찌보면 무척 '정치적'일 수 있는 메시지였다.

그 미묘함을 뒤로 하고 총장 임기는 시작이 되었고, 조국사태를 거치며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시계를 다시 현재쯤으로 돌려보자. 한국정치에서 아직까지 제3지대 독자세력화는 환상이다. 제3지대에 가장 합리적, 중도적인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국민적 기대와는 달리, 건전한 정당정치의 문법을 따르지 않고 과도하게 개인플레이로 승부를 보려는 인물들이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당에 있는 유능한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독자세력화를 추구하면서 소위 '멘토'(대개 신뢰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들한테 과외수업을 받는 전형적 형태가, 정치신인인 잠재적 대권주자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것같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대권주자들이 그런 방식으로 여전히 독자세력화를 꿈꾸는듯하다. 설령 그것이 입당 시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포석일지인정 말이다.

그러나 윤석열 예비후보가 정치입문 초반에 국민의힘 입당을 안 한 것은 순전히 그런 제3지대를 향한 자기과신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고 본다.

보수 진영에서 2010년대 초중반에 특히 흥했던, 경제를 소리높여 외치는 젊은 우파 자유주의자들은 신기하게도 거대 보수정당보다는 주로 위와 같은 제3지대 근처의 군소집단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장예찬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사람은 거대 보수정당에도 몸담았지만 역할이 한정적이었고 언제나 외곽 활동이 더 돋보였다).

이런 걸 위의 대검 대변인실 자료와 연관지어 볼때, 윤 전 총장은 거대보수정당 바깥에 있던 그 사람들과 실제로 사상적으로 잘 맞다고 생각해서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본인의 사상이 없는 소위 '정치 괴물' 타입은 아니고 오히려 독서와 토론을 통해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있는 타입에 가깝다는것. 이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오랜 지인들의 증언들과도 일치한다.

그러면 그렇게 거대정당 바깥에서의 잠행을 거치면서 도출된 출마선언문은 어땠을까? 나는 상당히 인상깊게 봤다 (직후의 기자회견은 안봤다). 자유민주주의와 민주당식(?) 민주주의를 나눠서 생각하는 그 인식의 코어에는 비록 위에 쓴 뉴라이트적 자유관이 자리잡고 있지만, 민주당 정권의 실책 중 꽤 많은 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유로운 욕망의 무시'라는 키워드가 유통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과 언설 자체는 대중 일반에게 상당한 소구력을 확보한 상태다. 즉 자유민주주의 신념 강조는 실제 본인의 생각이면서, 무척 잘 잡은 키워드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과학기술과 경제, 국가의 미래를 연관짓는 대목도, 4차산업혁명, 그린뉴딜 등에 비해 혁신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관점이 돋보였다.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에서의 포지션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대목도 인상깊었다. 나는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보편가치의 모범적 담지자로서 확실하게 포지셔닝 시켜놓길 바래왔는데, 4년간 미진한 점이 많았고, 도리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윤 전 총장이 정확히 그 말을 해버렸다. 여러모로 중도우파와 우파가 열광할 만한, 그리고 민주당은 위기감을 느껴야 할만한 (건전하지 못한 자유관이 보편화될수 있다는 점, 그리고 자신들이 하지 못한 좋은일들을 하겠다고 한 점), 잘된 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플레이에는 곧바로 한계가 왔고, 정당조직의 노하우가 없는 독자적인 캠프도 허점을 많이 노출했다. 출마선언과 달리 기자회견에서는 별다른 명언 같은건 안 나온 듯하고, 대대적으로 개설한 페이스북 계정의 소개 문구는 요즘 말로 '억텐' 그 자체였다. 좀 더 나중에는 후보 본인의 120시간 발언은 물론이거니와, 참모의 "좌파입니다, 질문 안받아도 됩니다" 이런 발언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반기문 시즌2가 되어가는 것인가 하고 있었다.

오늘자로 윤석열 예비후보는 국민의힘에 입당을 했다. 물론, 그렇게 강단있는 이미지를 유지하더니 결국은 거대정당으로 간다고 비꼬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정당이 마련해둔 절차, 그리고 산전수전 겪은 정당정치인들과의 덜 불편한 관계를 형성할수 있다보니 후보의 파괴력이 조기에 소진되지 않게 되었다고 본다 (물론 다른 논란성 변수가 터지는건 별개 얘기다). 쥴리 운운하는 걸 진지한 공격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위기감을 좀 가져야한다.

문제는 이거다. 이렇게 해서 확고한 정치인으로 거듭난다면 윤석열이 검사로서 걸었던 길이 앞으로 어떻게 해석되게 될까. 윤석열 자신이 검찰 고위직일 당시에 구속이 이뤄진, 범죄를 많이 저지른 전직 두 대통령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다고 하고, 국정원 사건 당시 자신을 향한 외압의 수뇌였던 황교안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이러한 행보들의 결론이 난 뒤에, 윤석열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2010년대 한국정치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윤석열 개인의 정치여정과 사후적으로 연관지어진 해석이 아니라 기존의 민주적 보편가치에 근거한 해석으로 남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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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가 남긴 것
- 윤석열 총장의 딜레마: 검찰개혁을 완수해야만 하는 이유
윤석열 검찰총장의 독특한 캐릭터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클래리티와 로제타폴드: 한국출신 유명과학자들의 강연을 들었던 귀중한 경험들

고1이었던 2012년에 학교에서 해외 체험학습을 갔었는데, 어느 날은 당시 스탠포드에 포닥으로 계시던 정광훈 박사님의 강연을 다같이 듣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의 강연 주제는 뇌에서 지방질을 빼고 하이드로젤을 주입해서 신경망의 연결구조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너무나 신기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느꼈던 신기함 이상으로 실제 학계에서는 더 깊은 임팩트가 있어, 그 연구는 CLARITY로 이름붙은 기술로서 이듬해에 네이쳐에 논문이 퍼블리시되었고 정광훈 박사님은 MIT에 교수로 임용되셨다.


클래리티 연구 당시 그분의 지도교수였던 Karl Deisseroth는 광유전학(optogenetics) 분야의 핵심 기여자 중 한 명으로 광유전학이라는 이름도 직접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클래리티를 위시한 하이드로젤 기술이 또 다른 주요 연구업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아무튼 그때의 강연과 후일담(?)은, 기존에 언론 기사로만 막연하게 접하던 한국출신 과학자들의 대형 연구성과를 언론보도 이전에 좀더 생생하게 접한 첫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 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오늘로부터 딱 한 달 전인 6월 중순쯤, 서울대 박사 출신으로 워싱턴대 포닥으로 계시는 백민경 박사님의 세미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와 함께 단백질 구조예측의 리딩 그룹인 Baker 그룹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계신데, 단백질 구조예측 분야 자체를 개괄한 뒤에, 베이커 그룹에서 어텐션을 이용해서 개발했고 sota에 근접한 구조예측 시스템인 로제타폴드(RoseTTAfold)를 꽤나 디테일하게 소개해 주셨었다.


그저께쯤 로제타폴드 논문이 사이언스에 게재되어 언론보도가 많이 나왔다 (기사 링크). 공교롭게도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2 논문도 같은 날 네이쳐에 게재가 되었다. 알파폴드는 세부사항이 공개가 안되어 있는지라 로제타폴드도 처음에는 알파폴드를 reproduce해보자는 것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알파폴드는 구조 자체에 대한 정확도가 높지만 로제타폴드는 단백질의 고차구조에 따른 기능적인 면을 예측하는데 강점이 있고 (저자분이 물리화학 베이스여서 그렇다는 말도 있다), 또한 누구나 뜯어볼 수 있도록 오픈을 추구해서 두 가지 모두 각각의 의의가 있다고 한다.


백민경 박사님 세미나 때 두 가지 질문을 드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늘 그렇듯이, 날카롭고 구체적인 질문보다는 대략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해서 설명해주십사 하고 뭉뚱그린 질문밖에 못 했는데 질문 취지를 잘 이해해 주시고 우문현답을 해 주셨다.


첫번째로 질문드린 것은 단백질의 생물학적 기능에 있어서 전반적인 구조에 따른 기계적(?)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구체적인 아미노산 시퀀스에 따른 특이적인 기능이 중요한 경우도 많을텐데, 단백질 구조예측이 신약개발 등에서 가지는 잠재력이 정확히 어떤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답변해 주시기로는, 구조예측의 정확도를 표현한 피겨 등에서는 단백질 구조가 3차, 4차 구조들의 레벨에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구조예측이라는 문제 자체는 그런 윤곽만을 맞히는게 아니라 가장 로우레벨인 개별 아미노산의 공간적인 위치까지 모두 맞히는 거라서, 그 답을 바탕으로 위에 쓴 특이적인 기능에 대한 단서까지 구체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나는 기계학습이 찾아내는 피쳐들과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찾은 전통적 피쳐들(과학이든, 미술 같은 것이든)이 얼마나 비슷한지 관심이 있는 편이다. 인간사에도 우연이 개입하고 기계학습에서 찾은 피쳐들도 꼭 필연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학문적 의미가 있는 궁금증이라고 보기는 사실 어렵지만, 그래도 좋은 흥미거리인 것 같다.


알파폴드, 로제타폴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단백질 구조예측 시스템은 end to end 예측, 즉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하이레벨 구조까지 맞히는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인지 1차~4차 구조의 개념이 머신을 디자인하고 테스트하는 연구자에게 inspiration은 줄 수 있을지언정 머신의 학습에 직접 '이용'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학습된 머신을 뜯어보면 그런 1차~4차 구조들과 비슷한 레벨구분이 보일 것인가?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지만, 재미나게도, 실제로 그랬다고 하신다.


여하튼 한국 출신 유명 학자들의 톡을 듣는 것, 내지는 연구결과가 유명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인듯하다. 나도 주어진 토양에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파저티브한 브렠쓰루를 할 위치와 역량을 갖출수 있을까? 최전선에 서서 거기에 있는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면 어느정도 자연스럽게 그런 걸 습득하겠지만, 그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런것과는 별개로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쪽으로 평소에 생각의 습관을 끌고가는건 필요하겠다. 생각을 그저 발산적으로 풀어둔다고 되는 일은 아니고 굉장히 액티브한 지적, 사회적 탐색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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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6일 금요일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청소노동자 사망 건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들의 연속이다. 학생처장이 '자연인으로서' sns에 썼다는 글은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겁박의 언사들로 가득했다. 기숙사를 담당하는 또다른 교직원이 단체메일로 발송한 글 역시 전형적인 책임회피와 겁박의 언어로 되어있었다. 두 글 모두에서, 해석의 여지가 있거나 직원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넘어, 아전인수격 해석이거나 아예 거짓에 가까운 내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있다. 게다가 문자메시지 등 처음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구체적인 정황들도 몇가지 더 나오고있다.


이번 일로 결국 보직사퇴한 학생처장은, 갑질을 했다고 지목된 안전관리팀장의 석사논문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하여간 불필요한 시험을 보게하고 점수를 공개적으로 얘기했다는 대목까지 연결지어 보면, 서울대 석사출신 화이트칼라 정규직 교직원이라는 자의식을 과잉되게 가진 채로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게 한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이것이 외부인들이 이번 보도를 보는 기본적 인식이다). 만약 정말 그랬던거라면 최악이다.

고용형태 등에 있어 선의에 의한 완벽한 해법이란게 가능하냐, 유효하냐 이런 얘기도 나온다. 논해 볼 수야 있겠지만 난 그런 얘기들이 지금 상황에서 소리높여 나오는것 자체가 다소 논점일탈 같다. 그런 논의들은 노조를 겁박하는 이러한 20세기적 행태가 중지될때에야, 그리고 사망사건 및 갑질의혹에 대해 학교측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투명하게 나설때에야 비로소 꺼내질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대응들로 인해 이미 신뢰는 사라진지 오래다.

학생들도 한 몫 했다. 뭔고 하니, 대나무숲에 늘 올라오는, 상당수가 한두 사람에 의해 쓰이는 그 장문의 자본싸패(?) 글들이야 원래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대급 글이 이 건과 관련해서 탄생한것이다.

노동을 지속할지 여부가 일자리의 질에 따른 손익계산에 의해 온전히 자발적으로 결정된다는 순진한 가정에 의거해 쓰인 그 글에서는, 절대적인 좋고 나쁨을 논하는건 별 의미없는 가치판단이며, 현실에서는 여러 선택 중 더 나은 것이 무엇이냐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소노동자 사망에 영향을 준것으로 보이는 과도한 업무량 및 불필요한 갑질을 왜 그런 상대적 관점으로 보는가? 직장에서 그런 요소들은 (그것들이 존재해온 사실과는 별개로) 아무리 안좋은 선택지에서도 없어야 하는, 절대적인 나쁨이다. 그 정황이 드러났을때 학교를 비판하는걸 냉소하면서 있을수도 있는 일이라고 하는건 쿨병일뿐더러 기술과 규범을 착각하는 기초적인 지적 오류에 다름아니다.

그 글에는 공공부문 직장 혹은 노조가 있는 직장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근무환경이 나쁜 게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만 가지 이상한 일들이 있게 마련인데,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단언하는가.

이렇듯 보직교수 및 교직원들의 문제발언과, 거창하게 쓰였지만 수준미달인 대숲 게시물은 대학이라는 공간이 지향하고 교육해야 할, 아니 그 전에 고등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법인으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능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학교측에서 못 이겨서라도 제대로 된 대응 하도록 학내외의 관심과 감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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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3일 토요일

[음악 추천] Bubblemath - Routine Maintenance

Bubblemath의 routine maintenance라는 곡. 유튜브 알고리즘이 띄워줘서 알게 된 곡인데 꽂힌 나머지 계속 듣고 있다.


매쓰 록 장르의 음악들을 많이 찾아들어본건 아니지만, 시도의 방향 자체는 참 마음에 드는 데 비해서 그 결과물이 감탄할만큼 만족스러운 곡은 개인적으로 드문편이었다. 복잡한 박자에 치중한게 밸런스가 없어서 너무 뇌절(...) 느낌이거나 (물론 내가 듣는 귀가 부족해서 그런것일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기대에 비해서 확 잡아끄는 요소가 없이 다소간에 소프트하고 흐릿하거나.


그런데 이 곡은 사운드와 구성이 흐릿하지 않고 선명한데다 서사의 완급이 뛰어나고, 단지 머리로만 듣는게 아니라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딱 내가 좋아하는 수준으로 듣는 재미의 밸런스가 조절되어있고(= 나처럼 알못이어도 비교적 쉽게 들을수있고)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것같다. 가사도 신비주의적이거나 SF적인 컨셉트는 아니지만 정신적, 내면적인 것을 표현하는 현대시(?) 느낌으로 해서 무척 재미나게 쓰여있고 곡의 형식과도 적절하게 결합해있다. 앨범 커버 디자인도 2000년대 초반 교과 수업자료(...) 같은 느낌인데 상당히 잘어울린다.


유튜브에서 몇곡 더 찾아보니 이 곡이 제일 좋긴 하지만 다른 수록곡들도 꽤 좋은거 같아서 앨범을 사보려 한다. 사실 인지도가 높은 팀은 아닌것같은데 어쩌다 딱 내 마음에 드는곡이 알고리즘에 떴는지... 하여간 이걸 계기로 이쪽 장르의 다른 좋은 곡들도 많이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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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1일 목요일

자유의 개념투쟁은 더 이상 '먹금'의 대상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비슷한 얘기 했던 것 같긴 한데, 우파 쪽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목소리 높여 외치는 것에 대해서 민주당쪽에서는 꾸준히 가볍게 비웃기만 하고, 뺏기면 안된다라는 진지한 걱정도 대체로 별로 안해온듯싶다. 자유민주주의를 특별히 적극적으로 말 안해도 당연하게 자신들이 담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애초부터 뉴라이트적 구호라고 인식하고 실제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인해, 민주당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부각될 일 자체가 크게 없었다. 또한 정부의 여러 정책이 자유와 반대되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 대해서도 해석이 들어가면서, 이제 대중적 인식상 자유라는 단어는 반쯤은 실제로 우파가 담지하는 가치가 돼버렸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소위 인민민주주의를 대립항으로 놓으면서 시민자유와 기업활동의 자유를 과잉되게 등치시키는 뉴라이트적 도식,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기독교정신과 근본적으로 연결돼있으며 자신들이 그걸 수호한다고 여기는 극우개신교적 도식 등은 당연히 문제가 있다. 또한 보수정권에서 전반적인 시민자유가 증대되기는커녕 퇴행한걸 다수가 목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의 본성상 왜곡된 인식이 축적되면 실재를 유발한다. 그리고 그렇게 유발된 실재는, 정확한 인식에 근거한 실재보다 여러 면에서 해롭다. 그러한 사태를 막으려면 정확한 인식을 적극적, 선제적으로 보여주고 실현해야한다. 그러나 단순히 '설득에 소극적인' 걸 넘어서, 책임자들과 지지자들에게서 자유를 둘러싼 개념투쟁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이 실제로 부족한게 맞고, 합의도 안돼있지 않나 하는게 요즘의 생각이다. 투쟁의 대상이 사라지고 건설자의 입장이 되니까 그런 합의의 부재가 드러난 것은 아닌가.

주당을 좌파라고들 하지만 결국 현재 지형에서 기본적으로 택할수 있는 것은 리버럴일거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깔아둔 방향성 역시 그랬다. 그러나 현재에는 (그리고 차기까지도) 리버럴을 자신있게 표방하는 태도나, 국제적으로 확실히 그렇게 평가받을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는 액션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일각에서 과도하게 폄하하는 것과 달리 전세계적으로 봤을때 제정신인 민주국가에 속하는건 맞을거고, 행정력에 의거한 동원을 민주적 권위가 아니라 반민주적 권위주의로 생각하는 서구권 일각의 평가도 문제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얘기를 하는게 아니다. 산적한 문제들에 대한 확고한 액션을 통해 한걸음 더 나갔으면 좋겠다는것.

보편가치로서의 자유를 둘러싼 논의는 확장성이 많아서 결국 국가의 전반적인 정책기조와 연관이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도 확실한 메시지를 주는 큰 그림이 있다기보다는 단기적인 정책 일변도로 흘러간 점도 아쉽다. '이념적이어서' 문제라고는 생각 안하는데, 일관되고 정합적인 이념적 기조가 아니며 전문가집단에게 지지받지도 못하다 보니 국민들에게 불신, 혼란과 피로감을 많이 준것같다.

우파가 자유를 언급할 때 택도 없다고 비웃지만 말고, 혹은 자유라는 단어를 실제로 껄끄러워하지 말고, 정확한 개념과 확실한 기조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할 의무가 민주당 세력에게는 존재한다고 본다.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며 민주당에 남는게 무엇인가. 직업정치인과 지지자를 막론하고 퍼져버린 질낮은 비웃음과 어설픈 구애를 두 축삼아 서서히 퇴행해가고 말것인가?

일각에서는 민주당은 애초부터 그런 곳이 아니라면서, 민주당에게 그런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기대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약 20년간 민주당 주류에서 꾸준히 쌓아온 논의는 실제로 명백히 그러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본다. 막연한 기대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계승의식으로 보나 현재적 과제로 보나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역량도 의지도 안보이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렇게 안할 거라면 아예 대안을, 그중에서도 현대국가에서 실제로 잘 작동할수 있는 대안을 내놓던가.

이건 윤석열 전 총장의 출마선언을 보고나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 검찰총장 취임 시에 나온 대검 대변인실 설명자료에서도 예고되었고 이번 출마선언에서도 직접 드러났듯이, 윤석열 총장의 자유에 대한 인식 역시 그리 건강하다고 보이지는 않으며, 위에서 말한 뉴라이트적 도식의 영향을 많이 받은걸로 의심된다. 그러나 자유라는 가치를 둘러싼 개념투쟁이, 그저 '먹금'의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에 대한 민주당쪽의 첨예한 인식은 반드시 필요하겠다. 윤석열의 말을 빌리자면 "문명국가의 보편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것이다.

윤석열 자신이 그렇게 하겠다는 발언이긴 하지만 나는 살짝 비틀어서 민주당에게 저걸 강하게 요구하고 싶다. 마스크 5부제를 보고 공산주의 배급이라고 하는식의 결과적으로 틀린 과잉된 언사들만이 비판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국제관계 속에서뿐만 아니라 국내정치에서도, 여러 의구심들을 도매금으로 극우취급 하지 말고, 아닌건 아니라고 확실히 함과 동시에 적극적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한다. 그러나 위에 말했듯 지금으로서는 단지 설득만이 부족한게 아니라 실제로 합의도 역량도 부재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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