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SNL 주현영 인턴기자 컨텐츠를 보고: 배제적 공감이 아닌 포용적 공감으로

있음직한 인간상의 잘된 재현은 그 자체로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으면서, 감상자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의견을 말하고 싶게끔 한다. 그런 관점에서 SNL의 이 기획은 영리하고 성공적인 코미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식의 코미디가 언제라고 없지는 않았겠으나, 이번 기획이 성립한 것에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희극인들의 최근 메타가 대대적으로 성공한 것의 영향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저런 사람 꼭 있지 라는 시청자들(사실 페북러들)의 반응에서 묘하게 다른 결들을 느낀다. 굳이 이분법적으로 써보자면 먼저 한쪽 끝에는 이러한 상황에서 곤혹스러워했던 (혹은 현재도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왼쪽 인물에 공감하는 경우가 있겠다.

한편 반대쪽 끝에는 의사소통에 문제를 덜 겪고 회사 생활에 잘 적응한, 말하자면 '강자적' 입장들에서 서로간에 공감하는 반응도 있다. 그 수위는 저런 사람 꼭 있다를 넘어 저런 사람들 참 잘못됐다, 짜증난다 까지 상당히 넓게 나타난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강자적 반응들은 또다시 남녀노소 등에 따라 각각 메타적으로 비평될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이미 많은 분들이 써주셨다.

왼쪽 인물(인턴기자)의 연기가 무척 부각되어서 그렇지, 형식적으로 두 인물이 상당히 패러렐하게 제시되고 있으므로 이러한 반응 둘 중 어느 쪽도 적어도 작품 내적으로는 틀린 감상이 아닐것이다. 많은 경우에 양쪽 모두에도 공감이 될것이고 말이다. 전자의 경우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나도 한때는 그랬었다, 저런 포멀한 상황이 참 tough하지 하며 위로를 얻을수 있을것이므로, 반드시 왼쪽 인물에 대한 조롱 위주로 극이 구성됐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왼쪽 인물에 소극적으로나마 이입하며 공감을 주고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다만 내가 다소간에 거리감을 느꼈던 것은 위에서 이분법적으로 제시한 두 반응 중 후자의 경우이다. 집단에서는 그러한 짜증섞인 말을 서로 한 마디씩만 주고받으면서 확인하더라도 개인에 대한 따돌림으로 연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해당 인물을 배제하는 방식의 공감이 아닌, 해당 인물까지 포함하는 포용적 공감이 이상적이겠다. 이 두 가지 공감은 그 시작에서는 정말 한끝 차이, 한순간의 호의와 용기 차이이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라고 할만큼 다르며 나중에는 아예 돌이킬수 없게 커진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점을 인지한 채로 그런 짜증을 팀원들과 직접 나누는걸 자제하는 상황에서, 이 극에 대한 감상, 즉 가상인물에 대한 답답함-경험의 공유를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으므로 이런 감상도 반드시 문제적인 태도는 아니겠다. 단지 실제의 인간관계에서 같은 방식의 공감이 발휘된다면 포용적 공감이 아닌 배제적 공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므로 다소 아쉬울뿐이다.

그런데 나는 인턴기자의 행동이 '그렇게까지' 미숙한 건지부터가 사실 의문이다. 물론 뉴스 방송이라는 매우 포멀한 자리를 위해 훈련을 받고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다면 나와서는 안될 장면인 건 맞다. 가장 포멀한 상황에 그러한 미숙한 태도를 갖다붙임으로써 연출되는 아이러니와 함께, 그러면서도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고 충분히 상상할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성이 커진 것일테다.

그렇지만 일상으로 끌고 와 보자면, 왼쪽 인물은 어느정도 전형적인 언행을 끊임없이 수행하면서 열심히 상황을 타개하고 포멀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잉된 형식들만이 난무하고 내용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장담하건대, 만약에 이 극에서 '정말로' 많이 미숙한 태도를 재현했다면 시청자들은 '못 보겠어서'(소위 공감성 수치?)가 아니라 순전히 '재미가 없어서' 감상을 중지했을 것이다. 즉 이 장면이 정말 참을 수 없을만큼 곤혹스럽고 답답한 상황으로 느껴진다면 요즘 말로 [진짜]를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곤혹스러워하면서도 포멀함을 지키고자 하면서 열심히 사회생활 하는 초년생 정도이지, 뭔가 더 심각하게 답답한 상황을 지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한편, 맥락을 약간 떠난 일반론을 가져와 보자면, 나는 미숙한 의사소통을 접할 때 말 그대로 미숙함으로 우선적으로 연결짓게 되는 편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것을 불쾌한 반사회성이자 위협의 가능성으로 먼저 연결짓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자주 느꼈다. 여기서 위협이란 직접적인 것이기도, 배려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오는 상대적인 피해가 있을것까지 염두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즉물적으로 드는 거부감에 더하여 실제적 경험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도식일것인데, 상술한 포용적 공감의 가능성을 그저 이상론적인 것으로 만드는, 그러면서도 피해가기 힘든, 모든 행위자에게 비극적인 사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의 감상으로 미루어 보아 한가지 더 재밌었던 점이 있다. 긴장을 많이 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을 모면하려는, 그러면서도 포멀함을 억지로 유지하려는 일련의 언행은 다른 시대에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가 보편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양상 중에 90년대 - 00년대생에게서 새롭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등장한(것이라고 이야기되는) 특질들을 이 극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있다고 한다.

면접 학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배워서 그렇다는 말도 있던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직접적인 학습 외에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어투와 언행을 선호하고 채택하도록 상당히 구체적으로 유발할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온갖 설왕설래를 떠나 이렇게 잘된 있음직한 재현들이 축적된다면, 대중적 반응에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를 빌려오자면 일종의 문화인류학적(?) 자료로 될 수 있어 보인다. 마치 서울사투리 선망이나 MBTI 성격유형 스테레오타입 재현처럼 말이다. 문화인류학이 여기서 맞는 단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100% 정확한 사회상의 투영이 아닌 선별된 예술적 재현이라는 점때문에 오히려 의미가 더 커지기도 한다. 전형을 바탕으로 하는 논쟁은 추상적이지만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1년 9월 7일 화요일

백지고발장 의혹: 수사기관의 모럴과 민주적 견제의 균형이 필요하다

'사실이라면'이라는 따옴표가 너무 많이 붙은 언설은 표출하지 않는게 좋을 듯하여 참아 왔으나 김웅 의원의 매우 석연찮고 오락가락하는 대응을 보며 결국 몇 자 적어본다.


제기되는 백지고발장 의혹이 사실이라면, 선거 국면에서 반짝 공격하고 말 이슈가 아니다. 중대함의 정도를 떠나 수사기관의 공권력이 적절하게 사용되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 일반적인 네거티브와는 질적인 차이가 있는 문제인데, 나는 이런 문제에 늘 관심이 있다보니 관심이 안 갈수가 없었다.


윤 당시 총장까지 개입을 했는지 어쩐지는 전혀 밝혀진 바가 없는걸로 알아서 일단 그건 제껴두고, 고발장이라고 하는 문건의 존재사실과 전달사실이 있다면 그게 왜 문젠지 핵심만 얘기해보고, 그리고 그런 일들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 내 생각도 써보려 한다.


고발장이 야당에 전달됐다는 보도를 봤을때 처음에는, 물론 있어서는 안되지만 자주 일어나는, 검찰의 수사정보유출을 얘기하는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고발장은 원래 검찰 바깥의 누군가(고발인)가 써서 검찰에 접수를 하는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손 검사인지 누군지 모를 검찰 내부인사가,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고발인 이름이 비워진 고발장 (소위 백지고발장) 을 직접 써서 검찰출신 정치인인 김웅에게 전달했다는 게 의혹의 내용이다. 이에, 고발인 이름을 채워넣어서 검찰에 접수하도록 검찰이 사주 한거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는것.

그리고 김웅 현 의원은 고발장을 작성 했다, 안했다, 모르겠다 등등 상당히 오락가락하며 수상한 해명을 하고있다.
(어떤 보도에서는 실제 그 백지고발장과 내용이 동일한 고발장이 대검찰청에 접수되었다고도 한다. 이부분은 찾아봐도 정확한 얘긴지는 모르겠다. 접수돼서 영향을 미쳤냐 안미쳤나에는 사실 관심이 크지않다. 그거에만 천착하게 되면 본질을 잃는다)

고발장과 관련해서 이런 프로세스가 존재한다면 수사기관이 원하는대로 사건을 기획할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사건을 기획한다는 말이 너무 세게 들리는가? 하지만 사태의 적확한 묘사인걸 어떡하는가. '어차피 수사 해야될, 수사 하게될 일이었다'라는 걸로는 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프로세스가 작동을 한다면, '어차피 해야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까지 작동하는 것은 정말로 쉽기 때문이다. 공적 권위가 행사될때는 그런 잠재적 가능성까지 모두 고려가 되어야 한다.

왜 계속 이런일이 생길까? (마침 글을 쓰면서 뉴스를 보다보니 검찰이 이재명 관련 수사를 무리하게 하면서 사람들을 부적절하게 압박했다는 내용의 KBS 보도도 있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수사기관 특유의 모럴에 있지 않나 싶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수사기관의 구성원들의 모럴은 일처리에 있어 "이건 해도 되고, 저건 하면 안된다"며 자중하는 느낌보다는, "되어야 하는 일을 밀어붙여서 되게 해야한다"는 느낌에 가까워보인다.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총장이 여당과 처음 대립각을 세울때 여당 지지자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했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윤총장의 사퇴 이전까지의 행보가 어느정도 일관적으로 이해가 된다고 본다.

여하간 그런 모럴이 깔려있다보니 목적 달성을 위해 조금만 무리하거나 견제의 균형이 깨지면, 원칙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기 쉬울거라는것.

물론 수사기관은 온갖 꼼수를 쓰는 험한 양반들을 많이 다룰테니까 그런 태도가 일정부분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소위 검찰개혁의 과정에서 그런 태도가 완전히 깎여나간다면 손발이 잘리는 느낌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적절하게 쓰였을때, 혹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더라도 절차적 문제가 있었을 때는 그걸 당연히 철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 일반의 법익이 심대하게 침해되게 된다.

더구나 이번 건은 산업스파이 잡는 것마냥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일도 아니고, (사실이라면) 야당 정치인에게 여당 정치인을 고발하도록 한것이라 명백히 부적절한 정치개입인것.

언론의 보도들도, 의혹을 충분히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실제로 내 지인 중에는 정치뉴스 자체는 자주 접하기는 하지만 소위 정치덕후 내지는 고관심층까지는 아닌 친구가 있는데, 그친구도 김웅만 계속 언급되니까 '야당 동료 의원들끼리 고발을 기획했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더라. (아마 김웅은 당시 의원도 아니었을거다) 의혹이 제기되는 사실관계는 검찰이 '너네 이름으로 한번 내봐라'라고 고발장을 미리 써놓았다는 거라, 공권력이 할수있는 일의 범위와 관련해서 질적으로 저거랑은 완전히 다른데 말이다.

이렇다보니, 의혹의 사실여부는 물론 더 봐야겠지만, 제기된 의혹 내용을 좀더 정확히 전달하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다. 그래야 의혹제기가 거짓일때 생기는 책임도 더 클것 아닌가.

여하간 그렇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1년 9월 3일 금요일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후기

거시적인 것과 개인사적인 것이 유치하지 않게 잘 결합한 느낌

빌런의 설계가 굉장히 현대적

기존 MCU와의 연계도 상당히 자연스럽게 연출됨

<210919: 내용추가>
웬우
- 수천년을 살아온 사람이라 '거시적'인 느낌이 드는데, 극중에서 큰 사랑과 슬픔을 겪고 악령에 사로잡힌 것은 웬우의 삶에서 그저 하나의 지나가는 미시적인 이벤트일 수도 있는 건데, '근본적인 몰락'으로 기능을 함
: 사랑의 크기가 커서 그런가? 아니면 넘봐선 안될 그 마을을 넘봐서 파국이 생긴건가?
: 개연성이 이해가 잘 안되긴 하지만, 뭐 나는 거시적인게 몇몇사람의 사적 관계속에 수렴되어서 보여지는거 좋아하니까 크게 상관은 없었음

- 전반적으로 아시안 가부장적 학대가정(…)의 모습을 매우 잘표현함. 상처를 받아서 정신병에 가깝게된 웬우와 그것이 가족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악영향까지. -> 이게 거시적인것과 미시적인 것의 연결고리가 되어줄수 있음.

- 액션이 훌륭함. 마지막에 용들 등장하는 건 좀 읭스러웠는데 버스 씬이 계속 기억에 남음

- 샹치 친구는 원작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슨역할인지 모르겠음

- MCU 기존내용과의 연계가 생각보다 이르고 본격적일 것으로 보임. 웡 등 마법사집단에 아예 합류해버린걸 봐서 노웨이홈이나 닥스2 정도에 바로 투입될수도 있지않을까?

- 실제 큰줄기의 내용적 연계와 별개로 기존 내용들에 대한 리스펙?도 좋았음. 아이언맨3의 만다린 배우가 다시 등장한 거라던가. 만다린의 재해석 (과거 미국사람들이 만다린이라고 이름 대충지었다는 대사로 셀프디스) 도 상당히 재미있었음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