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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신해철과 서태지: 어떤 철지난 팬덤 갈라치기에 관하여

고재열 여행감독의 브런치 글(서태지보다 신해철이 좋았던 이유, 7주기 추모)은 제목에서부터 보이듯이 갈라치기(?)를 심하게 하고 있는데, 정작 신해철과 서태지는 애초에 친척관계기도 하고, 스키 여행, 음악 인터뷰 방송도 같이 하는 등 공사를 막론하고 무척 신뢰하는 선후배 관계였다. 마지막에는 김종서 이승환과 함께 (통칭 마태종승) 음악 작업도 같이 했지만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발매 및 합동공연은 안 하게 되기도 했다.


서태지가 전자음악을 록에 결합시키는 시도를 잘했지만 그런 서태지에게 미디를 가르쳐줬던 선구자적 인물이 바로 신해철인데 만약 서태지에 대해 글쓴이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좋은 관계를 어떻게 계속 유지했겠나.


서태지가 사회비판 '척'에 그쳤다는 대목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단순히 스타일과 인기, 음악 속 메시지에 의한 사회분위기 변화뿐 아니라 본인이 음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갈등을 겪어가며 실질적인 부조리 철폐와 제도개선을 얻어낸 실천적 성과도 많기 때문이다.


하여튼 단정적인 글도 매력이 있다지만 개인 견해 표명을 넘어 시대를 규정하고 타 뮤지션을 격하하는 과잉된 언사가 추모하는 글쓰기에 굳이 필요했을까. 둘 모두의 상당한 팬인 입장에서 이런 글에서 영양가를 찾기 힘들다. 서태지가 인기는 더 많았지만 신해철이 더 깊이있고 솔직하고 실천적이어서 좋았다는 비평 정도로 해 두었다면 둘 모두의 행보와 음악성향을 아는 입장에서 누가 이렇게 뭐라고 했겠나.


그동안 90년대가 서태지의 시대라고 속아 왔지만 알고보니 신해철의 시대였다는 본문의 '깨달음 서사'도 허위에 가깝거나, 혹은 잘 쳐줘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단평이 아닌 섬세한 논평들에서 도대체 누가 그렇게 속였으며 또 속아넘어갔는가. 정치 및 종교부문 등의 또다른 토픽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적인 '깨달음 서사'를 사회의 보편적 인식과 혼동하게끔 하는 것은 좋은 글쓰기가 아니며, 나아가 쓰는이 자신의 인식도 왜곡되게끔 한다.


2014년 하반기는 신해철과 서태지 둘 모두가 오랜만에 컴백한 시기였다. 상술했듯 이 둘은 이승환, 김종서와 함께 '나인티스 아이콘'을 4인 버전으로 공동 작업했고 음원까지 완성되어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다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쓰러지고 상황이 심상치 않자 서태지는 슈퍼스타K6에서 회복을 기원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서태지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녹화하는 당일에 결국 신해철이 사망하게 되어 유희열과 함께 추모의 이야기도 나누고, 슬프지만 담담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결식의 추도사도 서태지가 낭독했다. 둘 모두 이러한 방식의 기억을 원하지는 않았을테다.


과잉된 재단의 언사로 점철된 공연한 서열화보다는 신해철의 행보와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명곡들을 한 번 더 소개하는 게 더 좋은 기억의 방식일테다. 철기군에 걸맞잖은 뱀의 혀로 어찌 마왕을 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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