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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8일 월요일

어떤 보르헤스적인 농담: 내용 없는 텍스트가 창출할 상상력의 플레이그라운드

미래에는 모든 유머가 사골처럼 우려먹히며 정형화되어서, 유머의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고 'OO번 유머!' 이런식으로 식별번호만 외쳐도 다들 알아듣고 깔깔 웃게 될 거라는 농담을 본 적 있다 (덧글 쓰다가 생각난 건데 이거 굉장히 보르헤스적인 아이디어 같다). 만약 그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이 농담은 특별한 메타적 지위를 가지므로 마땅히 제0 번 유머로 삼아야 할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쓰고 싶은 글들의 제목이랑 목차만 써놓더라도 글쓴이보다 지혜로운 읽는이들이 찰떡같이 행간을 채워 읽어주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 사실 나는 실제로 학부 졸업논문 주제를 못 정하던 시절에, 멋져 보이는 주제와 제목을 이것저것 계속 만들며 시간을 보내보기도 했다. 마치 학교 축제 무대를 찢는 상상을 하면 즐거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내용 없이 제목만 존재하는 그러한 글들에서 만약 허풍과 자기위안을 걷어낸다면, 독자에게 구체적인 상상의 나래를 펴게끔 하며 고도의 문학성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장르가 될 가능성도 보인다. 프로토스라면 이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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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6일 토요일

서태지 데뷔 30주년

서태지 데뷔 (1992년 3월 23일) 30주년이 되니 그 행보를 회고하는 글들이 적게나마 보인다. 따로 글을 쓰기보다는 기존에 썼던 글을 모아올리는 것으로 갈음해 본다.

1. 서태지 8집 발매 10주년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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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해철과 서태지를 기억하기: 어느 이상한 추모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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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팬덤정치 극복의 어려움: 정주식 편집장 글에 대한 코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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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92년 이전에도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는데 그 시절의 공연 및 방송 영상 같은 자료를 많이 찾기 어려운 점과, 개인적으로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의 최고 앨범은 8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상대적으로 안 유명한 점.

비활동기가 길어지면서 기사 덧글 등에 도배되곤 하는 표절문제에서는 몇몇 곡은 자유롭지 못하고 깔끔하지 못하지만, 의혹의 8-9할 이상(특히 컴백홈이나 6집 등 유명한 의혹들일수록)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시절에 장르 수입상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 사실 자체로는 동의되는 바가 있지만 그렇게까지 비판할 점인가 싶고, 거칠지 않게 정제해서 트랙의 완성도를 집착적으로 높이고 독창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은 분명히 음악적 평가를 받아야 하며, 솔로커리어까지 이어지는 일관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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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5일 금요일

카자흐스탄의 정치적 변화 물결

학부 1학년 때 수강한 '대학영어 1' 수업에서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현재 이름은 누르술탄) 에 대해 발표를 준비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해 그 정치적 환경과 별개로 내가 오래전부터 느껴온 공연한 미학적 매료를 바탕으로 당시 주제를 선정했던 듯하다. 유튜버 빠니보틀의 투르크메니스탄 여행 컨텐츠가 히트 친 것과도 비슷한 감성일테다. 특히 아스타나 역시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와 약간 비슷하게, 계획적으로 조성된 텅 빈 도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크게 재미가 없을뿐더러 급히 조사해서 준비하기엔 다들 잘 모르는 도시여서인지, 막판쯤에 음대소속 조원의 건의로 독일의 뷔르츠부르크로 주제를 바꾸어 발표하기는 했다.


아무튼 이러한 매료는 독재권력의 산물에 대한 것이다보니 덮어놓고 향유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비틀린 것이지만, 공적 기구가 (적어도 홍보 측면에서는) 자기자신의 아우라를 있는 힘껏 격하시키는 환경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이국적으로 느껴져 꽤나 보편성이 있는 듯하다.


수도 아스타나의 바뀐 이름 누르술탄은 다름아닌 20년 넘게 통치를 하다가 2019년에 물러난 1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인데, 이렇게 바꾼 것은 나자르바예프 퇴임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자,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 2대(2022년 기준 현임) 대통령 토카예프의 결정이다.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에서 퇴임하고 나서도 여당 대표직과 함께 상왕과도 같은 여러 직책을 갖고 실질적 국가원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토카예프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바지사장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러한 카자흐스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일단 올해 초에 기름값 때문에 카자흐스탄에서 큰 시위가 일어났고, 나자르바예프는 대통령 퇴임 이후 가지게 된 상왕 직책들에서도 사퇴했다. 토카예프의 주도로 시위가 진압되었다.


그런데 시위를 달래기 위한 일시적인 유화책인지, 혹은 막을수 없는 흐름에 따른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몇몇 완화 조치들이 진행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특히 토카예프는 대통령 권한 축소, 헌법재판소 신설 등을 포함한 꽤 놀랄 만한 적극적인 정치개혁안을 제시했다. 심지어 토카예프는 국민들 앞에서 시위에 대한 과격진압뿐 아니라 고문 등이 존재했음도 인정했고, 그동안 만연했던 선거 부정도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이미 실질적으로 집행이 안되고있던 사형도 공식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진의는 모르겠으나 이 정도로 인정을 해 버린 걸 카자흐 국민들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해보면, 일시적인 유화책이 아닌 비가역적인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시위를 결정적 계기로 해서 뭔가 내부 권력구도의 변화가 일어난 듯하다. 물론 토카예프 역시 독재자의 2인자이고, 대통령직에서 권한을 행사하면서 시위 진압을 책임졌기에 수많은 사상자 발생에 대한 최종책임을 갖는다는건 변하지 않는다.


이걸 보니, 국가원로자문회의라는 기구를 통해 상왕 노릇을 하려 했지만 노태우에 의해 뜻이 꺾인 전두환이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무대 뒤에서의 권력구도 변화가 더 본질에 가깝겠지만, 역시 시쳇말로 자리가 깡패이고, 자리가 권력을 창출하는 측면도 있는 것인가 싶다.


대략 찾아보기로는, 이러한 결정에는 어느새 한달째 접어들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영향을 줬을것 같다고 한다.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고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괜찮았던 카자흐스탄이지만 러시아의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민주화를 강하게 지향하는 독자노선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찾아봤었던 국가에서 이렇게 실시간으로 변화가 일어나니까 다시금 관심을 가지고 계속 찾아보게 된다. 이러한 정치개혁이 권력구도 변화를 정당화할 보여주기식 조치나 시위 달래기용 미봉책에 그치지 않고 불가역적인 자유의 증진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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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1일 월요일

'없는영화': 영화 리뷰 컨텐츠의 독자적 장르론을 재발견하기

예전에 "영화 예고편"의 독자적인 장르론에 대해서 글을 쓴 적 있는데(블로그 링크: 인공적 자연으로서의 영화적인 것에 대하여), 요새 유튜브에서 흥한 '없는영화' 시리즈(진용진 채널)의 컨셉을 보고 비슷한 생각이 다시 들었다.


'없는영화' 시리즈는 흔한 결말 포함 영화리뷰 컨텐츠들과 똑같아 보이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영화에 대한 리뷰들이다. 마치 실제 영화 장면에서 따 온 것처럼 클립들이 등장해야 하기 때문에, 각본상의 흐름에 따라 장면들이 실제로 촬영된다. 그리고 그 장면들은 위트를 곁들인 해설 목소리에 의해 하나의 스토리로 엮인다.


이렇듯 '없는영화'는 현대인들에게 인공적 자연의 역할을 하는 영화라는 거대한 예술부문의 각종 파생 컨텐츠들 각각을 독자적인 장르로 추인하고 형식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지난번 글에서 얘기했던 '가상의 영화 예고편'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렇지만 차이점도 있다. 가상의 영화 예고편은 주로 형식의 모사에 집중하여 공감을 이끌어내고 영화적 스펙타클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적극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영화 예고편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영화가 가진 힘을 내적으로 재현하며 그것에 압도된다.


반면 '없는영화'의 경우는 해당 장르의 '형식'을 재현하는 것 그 자체에서 오는 공감과 경의보다는, '내용'에 해당하는 영화 장면들과 해설을 실제로 제시함으로써 시쳇말로 '영화 한편 다 본' 효과를 내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다. 즉 '없는영화'에서는 컨텐츠들의 공통적 문법을 뽑아내서 충실하게 모사하는 눈썰미와 센스뿐만 아니라, 실제 영화를 만드는것에 준하는 각본 및 촬영능력도 요구된다.


요컨대 '없는영화'는 현대의 신화인 영화에 대한 기존 영화 리뷰의 철저한 종속관계를 극복하고, '영화 리뷰 유튜브'를 독자적인 장르로써 적극적으로 재발견한다. 영화리뷰의 구성요건에서 그 원본이 되는 실제 영화를 제거한다면, 영상들의 연쇄 그 자체가 아니라 추가로 깔린 해설이 각 장면들을 엮어내고 몰입을 주도하게 되며, 이로써 영화에 종속되지 않은 독자적인 영상 컨텐츠가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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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1일 금요일

길거리 포교자와의 일화와 전도거부카드 프로젝트 회고

학교다니다가 당혹스럽지만 은근히 기분좋던 순간이 하나 생각난다. 길거리 전도 타겟 돼서 같이 걸어내려가면서 얘기한적 있는데 그분들이 내이름을 알고 있고 '그 오용재씨가 말이 통하는분일줄 몰랐네요' 이러시는것... 아니 그럼 말이 통하지 내가 무슨 대사탄이냐고 ㅋㅋㅋ


암튼 전도거부카드 얘기 하면서, 처음 접근할때 본인들 단체 이름부터 먼저 밝혀도 거부감 훨씬 덜할거다, 종교가 싫어서보다는 캠퍼스 구성원간 신뢰의 문제다, 갑자기 잡아서 시간 오래 쓰게끔하는게 먼저 무례한거라 상대방도 무례하게 반응하는거다 이런식으로 그당시 열심히 하고있던 얘기 했다. 그분들이야 싫은소리 할수가 없는 입장이라 그랬겠지만서도, 맞는말같다고 나름 얘기 잘 끝남.


그러면서도 결국 다른 전도러들처럼 본인들이 어느 교단이라거나 이런건 끝까지 안밝혀서 아쉬웠음. 이정훈교수 얘기했던걸로 봐서 아마 트루스포럼 (혹은 다른 보수성향 교단?) 이었던것 같다.


그러고보니 17-18년도에 전도거부카드가 언론 보도 많이 된것도 우리가 먼저 홍보해서 그렇다기보단 그때 한국일보에서 전반적으로 궁금하다고 나한테 연락이 오셨는데 마침 전도거부카드 부활이 진행중이었어서 운좋게 그랬던걸로 기억하고...


우리때 이전인 13년도에 이미 선배들이 해서 언론 한번 탄것임에도, 보도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인지 다시금 이곳저곳에 많이 보도되고 알려져서 신났었다. 물론 전도거부의 근거를 무신론 자체보다 세속주의, 공공성 이런걸로 바꾸자고 내가 밀었기 때문에 내 딴에는 실제로 좀 새로운 것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대중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적극적 회의주의의 역할이 점점 소박해지고, 세이프스페이스로서의 대학캠퍼스 개념이 본격 대두되던 그당시 시점에 나쁘지 않은 방향이었던듯.


그때쯤 총학 선본도 캠퍼스 공격적 포교 문제를 건드렸었는데 아마 직접 영향까진 아니더라도 우리가 여러차례 문제의식 던졌던걸 그쪽에서 인지는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인 의의를 찾자면 팔자에 없는 언론응대 경험을 그때 열심히 쌓아봤고 기자분들도 알게됐고... 여하간 정신없지만 보람있게 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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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0일 목요일

지역감정의 의도적 재생산에 관용은 없다

생각 다른 거, 너무 신나거나 화난거 뭐 다 이해할수 있다. 특히 지금같은 민감한(?) 시기에 말이다. 그래서 페북에서 전적인 동의는 안되거나 너무 과격하더라도 들어봄직한 말들이 있으면 좋아요도 잘 누르는편이다. 특히 오랜만에 글 뜨는 현실친구면 반가워서 더 그렇다. 그치만 개표결과 갖고 '그 지역', '분리독립' 운운하는 애는 정말 참기 힘들었다. 어떻게 된게 이기고서도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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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전으로 끝난 대선결과를 보며

돌고 돌아 결국 양강 총력전이었고, 역대급 초접전 끝에 당선인이 결정됐다.


양당 후보 모두가, 개인적인 흠결과 망언으로 인해 역대급 비호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회와 행정부 중심의 전형적인 중앙정치무대 경험이 없으면서, 전례없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소유자들이기도 했다. 이재명은 당 주류로부터 많이 미움받았고 실제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사람인데도, 정부여당 주류세력과 당의 여러 유력인사들이 일으킨 여러가지 실책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본인의 추진력과 행정 역량에 대한 어필을 바탕으로 점점 부각되더니 무려 헌정사상 두번째(당선인 다음)로 많은 표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방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음에도 디테일은 거의 유사과학에 가까운 경제 및 재정 이해는 우려스러웠지만 주식투자 경험 및 금융시장 질서유지 신념 어필로 이미지를 중화시켰고, 불안하고 의구심을 사는 외교/안보관도 생각만큼 크게 쟁점화는 안됐고. 이외에도 여러 부문에서 공부를 많이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해서 안정감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다만, 민주당이 생각보단 대혼란으로 빠지지 않고 이재명후보 중심으로 어찌저찌 단결해서 밀어주긴 했지만서도, 당이 분열과 갈등으로 힘이 빠지고 너덜너덜한 상태가 된데다, 그러한 상태가 된 원인에 이재명의 영향력 확대 과정을 떼어놓고 볼 수 없으므로,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향후 역할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한편 윤석열 당선인의 경우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무척 특이한 캐릭터이다. 2013년에는 국정원 덧글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온갖 외압을 받으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때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었고 영상도 여러 번 돌려보았었다), 그런 박근혜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민주당으로 출마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결국엔 자제하고 검사로 남았다.


그러다가 2019년에는 조국 수사로 인해, 자신을 띄워주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만들었던 세력으로부터 또다시 공격받았다. 이렇게 진영에 상관없이 직분에 충실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행보가 주목도를 빠르게 높였던것 같다. 오죽하면 검찰총장이던 사람이 상대진영의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겠나. 물론 이때도 정치입문을 자제했다면 더 일관적이었겠지만, 그당시의 정부여당 지지자들과 고위정치인들의 공격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견디면서 총장임기를 마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결국 그러한 총공세가 현재의 윤석열을 만든것이다.


총장 사퇴 후의 정치입문은 엄청나게 이례적이어서 욕도 많이 먹었고 그 과정에도 의문과 답답함이 많았다. 그리고 입당 과정의 잡음, 망언 릴레이 및 sns 논란, 당대표와의 갈등, 단일화 잡음 등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윤석열은 당에서도 신뢰하지 않고 걱정하는 후보였고, '윤석열 좋아서 뽑는 사람 누가 있겠냐'는 말 공공연히 듣는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스토리가 정권교체 열망과 결합하여 역대 최다득표 당선으로 이어진듯하다. 확실한 외교안보 스탠스, 전문가 등용 선언 등 문재인정부에서 많은 이들이 실망한 포인트를 잘 긁어주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고.


발언 얘기를 좀더 하자면, 윤석열은 배려가 부족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너무나 많다. 이는 단순 눌변과는 다르다 (몇번 밝혔듯이 나는 단순한 눌변은 큰 흠결로 삼지않고 국민들이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정책 및 사회이슈 관련 말실수들도, 사회 갈등의 축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인식만이라도 갖고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종류의 말실수들이기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노동, 다양성 등 그 부문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어찌 보면 민주당의 많은 실책으로 정권교체 요구가 강했음에도 윤석열이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에서, 윤석열이 준비가 얼마나 부족한 후보였는지 드러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서, 윤석열후보가 이정도로 준비가 부족하고 망언이 많음에도 민주당이 결국 패배한 것으로부터, 나는 정부여당의 큰 업보와 이재명후보의 한계도 본다.


이전 글에 덧글로도 쓴 얘기지만, 민심이란게 정말로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몰아치는 폭풍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절묘한 정밀타격 같은 면이 있다. 정권교체 열망은 확실히 실현하면서, 마치 야당이 잘해서 뽑은게 아니라는걸 강조하듯 역대급 초접전 승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이번 선거 주요 화두 중 하나였던 20대에서의 소위 젠더갈등과 국힘의 안티페미니즘 호소 전략은 사실상 역풍에 가까울 정도의 결과를 보이면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하게끔 했다.


물론 그럼에도 이준석으로 상징되는, 약자의 임파워링을 노골적으로 꺾는 모멘트가 소강될거라는 희망섞인 예측엔 동의하지 않는다. 수 차례 지적했듯이, 성평화라는 사이비에 가까운 이념을 내세운 청년보수들은 지난 보수정권 시절 대대적 지원을 받은 자유주의 청년보수들보다도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당직을 갖고 제도권정치에 안착했으며, 이미 이준석 한명에 종속된 존재들이 아니다.


또한 국민의힘이 이긴 이상, 요인을 분석하면서 특정 정치인들간에 서로에게 험악하게 책임을 묻는다거나 하는 분위기는 없다시피 할것이다. 다만 젠더갈등을 이용하면서 20대여성을 전면적으로 적으로 돌리면 위험하겠구나 라는 정치공학적(?) 인식 정도만 생기겠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기영합적 반여성주의와 적극적으로 손절하는 작업이 이뤄질 이유는 딱히 없으며, 위에 말한 성평화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준동하며 원하는 바를 하나하나 어필하는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절치부심하고 경계하고 싸워야 하는 일이다.


앞으로의 5년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돼도 나라가 망하진 않는데 자의식 과잉이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언사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 그런 발언들이 민주당보다 더 왼쪽에서도 많이 보인다. 물론 나도, 검찰에 잡혀갈것 같다는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이는 지나친 비장함과는 거리를 두고있으며 국가시스템과 민간부문이 대체로 잘 돌아갈것이라고 믿는다. 문제가 생겼을때 비판하면 되며, 국민들이 틀림없이 그렇게 할것이다.


그러나 공표금지기간 동안 여론에 일어났던 변화는 분명히, 여가부 폐지를 비롯해 국민의힘에서 예고한 퇴행적이고 반인권적인 모멘트, 실제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생겼을때 마땅한 보호를 받기 어려워질 것에 대한 우려에 따른 선택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민주당 정말 싫다면서도 이런 이유로 한표를 던졌다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페친분들 중에도 많았다. 그 고민의 크기에 존중을 표하게 된다. 비록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민주당은 이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큰 빚을 졌고 오래도록 고마워해야한다.


좌파진영에서도 이러한 선택을 원망하거나 조롱하기는 어렵다고본다. 그들이 우려하는 바를 실질적으로 막을수 있는 정당이 어쨌든 민주당이었는데 어떡하는가. 어차피 윤석열이 될거니까 진보정당 후보로 소신투표하자는 선거운동도 많이 보였으나,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만한 구도가 아니었다. 민주당도 당분간 거대 야당이 될 정당인만큼 이들의 요구를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효과적으로 조직해낼 의무를 갖는다. 물론 민주당이 젠더문제에서 그동안 보여준, 아예 직접적인 범죄성 사건사고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까지 포함한 안좋은 모습들도 너무 많다보니 제대로 할지는 회의적이다 =_=


윤석열 후보도 초박빙으로 이겼으니 반대 진영의, 그리고 국민 일반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기를 바란다. 워낙 범상치않은 캐릭터인만큼, 마법처럼 의외로 잘하기를 농담으로나마 기대해보게 되기도 한다. 윤석열 특유의 자유주의는 실증적인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본위의 철학이념에 가깝다보니, 노골적인 반노동 정책으로 이어질 것 역시 걱정된다. 위에 말한 인기영합적 반여성주의까지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노동, 젠더, 장애, 이주민 등 여러 사회집단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투쟁들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고있는 당선인임은 분명해보인다. 이런 사회적 갈등의 축을 뭉개지 않고 경청하고 임파워링 해주는 정권이 되어야한다.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야당이 열심히 해서 알려주고 혼내줘야한다. 사실상 가짜뉴스에 가까운 성인지예산 30조 논란에 주로 근거한 여가부폐지는 얼토당토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부를 두고, 여성부 자신이 필요없어지는 시점을 위해 일하는 부서라고 했다. 지금은 아직 그런 시점이 전혀 아니다.


이외에도 인구문제, 가구 구조 변화, 연금개혁, 병역제도 및 군인권문제, 북한문제,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이런것들 모두와 연관된 이주민정책(중요성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가시화가 덜됐다) 등 커다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거시적인 시선으로 올바르게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편 현 정부의 또다른 실책중 하나인 에너지문제도, 물론 의견 많이 갈리는 주제지만 내생각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의지로 진행된 탈원전을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은 전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라는 지극히 필요한 절차에 대해 냉소적으로 느끼게 됐고 심지어 그 비슷한 개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갖게됐다. 전문가와 시민이 각각의 역할을 하고, 정치가 그 판을 깔아주는 건강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현할수 있을까.


초접전 승부라는 결과를 받아든 채 이런 질문들에 대해 행복회로를 돌려보자면, 정말 각 진영이 서로 양보와 협치를 해가며 국익을 위한 큰그림을 연구해서 시행할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불행회로를 돌려보자면 어느 한쪽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므로 서로 더 원망하고 더 소모적으로 갈등하는 상황도 벌어질수 있을테다.


원래 선의는 연쇄되기 어렵지만 분노는 연쇄되기 쉬운법이므로 아마 틀림없이 불행회로 쪽으로 흘러가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전자를 지향하면서 큰그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각 정당 안팎의 실력있고 균형있는 정책연구소들이 역할을 정말 잘해줘야 할 5년이기도 하다. 당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의 발칙한 상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얕은 인기영합적 정책안들이 아니라, 오랜 설명과 협의를 거쳐 공감대를 쌓은, 정론에 가까운 정책들이 시행되게 하는게 정치인들의 역할이어야 한다. 오늘의 초접전 결과를 받아든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방향이 이런게 아닐까.


너무 거창해진것 같아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다보니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긴다.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한 선거였던것 같고, 투표하는 국민들도 정말 고민이 많았을거고, 고생했다는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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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9일 수요일

정치의 팬덤화를 보며 서태지를 회고한다: 정주식 편집장의 글을 읽고

정치 팬덤의 부작용에 대한 정주식 직썰 편집장님의 좋은 글(Facebook 링크)을 읽었다.


가수 서태지는 여기서 언급된 팬클럽 해체 이외에도 세상이 놀랄 만한 대담한 결정을 20대 초반에 이미 여러 차례 했다. 1집 대히트 후 소속사를 박차고 나와서 1인 기획사를 차린 것부터... 3집에서 갑자기 메틀 음악을 들고 나와서 교육, 통일 등 시사 문제를 얘기한 것도 그렇고. 방송국이랑 꾸준히 싸우면서 관행 바꾼 것도 그렇고.


인기 절정일 때 은퇴한 것도 뭔가 멋있다는 인상을 많이 남겼지만 이건 힘들어서 그런 거라고 하니 예외로 치자 (그래도 넓게 보면 정말 아무나 못할 결정이긴 하다). 아무튼 결과가 좋았으니 강인하고 간지나게 보이는 것이지 사실 주변과 팬들한테 걱정 살 만한 엄청난 리스크를 여러 번 진 셈인데... 여러모로 영웅적인 면모가 있는 신기한 인물인 듯하다. 단순 인기가수 그 이상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인기의 크기도, 과잉되게 부여된 정치사회적 의미도 아닌 바로 이런 점 때문인 듯.


이는 반대로 말하면 당장의 인기가 날아갈 수도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내려놓는 커다란 결단을 정치인들이 하기란 정말정말정말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 게다가 뭔가를 내려놓는 게 자기 혼자한테만 손해인 게 아니라 팬덤 및 지지자, 나아가 국민에 대한 배신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자발적 자제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당장의 이익과 유불리에 눈 돌아가는 정치문화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도리어 지난 5년간 심해진 면이 많고 이 때문에 실망도 많이 했다.


정치인들이 당장의 위기 모면, 당장의 진영논리를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 버렸다. 그 언설들을 정치팬덤이 제공하기도, 재생산하기도 하면서 정치 담론을 망가뜨렸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 민주당 특정 정치인의 팬덤은 일반적 정치문법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그렇다고 혁신적이지도 않은 병리적 선택들을 하기도 했다.


결국 국민들이 냉소하지 않고 정치권을 압박해서 팬덤에의 지나친 의존의 자제를 얻어내야 하는것 같은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런 게 가능하기나 할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씁쓸하다. 글을 쓰다 보니 막연하고 흔한 정치혐오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렇게 표현된 한 그게 지금의 내 생각인걸 어쩌겠나. 공유한 좋은 글을 읽어주시라. 어쨌든 어느새 선거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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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8일 화요일

주류 필수 주문이 요새 레스토랑들의 트렌드?

근래에 프리미엄한 식당들을 찾아보다 보니 느끼는 건데, 주류()에 방점 찍은 식당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주류 주문을 필수에 준하게 하는 규칙(?)이 있는 경우도 많고. 이런것도 뭔가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면서 생긴 트렌드인가 싶다.


애초에 술집이고 안주 개념으로 요리가 나오는 곳들뿐만 아니라, 음식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아주 괜찮아 보이는 식당도 주류 곁들이지 않을거면 음식만 즐기러 가기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은 듯. 가격으로나 컨셉/분위기로나.


내가 나이가 들어서 예전보다 더 좋은 식당들에도 눈이 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최근 식당들의 트렌드가 이쪽으로 형성이 된 건지 궁금하다. 근데 원래도 나름 먹고 싶은거 잘 먹고 다녔는데 딱히 안 그랬던 걸 보면 후자에 가까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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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4일 금요일

리미널 스페이스: 일상을 조직하는 절대적 형식들의 낯섦

Liminal space라는 일종의 aesthetics 같은걸 접했는데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심상들과 잘 맞아떨어져서 매우 맘에 든다 (하단에 링크된 페이스북 게시물에 예시 이미지들 첨부).


인공적인 걸로 둘러싸인 공간 (특히 지하철 같은걸 탈 때) 에서, 일상적인 것 사이에 매우 낯설고 비일상적인 것이 숨겨져있다가 튀어나오는 듯한 매력적인 경험을 종종 하게된다. 자연에서와 달리, 합리적으로 조직되고 배열된 인공물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는 그런 낯선 것들이 일상으로부터 딱 한발짝만 내딛어도 될만큼 가까이에 있다. 원래대로라면 '무대 뒤편'의 사람들만이 이용하고 나는 갈 일이 없어야 하는 시공간들, 말하자면 조정시간대 내지는 배후공간에, 나는 버튼 하나 잘못 누르는 것만으로, 글자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 문 하나 여는 것만으로 쉽게 빨려들어갈 수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곳들이 신화적 시공간이거나 권력이 농도짙게 작용하는 음모론적 공간도 아닌,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직접 종사하는 자들이 영위하는 또다른 일상적 시공간일 뿐이라는 점도 인상깊다. 이것은 카리스마가 탈색되어 있음에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현대적 권위에 대한 나의 미적 매료와도 약간은 연결되지만 이부분은 좀 결이 다르니 별도의 얘기로 빼두자.

파고들어갈수록 랜덤하고 부조리하고 풍부한 절대적 형식으로서의 자연(물리학도로서 할말인가 싶지만(...) 근본법칙으로서의 자연이라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창발하는 경관적, 경험적 자연이라고 보자)과 달리, 도시에서 자연의 역할을 대체하여 시공간을 조직해내는 절대적 형식들은 파고들어갈수록 차갑고 단순하고 합리적이며 공허하다. 그리고 시공간과 그 채워짐에 의한 일상세계의 주조를 내가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방식은 이상하리만치 후자에 치중되어있으며 꿈에서도 역시 그런것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런것들을 재밌게 느끼는것 같다.

사실 디지털 매체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기 상당히 쉬운데, 그도 그럴 것이 인공적 세계에 대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도시경관과 디지털공간이 주요하게 다른 점은 밀도 그리고 immersivity의 정도의 차이뿐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테마는 종종 그런 공간속에 괴수가 숨어있다는, 시쳇말로 다소 '뇌절'처럼 느껴지는 괴담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이를 Backroom이라고 부르나보다) 이런건 정신세계를 쿡쿡 찌르던 아우라를 없애버려서 나랑 잘 맞지는 않는 것 같다. 괴생명체가 배치된다고 늘 두려움이 유발되는것이 아니며 그 배치의 방식이 정교해야한다.

더 넓게 보자면, 애쓰는 창작행위의 비중이 높은 특정한 종류의 인터넷 문화들에 비해서, aesthetics라고 하는, 비교적 최근에 범람하고있는 상대적으로 무관심적이고 관조적인 애호의 문화가 내 마음에 더 맘에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더 그럴수도 있겠다.

한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공간적인 것뿐 아니라 시간에 대한 것들도 더 많이 탐구됐으면 한다. 시간을 단순하고 합리적으로 주조해내는 장치들이 주는 특유의 낯섦이 있는데, 그 기원을 정치사회학의 도구로 탐구한 '24시간 시대의 탄생'(김학선 저) 등을 접한바 있지만 지적 인식이 아닌 미적 애호의 방식도 더욱 많이 축적되면 재밌을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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