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결국 양강 총력전이었고, 역대급 초접전 끝에 당선인이 결정됐다.
양당 후보 모두가, 개인적인 흠결과 망언으로 인해 역대급 비호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의회와 행정부 중심의 전형적인 중앙정치무대 경험이 없으면서, 전례없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소유자들이기도 했다. 이재명은 당 주류로부터 많이 미움받았고 실제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던 사람인데도, 정부여당 주류세력과 당의 여러 유력인사들이 일으킨 여러가지 실책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로움, 그리고 본인의 추진력과 행정 역량에 대한 어필을 바탕으로 점점 부각되더니 무려 헌정사상 두번째(당선인 다음)로 많은 표를 받기에 이르렀다.
하방을 높인다는 취지는 좋음에도 디테일은 거의 유사과학에 가까운 경제 및 재정 이해는 우려스러웠지만 주식투자 경험 및 금융시장 질서유지 신념 어필로 이미지를 중화시켰고, 불안하고 의구심을 사는 외교/안보관도 생각만큼 크게 쟁점화는 안됐고. 이외에도 여러 부문에서 공부를 많이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경청해서 안정감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다만, 민주당이 생각보단 대혼란으로 빠지지 않고 이재명후보 중심으로 어찌저찌 단결해서 밀어주긴 했지만서도, 당이 분열과 갈등으로 힘이 빠지고 너덜너덜한 상태가 된데다, 그러한 상태가 된 원인에 이재명의 영향력 확대 과정을 떼어놓고 볼 수 없으므로,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향후 역할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한편 윤석열 당선인의 경우도 여러 번 지적했듯이 주목할 가치가 있는 무척 특이한 캐릭터이다. 2013년에는 국정원 덧글 수사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온갖 외압을 받으면서 스타가 되었고 (이때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뇌리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었고 영상도 여러 번 돌려보았었다), 그런 박근혜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해 민주당으로 출마하는 것도 고려했지만 결국엔 자제하고 검사로 남았다.
그러다가 2019년에는 조국 수사로 인해, 자신을 띄워주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만들었던 세력으로부터 또다시 공격받았다. 이렇게 진영에 상관없이 직분에 충실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행보가 주목도를 빠르게 높였던것 같다. 오죽하면 검찰총장이던 사람이 상대진영의 대선후보로 오르내리는 일까지 벌어지게 되었겠나. 물론 이때도 정치입문을 자제했다면 더 일관적이었겠지만, 그당시의 정부여당 지지자들과 고위정치인들의 공격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견디면서 총장임기를 마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결국 그러한 총공세가 현재의 윤석열을 만든것이다.
총장 사퇴 후의 정치입문은 엄청나게 이례적이어서 욕도 많이 먹었고 그 과정에도 의문과 답답함이 많았다. 그리고 입당 과정의 잡음, 망언 릴레이 및 sns 논란, 당대표와의 갈등, 단일화 잡음 등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윤석열은 당에서도 신뢰하지 않고 걱정하는 후보였고, '윤석열 좋아서 뽑는 사람 누가 있겠냐'는 말 공공연히 듣는 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스토리가 정권교체 열망과 결합하여 역대 최다득표 당선으로 이어진듯하다. 확실한 외교안보 스탠스, 전문가 등용 선언 등 문재인정부에서 많은 이들이 실망한 포인트를 잘 긁어주는 입장을 취하기도 했고.
발언 얘기를 좀더 하자면, 윤석열은 배려가 부족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너무나 많다. 이는 단순 눌변과는 다르다 (몇번 밝혔듯이 나는 단순한 눌변은 큰 흠결로 삼지않고 국민들이 기다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정책 및 사회이슈 관련 말실수들도, 사회 갈등의 축에 대해 정치인으로서 기본적인 인식만이라도 갖고있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종류의 말실수들이기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노동, 다양성 등 그 부문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어찌 보면 민주당의 많은 실책으로 정권교체 요구가 강했음에도 윤석열이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에서, 윤석열이 준비가 얼마나 부족한 후보였는지 드러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서, 윤석열후보가 이정도로 준비가 부족하고 망언이 많음에도 민주당이 결국 패배한 것으로부터, 나는 정부여당의 큰 업보와 이재명후보의 한계도 본다.
이전 글에 덧글로도 쓴 얘기지만, 민심이란게 정말로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몰아치는 폭풍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절묘한 정밀타격 같은 면이 있다. 정권교체 열망은 확실히 실현하면서, 마치 야당이 잘해서 뽑은게 아니라는걸 강조하듯 역대급 초접전 승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이번 선거 주요 화두 중 하나였던 20대에서의 소위 젠더갈등과 국힘의 안티페미니즘 호소 전략은 사실상 역풍에 가까울 정도의 결과를 보이면서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하게끔 했다.
물론 그럼에도 이준석으로 상징되는, 약자의 임파워링을 노골적으로 꺾는 모멘트가 소강될거라는 희망섞인 예측엔 동의하지 않는다. 수 차례 지적했듯이, 성평화라는 사이비에 가까운 이념을 내세운 청년보수들은 지난 보수정권 시절 대대적 지원을 받은 자유주의 청년보수들보다도 훨씬 빠르고 효과적으로 당직을 갖고 제도권정치에 안착했으며, 이미 이준석 한명에 종속된 존재들이 아니다.
또한 국민의힘이 이긴 이상, 요인을 분석하면서 특정 정치인들간에 서로에게 험악하게 책임을 묻는다거나 하는 분위기는 없다시피 할것이다. 다만 젠더갈등을 이용하면서 20대여성을 전면적으로 적으로 돌리면 위험하겠구나 라는 정치공학적(?) 인식 정도만 생기겠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기영합적 반여성주의와 적극적으로 손절하는 작업이 이뤄질 이유는 딱히 없으며, 위에 말한 성평화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준동하며 원하는 바를 하나하나 어필하는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절치부심하고 경계하고 싸워야 하는 일이다.
앞으로의 5년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돼도 나라가 망하진 않는데 자의식 과잉이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언사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 그런 발언들이 민주당보다 더 왼쪽에서도 많이 보인다. 물론 나도, 검찰에 잡혀갈것 같다는등 민주당 지지자들이 보이는 지나친 비장함과는 거리를 두고있으며 국가시스템과 민간부문이 대체로 잘 돌아갈것이라고 믿는다. 문제가 생겼을때 비판하면 되며, 국민들이 틀림없이 그렇게 할것이다.
그러나 공표금지기간 동안 여론에 일어났던 변화는 분명히, 여가부 폐지를 비롯해 국민의힘에서 예고한 퇴행적이고 반인권적인 모멘트, 실제로 건강과 생명에 위협이 생겼을때 마땅한 보호를 받기 어려워질 것에 대한 우려에 따른 선택이었다. 친구들 중에서도 민주당 정말 싫다면서도 이런 이유로 한표를 던졌다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페친분들 중에도 많았다. 그 고민의 크기에 존중을 표하게 된다. 비록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민주당은 이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에게 큰 빚을 졌고 오래도록 고마워해야한다.
좌파진영에서도 이러한 선택을 원망하거나 조롱하기는 어렵다고본다. 그들이 우려하는 바를 실질적으로 막을수 있는 정당이 어쨌든 민주당이었는데 어떡하는가. 어차피 윤석열이 될거니까 진보정당 후보로 소신투표하자는 선거운동도 많이 보였으나,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만한 구도가 아니었다. 민주당도 당분간 거대 야당이 될 정당인만큼 이들의 요구를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진지하게 경청하고 효과적으로 조직해낼 의무를 갖는다. 물론 민주당이 젠더문제에서 그동안 보여준, 아예 직접적인 범죄성 사건사고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까지 포함한 안좋은 모습들도 너무 많다보니 제대로 할지는 회의적이다 =_=
윤석열 후보도 초박빙으로 이겼으니 반대 진영의, 그리고 국민 일반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기를 바란다. 워낙 범상치않은 캐릭터인만큼, 마법처럼 의외로 잘하기를 농담으로나마 기대해보게 되기도 한다. 윤석열 특유의 자유주의는 실증적인 정치적 신념이라기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가치본위의 철학이념에 가깝다보니, 노골적인 반노동 정책으로 이어질 것 역시 걱정된다. 위에 말한 인기영합적 반여성주의까지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노동, 젠더, 장애, 이주민 등 여러 사회집단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투쟁들을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고있는 당선인임은 분명해보인다. 이런 사회적 갈등의 축을 뭉개지 않고 경청하고 임파워링 해주는 정권이 되어야한다. 만약 그렇게 못한다면 야당이 열심히 해서 알려주고 혼내줘야한다. 사실상 가짜뉴스에 가까운 성인지예산 30조 논란에 주로 근거한 여가부폐지는 얼토당토않다.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부를 두고, 여성부 자신이 필요없어지는 시점을 위해 일하는 부서라고 했다. 지금은 아직 그런 시점이 전혀 아니다.
이외에도 인구문제, 가구 구조 변화, 연금개혁, 병역제도 및 군인권문제, 북한문제, 지역균형발전, 그리고 이런것들 모두와 연관된 이주민정책(중요성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가시화가 덜됐다) 등 커다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거시적인 시선으로 올바르게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편 현 정부의 또다른 실책중 하나인 에너지문제도, 물론 의견 많이 갈리는 주제지만 내생각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의지로 진행된 탈원전을 거치면서, 많은 국민들은 전문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감시라는 지극히 필요한 절차에 대해 냉소적으로 느끼게 됐고 심지어 그 비슷한 개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갖게됐다. 전문가와 시민이 각각의 역할을 하고, 정치가 그 판을 깔아주는 건강한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현할수 있을까.
초접전 승부라는 결과를 받아든 채 이런 질문들에 대해 행복회로를 돌려보자면, 정말 각 진영이 서로 양보와 협치를 해가며 국익을 위한 큰그림을 연구해서 시행할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불행회로를 돌려보자면 어느 한쪽도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한 상황이므로 서로 더 원망하고 더 소모적으로 갈등하는 상황도 벌어질수 있을테다.
원래 선의는 연쇄되기 어렵지만 분노는 연쇄되기 쉬운법이므로 아마 틀림없이 불행회로 쪽으로 흘러가겠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전자를 지향하면서 큰그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각 정당 안팎의 실력있고 균형있는 정책연구소들이 역할을 정말 잘해줘야 할 5년이기도 하다. 당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의 발칙한 상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얕은 인기영합적 정책안들이 아니라, 오랜 설명과 협의를 거쳐 공감대를 쌓은, 정론에 가까운 정책들이 시행되게 하는게 정치인들의 역할이어야 한다. 오늘의 초접전 결과를 받아든 우리가 지향할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방향이 이런게 아닐까.
너무 거창해진것 같아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다보니 현실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생긴다. 결과가 어떻든 끝까지 모두가 정말 최선을 다한 선거였던것 같고, 투표하는 국민들도 정말 고민이 많았을거고, 고생했다는 말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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