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징집가능 인구수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한 세대쯤 뒤에는 어떤 식으로든 논의가 가시화돼서 대대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하다.
게시물 목록
2022년 4월 30일 토요일
병역자원 문제는 임박한 현실이다: 숙의 부재 유감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막을 수 있었던 죽음: 평시 군인의 건강권과 생명권
벌겋게 달아오른 반점에도 복귀 명령… 8일 만에 숨진 21살 병사
(기사 링크: https://m.edaily.co.kr/news/Read?newsId=03965526632297760...)
2022년 4월 16일 토요일
정호영 장관후보 자녀 의대입시 논란에 대해
정호영 후보 자녀 의대입시 논란에 대해 (2022.04.16. Facebook 게시물 링크)
- 계급을 재생산하는 특권적 스펙쌓기는 수시제도에 대한 신뢰를 흔듦
- 공권력 행사는 근본적으로 어느정도 선택적일 수밖에 없음
- 그러나 내로남불 격의 임명 강행은 씁쓸한 부조리 따위가 아닌 명백한 불합리임
2022년 4월 15일 금요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프리드리히 니체)>를 읽고
1. 도서 개괄
(1) 저자 소개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독일의 문헌학자이자 철학자로, 주로 고대 신화 등으로부터 그가 포착한 인간관을 재해석하여 당시의 맥락에 급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이성적인 것의 기원에 대한 성찰을 도모하였다. 대표작은 <비극의 탄생>, <도덕의 계보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미래 철학의 전주곡> 등이 있다.
(2) 도서 소개 및 내용 요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에 의해 1883년부터 수 년에 걸쳐 발표된 철학 소설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일대기를 담은 서사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실질적 내용의 대부분인) 차라투스트라가 직접 설파하는 말들 속에서 니체의 사상이 때로는 은유적으로, 때로는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니체의 기존 저술에서 정립된 초인,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등의 개념들이 이 책 속에 집대성되어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실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나는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물을 안겨 주었다.”고 하였으며, 이는 작중 차라투스트라의 태도와 좋은 유비를 이룬다.
산에서 10년 동안 고독하게 지내던 차라투스트라는 어느 날 아침 심경의 변화를 겪고 산 아래로 내려온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성자에 의해 그는 ‘스스로가 타고 남은 재를 가지고’ 산에 들어갔다가 ‘불덩이가 되어’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묘사된다. 성자를 만난 뒤 ‘신은 죽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 위한 그의 몰락이 시작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라는 사상과, 이 책 전반에 걸쳐 소개될 초인(übermensch)의 개념이 처음 제시되는 것도 이 때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첫 번째로는 광장에서 광대의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초인의 개념을 설파한다. 그에 대한 군중의 야유에 이어 줄을 타면서 등장한 광대는 또 다른 광대의 등장에 의하여 추락사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숲으로 가서 빈 나무에 광대를 묻어 준 뒤 아침놀이 올 때까지 잠을 청한다.
광대를 묻어 준 이후 차라투스트라는 수많은 나라와 마을을 돌아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니체의 구체적인 사상들이 묘사된다. 그 중에서도 얼룩소(die bunte Kuh)라는 마을이 배경으로 비중 있게 등장한다. 얼룩소에서 떠날 때, 그는 그동안 모인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선과 악에 대한 외부적인 규범들로부터 지식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상승에 대한 의지를 긍정하고 창조하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이란 보잘것없다고 말하며, 자신을 찾지 못하는 ‘신도’의 상태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찾으라고 한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차라투스트라는 얼룩소를 떠나 다시 산으로 돌아간다. 산으로 돌아가서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위기에 빠져 있다는 조짐을 꿈을 통해 느낀다. 그는 주로 바다를 통해서 여러 섬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함으로써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성직자, 도덕 군자 등을 비판하며, 신이란 억측에 불과함을 말하고, 해방을 가져오는 의욕, 생성을 향한 욕구를 긍정하며, 우연과 의지 사이의 긴장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위대한 정오’의 도래를 여러 차례 전망한다. 그리고 이 영원회귀의 오솔길에서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긴 여정을 거쳐간 끝에 마침내는 축제를 벌이고 새로운 태양, 위대한 정오의 징조를 확인한다.
2. 주제별 논점
(1) ‘철학 소설’이라는 형식의 효과: 가능성의 공간으로서의 문학
문학 작품의 형식을 가졌지만 철학 이론 서적의 성격도 갖는 이 책의 이중적 특성은 내용 전달에 있어 특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니체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고, 차라투스트라가 작중 인물들에게 설파했다는 내용을 독자에게 대신 전해주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로써 독자는 내용을 전달받음과 동시에 내용의 전달 과정을 관조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니체의 사유 방식은 체계적 규범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며, 무조건적인 의지를 솔직하게 긍정하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다. 삶에 임하는 태도의 측면에서 반복적인 설득을 할 뿐,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지는 않고 도리어 그것을 경계한다. 이는 숱한 문제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텍스트에 대한 각종 재해석 및 옹호의 시도를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2) 니체의 패러디된 메시아성: 개인숭배를 경계하는 해석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여태껏 인류가 받은 선물들 가운데 가장 큰 선물이라고 회고하며 메시아적 인상을 표출한다. 한편 은유와 상징이 동원된 <차라투스트라~>의 문체와 서사 역시 전형적인 종교적 메시아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니체가 정작 그 누구보다도 종교를 극렬히 비판한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가 얕은 수준의 자기모순을 저지른다는 해석보다는 메시아적 언어를 차용하여 바로 그 메시아적 사고를 조롱하는, 일종의 패러디를 감행하고 있다는 해석이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해석은 <차라투스트라~> 1부 후반의 제자들을 향한 발언에서 직접 언급되며 정당성을 획득한다.
Ø …… 나는 그대들에게 권한다. 내게서 떠나도록 하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를 거부하라! 차라투스트라를 창피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더욱 좋은 일이다. …… 지금 그대들에게 나를 버리고 그대 자신을 발견하라고 명령한다. ……
위 대목 직후에는 형이상학의 파괴와 초인 사상의 실현이 ‘위대한 정오’의 모티프로 표현되는데, 이는 파괴 이후에 어두운 허무가 도래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때에야 비로소 찬란한 세계상이 시작됨을 암시한다. 예비되어 있을 배후세계를 근거 삼는 형이상학적 도덕은 그간 철학사 전체에서 ‘빛’의 모티프를 취해 왔으나 사실은 타락이며 어둠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모티프에서 정오가 순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니체의 ‘시대’란 없어야 하며 오로지 니체의 망치에 의한 파괴의 ‘순간’만이 있어야 한다. 니체는 파괴 이후에도 숭배되는 ‘메시아’의 위치를 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파괴와 동시에 퇴장한다. 이로써 니체적 파괴 그 자체에 경도되기보다는 그 이후에 비-형이상학적으로 저마다의 가치를 창조해갈 것이 요청된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초인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초인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3) 니체에게서 투쟁의 긍정: 승자독식 이데올로기를 경계하는 해석
특유의 매료시키는 문체를 지닌 니체가 정치나 전쟁 등에 대하여 언급할 때, 세계 대전의 기억을 공유하는 21세기의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전쟁을 선동하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자연스레 연상하곤 한다. 실제로 니체의 동생이 니체의 저서를 자의적으로 엮어 나치의 프로파간다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Ø …… 평화는 오직 새로운 싸움의 수단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오랜 평화보다도 짧은 평화를 사랑해야 한다. / 나는 그대들에게 노동이 아닌 전투를 권한다. 평화를 원하지 말고 승리를 원할 것을 권한다. ……
그러한 언급들이 실제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에 대한 비유와 상징일 뿐이라며 지나치게 탈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체가 발달하여 전쟁의 참상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에, 전쟁이란 고양된 주체가 그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지금보다 훨씬 쉽게 낭만화되곤 하였으며 니체도 그 영향권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이러한 언급들을, 지배야욕을 위한 전쟁에 사람들을 동원하려는 권력자들의 선동 문구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이 문구에 따르면 약자들이 기만적 평화상태를 종결하고 상승을 위해 투쟁하여 권력을 빼앗는 것 역시 무한히 긍정되기 때문이다. 고귀함, 숭고함을 갖춘 투쟁에 대한 니체의 추구가 약자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약자를 약자로만 남게 하는 기만적인 노예 도덕을 제공하는 ‘연민의 종교’(전예완, 2010)로서의 기독교적 정신에 대한 혐오임은 이하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따라서 승자독식이란 없으며, 투쟁을 통한 권력 획득/상실의 영원한 반복이 긍정된다.
Ø 반항, 그것은 노예에게는 미덕이다. 그대들의 미덕이 복종인 것처럼! 그대들이 명령하는 것까지도 복종이 되게 하라!
(4) 반여성적 편견으로부터 니체 사상을 구원하기: 부과되는 여성성의 극복
초인을 추구하는 니체는 정작 여성들이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성질을 바탕으로 그들에게 의무를 부과한다.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닌 초인을 출산하는 것을 갈망하도록 요구한다. 여성에게 ‘어떠해야 마땅하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마땅하다는 것들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면모도 보인다. 따라서 여성관에 있어서 니체의 텍스트에 대한 직접적 옹호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니체 스스로의 언명을 바탕으로 니체 텍스트의 여성관을 극복하는 일종의 이론적인 장난을 꾀하여 니체의 텍스트를 니체가 원하지 않을 방식으로 여성혐오로부터 구제해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초인이 여성임을 가정해 봄으로써 쉽게 가능하다. (1) 철지난 의무론과 규범을 극복하고 (2) 전통적 ‘여성성’이 여성에게 있어 본유적이거나 당위적인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남성중심사회 속에서 일방적으로 형성된 것일 가능성을 고려하여, 니체의 텍스트에서 여성에 대한 언급을 ‘어떠해야 마땅하다’가 아닌 ‘현재 어떠하게 인식된다’ 정도로 대체하고 자기긍정을 통해 그러한 인식의 철폐를 꾀하는 것이다.
(5) 반민주주의에의 혐의로부터 니체 사상을 구원하기: 민주주의와 기독교 도덕의 개념적 무관성
니체에게서 민주주의는 ‘영혼 불멸과 신의 구원 앞에서의 평등을 내세워 ‘궁핍한 자’들의 지지를 얻은 기독교 도덕의 후신이며, 평등의 가치에 매몰되어 정신적 고양을 방해한다고 간주된다(전예완, 2010). 그러나 민주주의가 기독교 형이상학과 결부된 것은 순전히 역사적인 이유로, 민주주의의 개념은 저마다의 가치 창조를 긍정하는 니체의 무신론적 인본주의에서도 얼마든지 정초될 수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만 투쟁에 어떤 형식을 부여하는데, 이 형식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이고 실용적인 것으로, 2-(2)에서 언급된 파괴 이후의 것이다. 또한 평등의 개념 역시 신을 도입해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실질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라면 니체 사상에 잘 부합한다. 이상을 종합하면, 민주주의가 궁핍한 삶의 극복을 막고 기만적인 평화를 유지시킨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적 니체주의자 입장에서라면) 기독교적 도덕을 완전히 폐기하지 못하여 불완전하기 때문일 것이며, 민주주의의 진정한 실현은 오히려 투쟁을 통해 달성되는 충만한 삶과 맞닿아 있다. 물론 니체 저작의 문구를 문자 그대로 읽거나, 실제 인물 니체가 가지고 있었을 사상을 추정해 볼 경우 그것들은 철저하게 반민주적으로 독해됨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연과 우연을 구분하고 몇 가지 ‘교통 정리’를 거치면, 투쟁을 긍정하는 니체 사상의 전모는 어김없이 민주주의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적 도덕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차지하는 개념적 특징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에 의해 개입해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것을 근본적으로 극복하여 자신의 원관념을 실현함과 동시에 니체 사상과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은 당대성의 비판인 한에서 정당하며,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 탐구가 아닌 탈역사적이고 개념적인 조명을 바탕으로 니체의 견해를 수정해본다면 니체의 사상적 유산은 (그의 실제 정치관과 무관하게) 오히려 민주주의의 보다 근본적인 추구로 우리를 이끈다.
(6) 니체의 빌런적 독해는 과연 오독일 뿐인가?
니체에 깊이 매료된, 혹은 니체를 닮은 이들은 별난 구석이 있다. 이들 중에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를 닮은 사람도, 빌런을 닮은 사람도 있다. 먼저 자신이 가진 비정상성을 자기확신과 긍정으로 이행시켜, 외부 규범에 의해 제약되고 조건지워진 바를 극복하는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니체 사상을 쉴 새 없이 인용하며 타인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행보, 혹은 현실 사회에서의 도덕, 윤리와 같은 ‘입바른 소리’를 과도하게 비웃고 폄하하는 언행도 많이 관찰된다.
히어로영화 속에서의 신념형 빌런들은 대개 정의로운 의도를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폭력을 감행한다. 자신의 의도에 따라 세계를 배열하고 조직하려는 욕망은 그 자체로 하나의 투쟁이면서, 동시에 다른 투쟁을 억압한다. 그러나 자기확신과 긍정, 그에 따른 신념의 무조건적 실현 그 자체는 매우 니체적으로 보이며, 히어로와 과연 얼마나 다른지 의문을 갖게끔 한다.
히어로와 빌런은 주로 매우 닮았으면서도 서로 달라서 지독하게 얽혀 있으며, 이러한 쌍대성은 히어로 영화의 서사와 갈등 구도를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이러한 얽힘 구조는 결국 현실 사회에서 나타나는 니체 해석의 두 갈래 길에 거칠게나마 대응될 수 있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히어로 영화 속 ‘빌런’과, 현실 사회에서 여러 가치를 비웃는 ‘빌런’을 구분하지 않고 다루겠다.
니체의 투쟁 긍정이 승자독식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나의 해석이 정당하다면, 신념을 실현하고자 세계를 재조직하고 지배하려는 빌런들의 욕망은 바로 니체가 조롱하고 있는 거짓된 메시아 그 자체일 것이다. 실제로 히어로 영화의 빌런에 대한 분석과 비평에 니체가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니체 사상에 대한 현실과 영화 속에서의 이러한 빌런적 변용은 그저 철저한 ‘오독’일 뿐인가? 즉 니체 사상 자체에는 과연 혐의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니체는 메시아를 가장 강력하게 조롱하면서도, 정작 그 강력함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끔 하는 수많은 계기들을 스스로 텍스트 속에 심어 두었다. 니체는 그의 텍스트에서 그러한 오독을 예견적으로 교정하지 않고 오히려 예견적으로 방조한다.
니체에 대한 빌런적 독해의 가장 큰 원인은, 현대인들에게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사고의 방식을 니체가 지나치게 거창하게, 극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니체가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고방식이 널리 퍼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니체에게 분명히 빚지고 있다. 니체가 말한 파괴의 순간은, 실제 역사에서도 니체로 인해 어느정도 정말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빌런적 독해자들은 니체가 감행한 (형식, 내용 모두) 파괴적인 전환 그 자체에 지나치게 강하게 주목하고, 니체적 파괴 이후에 우리가 세워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거나 도리어 폄하한다. ‘니체적 순간’이어야 할 것을 ‘니체의 시대’로 만들어 버린다.
니체에 대한 빌런적 독해의 또다른 계기는 바로 니체 철학 속에서의 상호주관성의 부재이다. 니체는 ‘도덕’으로 대표되는, 객관과 보편을 세우고자 하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파괴하고 주체의 무조건적 긍정을 꾀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철저한 자기 긍정은 필연적으로 타자에게 부담을 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상호주관적 문제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니체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많은 가치는 절대적이라고 믿어져서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자기 긍정(니체적 구원)에 실용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합의되고 발전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형이상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나약한 욕망을 극복하고 상호주관적으로 정당화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7) 니체와 과학
근대성의 오만과 폭력은 꾸준히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고, 과학도 이와 결부되어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 왔다. 대표적으로 우생학은 정상 과학의 입지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현대 기준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남기며 통계학의 초석을 닦은 수리통계학자들에게서마저도 그 연구의 동기는 우생학적인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과학을 전면에 내세운 폭력적인 담론은 실제로는 훌륭한 과학연구의 내용을 비약적으로 악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 폭력적인 담론에 복무할 목적으로 생산된 병적인 과학에 근거한 것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경우이든, 과학을 정말로 잘 수용한다면 어떠한 과학 지식을 재료 삼아 사변적 형이상학을 전개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별로 많은 ‘교훈’, ‘가치’를 전해주지 않는다. 과학도들은 이러한 태도를 적극 취하여 과학의 오남용을 막고, 자신들에게 씌워진 과학주의의 혐의를 벗을 수 있다.
니체는 특유의 시적인 문체, 반합리/반과학적 철학자들과의 연관성, 문학 및 예술과의 친화성 덕분에 과학이라는 단어와는 멀어 보인다. 그러나 사변적 형이상학을 철폐한다는 점에 집중해 보면, 해석하기에 따라 과학도들에게 적합한 철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3. 광기와 모더니티: 헤겔의 길과 니체의 길
니체의 사상을 대변하고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마치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사로잡힌 시인과 같은 문체로 이야기한다. 니체의 이러한 저술 방식은 철학의 애호가들이 광기에 대해 사유할 때 주로 니체를 연상하도록 만든다(그가 말년에 실제 ‘광인’이 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러나 광기란 오히려 더없이 차분하고 분석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다양한 체계적 지식과 규범들이 더없이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중 정밀하지 못하며 사상누각에 불과하여 인식의 확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음을 안다. 반면에 니체의 철학은 만물의 체계화를 욕망하는 광기를 경계하고 삶의 중차대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한 집요한 사색을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꾀한다.
근대철학의 첫 번째 집대성자로 여겨지는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역사관과 정치관을 드러내어 주는 그의 두 가지 명제를 살펴보자.
“제 3명제: 자연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그의 동물적 존재의 기계적인 명령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끌어 내어야만 한다는 것이며, 또 인간 자신이 본능에 의존하지 않고 이성을 통해서 창조한 행복과 완전함 이외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제 8명제: 인류의 역사는 국내적으로도 완전하며, 그리고 이 목적에 맞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국가 체제를 –이 완전한 국가 체제는 자연이 인류의 모든 소질을 완전히 계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태인데-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출처: 칸트의 역사철학(이한구 엮음)
인용된 제 3명제에서 우리는 전술한 니체 사상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칸트는 본능과 이성을 구분하여 본능을 극복하고 이성을 추구하고자 하였고, 니체는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고 (아마도 칸트의 실천이성비판 등을 통하여 만들어졌을) 외적 도덕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둘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나,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창조를 긍정하여 인간성이 최대로 발현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제 8명제에서는, 역사를 이념의 단선적 발전사로 파악하면서 모든 것을 자기의 체계 안에 포함하여 사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W.F. Hegel, 1770-1831)을 필두로 하는 이러한 욕망은 형이상학적 관념론, 그리고 그로부터 도출되는 수많은 규범들로 이어진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과연 정말로 광기에 차 있는 자는 누구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한자로서의 자기확신을 가지고 생을 긍정하는 초인이 광인인가, 혹은 무한성과 절대성을 갈망하며 체계를 수립하는 무기력한 사람이 광인인가? 광기에 어리었다고 흔히 이야기되는 니체의 기획은 근대성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후기 근대의 독단이라는 ‘진짜’ 광기를 청산하고 근대성의 원관념이었던 자유의 긍정과 인본주의의 회복을 꾀한 것이 아닌가.
4. 저술에 있어 내용과 형식의 문제
이러한 역사철학적 논의의 끝에서 우리는 마침내 다시 문학적(?) 질문으로 돌아온다. 역사이해의 방식과 역사서술의 방식은 역사에 대한 메타적 사유 즉 역사철학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며,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사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의적으로 서사를 구성하여 표현하느냐에 대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문학적’이기도 하다.
역사란 초기 조건이 동일하더라도 몇 가지 우연들에 의하여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 수 있으며, 이것은 철학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연을 고려할 때, 말하자면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역사철학에는 가정이 있다. ‘니체가 그의 저작을 지금과 정반대의 문체로 저술했다면?’ 이런 식의 가정 말이다. 우리는 ‘어떤 내용을 최적으로 표현하는 형식’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내용과 형식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비유적’으로 선택되는 것이고, 저술자가 그 선택을 한 근거가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본질적으로는 ‘우연적’인 것 같다. 그 선택이 최적인지의 여부는 필연적으로 계량되거나 논증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만약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은 방식이 아닌 지극히 분석적이고 건조한 태도로 제시했다면 우리는 그가 말한 것을 지금과 같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혹은 그가 유명해져서 지금처럼 철학사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었을지 질문해 보자. 그리고 더욱 중요한 질문으로, 그의 철학이 그렇게 제시된다면 과연 동일한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자. 이미 저술을 내놓은 철학자에게 다른 문체로 다시 써 보라고 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철학적 저술은 개인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일회적인 사태이기 때문에) 이것은 실질적인 검증이 어려우며, 철학의 논의 대상일 것이다. 특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 특유의 문체가 니체 철학의 내용, 그리고 전달 효과에 있어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끝 -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폭력 직시와 현장 중시가 낭만주의를 극복한다
나는 숨쉬듯이 공공영역의 수혜를 입으면서 현대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그걸 명시적으로 느끼려면 계기가 필요한것 또한 사실이다. 또한 근대적 체제의 공적 기구는 수혜를 줄뿐 아니라 통제와 폭력을 가하기도 하며 그것은 불가피할 때도 있지만 불합리한 억압이 되기도 한다.
자라면서 내가 속한 집단이 사적인 관계(혹은 사적 의무관계의 착취가 공공영역을 대체하고 있는것)가 아닌 공적인 장치를 통해 케어받고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느낌, 그리고 그에 따른 실질적 효용을 내가 크게 느낀건 중학교때 (아마 2010년 지방선거 이후로) 생긴 학생인권조례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단연 화두는 체벌금지였다.
우리세대와 그 이후까지도 어메이징한 기합이나 체벌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존재하는데 비해, 우리 중학교에선 애초에 비교적 표준적인(...) 형태의 체벌들 위주로만 있기는 했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거고 정말 심한 경우나 정말 문제있는 선생님도 있었다). 그래도 그것들이 없어진다는게, 당시 느낌으로는 엄청 큰 불합리가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이어서 꽤 효능감이 컸고 학생들 사이에서 화제도 많이 됐었다.
이건 시사에 특별히 관심있는 학생뿐 아니라 대다수가 마찬가지였고, 더 개기는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 개기는게 너무 보기힘들고 통제도 마땅치 않다보니 체벌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이 있었다. 어른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자신들과 직접 관련있는 특정 사안에 대해 각자 나름의 의견을 형성한것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접할 일이 크게 없고, 접할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인 교육봉사나 사교육도 안하다보니, 나는 각자 나름의 의견을 가진 주체로서의 학생들이 굉장히 궁금하다. 나같은경우 한창 가치관을 형성하는 초/중학교 시절에 사회에서 여성을 재현하고 여성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단적인 예로, 학생들이건 TV에서건 희화화된 여장 하곤 하는 것에서 남성성/여성성이란게 저사람들에게 갖는 사회적 의미가 뭐길래 비대칭성이 생기는지 등등... 그리고 그런 생각들의 동기는 주로 거창한 인권 이런것보단, 성과 관련되기만 하면 왜그렇게 다들 징그럽게 말하고 비논리적으로 구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한명의 철저한 이과 너드로서의 논리적(...)인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그런걸 개념화하고 언어화할 도구가 딱히 없어서 혼자 네이버 블로그에나 썼었다.
그런식의 생각을 쌓아왔으니 미시적인 권력관계, 그리고 언어와 문화 속의 매우 미묘한 지점들에 대한 문제를 건드리는 페미니즘의 언어는 전적으로 동의는 안하더라도 (당연히 그 안에서도 다 다르니까...) 매우 반갑고 맘에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여성주의적 인식이 상당히 대중화가 되고 명시적으로 유통되고 있으니, 그런쪽으론 학생들의 의견이 어떨지 궁금하다.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불가역적으로 변화된 부분들이 있는것인지 아니면 순도 100%에 가까운 반대vs동의 싸움인건지...
그러나 여러 기사들이나 현장 종사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런부분은 엄청난 분쟁을 일으키는 주제가 되고있고 그 누구한테서든 차분히 들어볼 여건은 마땅치 않은듯하다. 기회와 여건이 되면 누구나 차분한 대화를 할수있다는 막연한 기대야말로 접어둬야할 낭만주의적 착각이겠지.
아무튼 다시 체벌금지 얘기로 돌아와서... 물론 그 당시 엄청난 효능감을 느꼈고 커다란 불합리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실 어메이징한 체벌이 있는 학교일수록 그런 문화가 뿅 하고 한번에 없어지기는 더욱더 어려울거고, 따라서 실제로는 사태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현재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물론 기억에 따르면 그당시 학생들 최고 관심사안이었던 두발 규제 폐지는 그때도 한다고 하다가 제대로 안됐고,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하지 말라고 하긴 하는데 많은 학교에서 실질적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쉬이 안 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많은 지역의 학교들에서 전형적인 한국인 ethnicity를 갖지 않은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럴경우에 두발 등 외양관련 통제는 어떤식으로 변화해갈지도 궁금하기는 하다.
이러한 흐름에는 많은 노력이 있었겠으나 제도권에서 제일 임팩트있게 주도한 사람중 한명으로는 곽노현을 꼽을수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의 금품문제 및 해당 건과 관련된 mb국정원 개입 (개입 안해도 어차피 문제 됐을텐데...) 등 논란을 떠나 교육관 얘기만 해보자면, 인권이라는 가치에 근거해서 폭력적인 학교의 모습을 바꿔보려던 위와 같은 개혁 방항은 보편적 공감대를 살 잠재력이 있었고 결과도 그럭저럭 긍정적이었다고 할수 있겠다.
그러나 동일인물이 나중에 수학 교육에 대해 쓴 글 같은걸 보면 사적인 진보적 신념을 교육 및 교과내용에 과도하게 개입시키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건 곽노현 한명만의 모습이 아니고, 많은이들이 소위 진보교육을 결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국가의 중장기적인 발전 그리고 보편적 가치에 따른 국민일반의 권리 증진은, 경합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 견제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신념 중 다소 이상한 것들은 빠르게 쇠퇴시키고, 중요한 것들, 보편적으로 설득가능한 것들을 전면에 내놓고 견줌으로써 가능한게 아닐까 싶다.
뽑아 놨더니 원하지 않은 여러 가지 것들이 세트로 딸려오는 사태는 정치의 본성상 어쩔수 없지만, 어쩔수 없다고만 하고 적극적 해결 노력을 안한다면 대의제 정치에 대한 냉소가 커지며, 모든 사안을 분해하거나 반대로 모든 사안을 엮어버리는 극단주의의 탄생 계기가 된다.
쓰다보니 매우 두서없어졌는데, 구성이 탄탄해보이는 눈속임을 위해 맥아리없지만 어케든 마무리를 써보자. 결국 학생들 또한 권리와 욕망을 의식하고 피력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점에 대한, 낭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의 현장감있는 인식이 필요할듯싶다. 경합하는 정치적 가치들 중에선, 그렇게 인식된 욕망들을 존중하면서도 적절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긍정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그 사이에서의 균형감 있는 선택은 단순히 선의만을 따라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단순히 어느 한 세력의 지향점을 전적으로 택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심지어 절충하겠다면서 중간을 택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결국 사적 신념을 우선시하기보다는 현장에서의 여러 행위자들이 느끼는 불합리를 먼저 경청하는 태도, 그리고 실력을 바탕으로 의제를 조직해내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공간을 열어줄수 있는지와 관련된 퍼블릭섹터의 역량이 문제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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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9일 토요일
<언어가 삶이 될 때(김미소)>를 읽기 시작하며
어제는 오랜만에 연구실 인원들끼리 날 잡고 식사를 했다. 특히 이번에 옆에 앉은 브라질 출신 학생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연구실은 그룹미팅 등 모든 활동과 공지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는 여건이 되면 한국어를 더 깊게 배우고 싶고, 한국어로 그룹미팅 발표까지 해보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
학술 발표는 어떤 면에선 데일리 스몰토크보다 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기도 한 것 같다. 먼저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이 되어있다는 전제 하에, 사용하는 용어와 논의의 흐름이 어느정도 정해져 있고, 즉흥적인 언어적, 사회적 센스를 발휘해야 할 일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는 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들 간의 논리적인 관계나 통시적인 관계를 정확하게 말하기 위한 문법과 여러가지 표현들을 익혀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상 대화보다 어렵다고도 할수 있을 듯 하다.
아무튼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의 한국어 연습을 다들 기다려줄수 있을것이다, 이미 다같이 영어로 발표하면서 서투르더라도 서로 기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서투른 영어로 띄엄띄엄 말했지만 (애초에 연습을 기다린다는 게 무슨말임....) 다행히 서로 잘 알아들었고 좋은 말인것 같다고 했다.
'우리'와 '그들'을 은연중에 나누는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고도 늘 선언은 해 왔지만 정작 다른 언어 화자와 생활에서 접하면서 체감하고 실천할 일이 잘 없었는데, 요즘들어서는 이런식의 생각과 말들을 자주 하게 된다.
두서없는 서론이 길었는데, 대략 이런 모티베이션을 가지고 페친 쌤의 신간 《언어가 삶이 될 때 - 낯선 세계를 용기 있게 여행하는 법 (김미소 지음, 한겨레출판)》를 읽어보려 한다. 나도 향후 국제공통어로서의 영어를 사용하는 커뮤니티로의 해외 유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방인으로서의, 혹은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특별나게 해 본 바는 없는 나지만... 내 저런 생각들을 확인하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고, 몰랐던 걸 간접적으로 많이 알게 되면서 시야를 확장하게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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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4일 월요일
필수요소 유니버스: 자기참조적인 합리적 확장
한국 인터넷 문화에서 시대를 풍미한 필수요소들인 야인시대의 심영과 로버트 할리의 쌀국수 뚝배기 광고는 (마치 영화 '테넷'처럼) 역재생을 통해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야인시대에서 심영이 외치는 '이게 무슨 소리야'를 역재생하면 'I want some 뚝배기'로 들리는 대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때때로 발견되는 이러한 우연적인 연관성은 합성물들의 멀티버스 속에서 무척 흥미로운 링크들을 만들며, 예정되어 있는 무한한 재조합을 더욱더 가속시키고 다채롭게끔 한다.
비가역적인 세계임에도 이처럼 필수요소가 시간 양방향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들이 세계에 필연적으로 새겨져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우연성 속의 필연성', 언젠가 발견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필연성의 근거는 다름이 아니라 무작위에 가까운 신호들 속에서 기존에 합의된 필수요소와의 공통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떠 내는', 그럼으로써 필수요소들의 우주를 합리적으로 확장하는 합성 문화 향유자들의 심정능력일 테다.
필수요소들의 집합이 자기 스스로를 규칙삼아 스스로를 확장시키는 이러한 '합리적 확장'은 전통적인 예술적 창작행위에 비해 현대성의 본질과 한껏 맞닿아 있다. 마치 시공간 및 패리티 반전 변환에 의해 그 종류를 달리하는 기본 소립자들처럼, 합성물들의 멀티버스 속에서 필수요소들은 또다른 필수요소들로 그 종류만을 바꾸어 스스로를 드러내며 영원회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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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일 토요일
한국 과학담론의 지형
한국에서 과학기술 및 그 인접활동에 참여하고있는 그룹을 크게 세네 가지 정도로 나눠보자면 (1) 과학, (2) 과학문화 및 출판, (3) 과학인문학 (과학철학, 과학기술사회학, 과학사) 정도라고 할수 있을듯하다. 여기에 과학저널리즘도 있을거고, 과학현장에서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쪽에 발을 걸친 분들도 있다.
과학전공자 및 과학자들의 참여비중이 높은 과학적 회의주의라고 하는 활동의 경우는, 독자적인 그룹일수도 있겠지만 과학문화 및 출판 쪽에 포함을 시켜 볼 수 있을 듯하고... 명확히 묶이는 단체가 있다기보다는 스켑틱진영이라고 하면 대략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듣는 편이다.
이들은 흥미롭게도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00~10년대를 주름잡은 문과분야 '논객' 집단이랑도 얼기설기 꽤 연관이 되어있기도 하다. 이러한 연관성은 황우석 사건을 키워드로 찾아보면 여러가지 자료가 나온다.
물론 칼같이 나눠지는것은 아니다. 이들은 교집합도 많고, 서로간에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긴장하며 여러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듯하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