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는 CVPR 표절 건은 워낙 큰 랩에서 일어난 일인데, 해당 교신저자인 교수님이 학내외로 명망이 있어서 바쁘기도 하고, 연구실의 분야 coverage도 (내가 볼땐 좀 지나칠만큼) 넓기로 유명했는데 그게 독이 된 느낌이다. 주로 학생들끼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표절 및 부적절한 authorship에 대한 랩 내의 인식 제고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한다. 물론 연구실 자체적인 적극 인식제고가 없더라도 이런 일은 상식적으로 없어야 하는게 맞다. 그만큼 표절 건 중에서도 좀 굉장히 노골적이고, 표기 부주의 내지는 테크니컬한 실수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은 그 1저자가 명백히 잘못한 것이고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겠지만, coauthor들이 섭밋 이후에라도 책임감과 애정을 갖고 한번 더 확인을 했더라면, 혹은 lab culture가 이런 문제에 조금 더 명시적으로 aware했더라면 이런 일이 방지될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대다수가 스스로 잘 한다고 할지라도 (사실 그조차도 의문이지만), '설마 하는' 그런 일을 막으려면 결국은 그런 명시적 awareness가 있어야 한다. 다른 연구실들에서도 참고해야 할 점이다. 나 역시 지금은 다른 과로 왔지만 학부가 ECE 출신이다 보니 이번일에 무척 신경이 쓰이고 실망감이 들기는 한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아주 촉박하게 섭밋을 하느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확인이 부족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리뷰어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학회 측에서 기술적으로 거를 수 있어야 했는데 (심지어 다른분야도 아니고 ai 학회인데...) 그런 절차도 작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건 단순히 문제의 논문에 대한 blame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해당분야 연구자들 전체가 좀 무력감을 느끼고 학회들 전체를 되돌아보게 될 사안 같기도 하다. 누구나 게재되기를 원하는 학회인데 이런 식으로도 억셉이 되는구나 하니까.
2005-06년에 국제 학계를 뒤집어놓은 대형사고가 우리 학교에서 있었다보니, 출판윤리를 포함한 연구윤리에 대해 교과/비교과 교육도 의무화해서 시행하는 등 학교 측에서도 상당히 노력 하기는 한다. 그리고 교육 자료의 퀄리티도 생각보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괜찮다. 그럼에도 그런 탑다운 교육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모양이다.
내생각엔 연구자 개개인이 일상 대화 수준에서 연구윤리 관련 인식을 끊임없이 서로 환기할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이전에 지적했듯 결국 출발점은 연구실의 미시적 사회학이다. 이것을 그저 빡빡한 규칙이라고 여기면 안되고 qualify된 연구산출물을 생산하기 위한 재밌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야 연구윤리의 적극적 준수를 일상화할 수 있다. 이건 학교 측에서 단기간에 어떻게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향상시켜야 하는 문제같다.
학술적 글쓰기도 지식생산과정으로서의 연구활동의 당연한 일부라 생각하고, 거의 취미처럼(?) 그런 출판윤리 관련된 규칙들을 알아보고 서로 도와주고 확인해주는 문화가 필요할듯하다. 그런 집착적인 지적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 하는게 좋다고 본다.
표절 방지를 위한 출판윤리의 준수는 단순히 귀찮은 규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들의 오리지널리티가 충분히 드러난 하나의 자격있는 아카데믹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한 재밌는 지적 작업으로, 연구활동 그 자체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점도 이런 문제에 알게 모르게 기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만해도 아무래도 논문의 디테일과 전모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논문이라는 걸 완결성과 자격을 갖춘 하나의 글이라는 관점보다는, 좋은 연구 활동을 했다는걸 억셉 여부를 통해 증명하는 하나의 오브젝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는게 아닌가 하는것.
약간 비약해보자면 한국의 공부문화는 타이틀과 성적에는 커다란 관심이 있지만 그 과정 및 실제적인 내용에는 신경을 덜쓰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꼼수가 끊임없이 일어나는것 같다. 정말로 지식추구 및 생산 활동으로서 좁은 의미로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위 명문대 중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적다고 본다 (의미를 좁혔으니 당연히 더 적겠지). 우리학교의 경우 1학년 물리학실험 과목이 그렇게 욕을 먹던데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는 일부 조교와, 대충 넘어가고 싶은데 빡빡하게 한다고 불만 갖는 일부 학생들의 자강두천인듯하다.
또한 막연히 공부 하면서 논문 쓰는걸 넘어, 자기분야의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학위과정의 데일리라이프를 수행할수 있게끔 해야한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K-사회생활이 가미되면 그런 게 잡일로 느껴지고 부작용이 많게 되기 마련이다... 참여를 증진하는 그런 장치들이 연구에의 집중을 방해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활동을 더 촉진시키고 동기부여 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건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야 가능한데, 그런 걸 더 보편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암튼 이건 윤리의 준수뿐 아니라 학생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요컨대 장기간의 노력을 통한 간헐적 실적 확보라는 일방적(?) 패러다임을, 책임성 기반의 데일리한 역할 수행을 통한 신뢰의 확보라는 상호적(?) 패러다임이 일정부분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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