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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자기계발 일변도의 교훈 향유 문화는 담론을 평면화하고 스캠을 낳는다

역대 본 것 중 손꼽게 열받는 유튜브컨텐츠 및 채널인듯하다. 자석은 왜 서로 밀거나 당기는지에 대한 파인만의 유명한 답변 영상을, 본 채널에서는 매우 교훈적, 자기계발적으로 전유해두었다.


사실 파인만의 원래 영상도 뛰어난 고찰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킹받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과학자의 태도와 과학지식의 성격에 대해 알려주는 유익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거기에 K-자기계발이 더해지니, 과학 지식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 난데없이 인생에 대한 교훈으로 바뀌어 버렸다.


다른 나라라고 이런 게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에서는 만물에 대한 자기계발 일변도의 교훈적 소비 문화 (그리고 그것의 상업화)가 정말 발달해 있는 것 같다.


사람 1명, 문구: '자석을 들고 댓글 작실만일 작심만일 성공 마인드 동반자님이 고정함 작심만일 성공 마인드 동반자 2개월 전(수정됨) [작심만일 오프라인 퍼포먼스 코칭모집] "단 30개 영상으로 5개월만에 유튜브 15만 구독자 만든 비결" "목표 성공의 본질을 체화하게 해드립니다" https://bit.ly/3xw6hdR 49'의 이미지일 수 있음 

사람 1명, 문구: '"후..이것봐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 11:05 질문자의 우문에 인생 현답을 하다 작심만일 전설적인 물리학자의 몰입감 쩌는 인생 교훈... (과연 나는 어떨까?) 작심만일 성공 마인드 동반자· 조회수 80만회· 2개월전'의 이미지일 수 있음

그 원인을 추측해 보자면 발달한 매체 환경, 대학입시의 절대적(?) 중요성, 취업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및 힐링 필요성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토양에서 대학입시 강사들이 청소년들 세계관에 비대한 영향력 행사하며 가스라이팅 하고, 더 나아가 성인들까지 현혹하는 졸꾸맨 신박사도 탄생하고 뭐 그렇게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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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9일 수요일

시계와 근대성: 잘게 나누고 바르게 견주기

"호텔에서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상뜨-안느(Sainte-Anne) 7번가에는 각종 보일러와 피스톤, 압력 장치 및 배관으로 가득한 공장 같은 곳이 있었다. 이 모습과 다소 어울리지 않게, 다른 한쪽 방에서는 폼 나게 차려입은 방문객들이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멋들어진 시계들을 둘러보고 있다. 공장 같은 곳 한가운데에는 소위 ‘마스터’ 시계라고 불리는 기계 장치가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시계에 흔한 톱니바퀴 외에도 여러 배관 및 압력 장치 등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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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시계에 동기화된 시계는 호텔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에 파리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가로등 시계, 기차역뿐만 아니라 가정집에 이르기까지 수천 개의 시계가 마스터 시계에 동기화되었다. 이를 위해 시내 곳곳으로 뻗어 나간 파이프 길이만 수십 킬로미터에 달했다. 대단한 공사였을 것 같지만, 수백 년 역사를 가진, 당시 총 길이 600 km의 파리 하수도 시스템을 통해 어렵지 않게 구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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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스팀펑크 그 자체다.ㄷㄷ 몇년 전 <물리학과 첨단기술>에 실린 기고문(https://webzine.kps.or.kr/?p=5_view&idx=63)의 일부인데, 글 전체도 재밌다. 시간을 잘게 나누어 측정하고 제어하는 기술력은 한 문명의 과학기술적 역량의 집약과도 같은데, 사람들의 라이프사이클과 의사소통의 해상도를 높이는 사회적 의의가 있을뿐만 아니라 또다른 기초과학적 발견들을 산출하는 포석이기도 한 것 같다.

사실 자연에 대한 정량적 탐구방법으로서의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신뢰를 보내게 되는 이유 중에는, 인간의 언어와 직관으로는 포섭되기 힘든 극미세의 시공간적 눈금들을 구분해낼 수 있게끔 '일관적으로 다른' 현상들을 캡쳐해준다는 것도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피코초와 펨토초는 둘다 엄청나게 짧은 시간이지만 주로 관여하는 에너지 스케일이 다르고, 효과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현상들이 다르다. 개별 과학 현상들을 잘 알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렇게 시공간적 스케일에 따라 올바르게 배열해 낼 수 있다면 무척 탁월한 교양을 갖춘 과학 애호가일 것이다.

글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저 시대에도 몇몇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미 전기를 이용한 시계 동기화도 있었다는 것이다. 후대의 나는 당시 파리의 저런 모습이 스팀펑크적이라며 미적으로 회고하고 있지만 그런식의 미적인 계기만으로 이런 시스템이 결정되지는 않았을 테고 기술적 격차 및 정치/행정적 요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듯.

기계식 시계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기능적인 면뿐 아니라 광의의 예술적 오브젝트로서의 면모가 함께 있었겠지만 쿼츠시계나 여타 초정밀시계의 기술적 발전에 따라 후자의 면모 위주로만 계승되기 시작하는 역사를 살펴봐도 재밌을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예술적 면모가 여전히 철저하게 기술력에 의해 핵심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가장 근대적인 물체 중에 하나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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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6일 일요일

국힘 대변인 '펜스룰' 논란에 부쳐: 개복치로 위장한 보복성 안티페미니즘을 배격하자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문성호 대변인의 '펜스룰' 사건이 논란이다 (네이버 뉴스 링크: 클릭). 문 대변인은 안티페미니즘 단체인 당당위 활동으로 명성을 얻고 '나는 국대다'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인물이다. 소위 펜스룰이 decency를 유지하기 위한 절제 따위로 잘못 여겨지지만 사실은 여성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취급하지 못하고 사회적 진출의 기회를 뺏는 일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기자가 취재대상에게 어떤 발언을 따오느냐가 매우 중요한 상황에서 이러한 인식과 발언은 정치인-언론 관계에서의 호모소셜을 잠재적으로 강화한다. 진지하지 않게 한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부적절한 젠더 인식을 드러내며, 그 이전에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이와 같이 기본적인 예의를 결여한, 개복치로 위장한 보복성 안티페미니즘은 기성세대의 구린 호모소셜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의 동등한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전화로 사과했다는 내용도 많이 부족하다. 여성주의 및 반여성주의와 관련지어 여성에 대해 여러가지 사적인 견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바람직하진 않겠으나 어쩔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스스로 밝혔듯이) 그것들 역시 본인이 일관적으로 걸어온 공적 행보에 뒤따르는 것이고, 게다가 저렇게 풀어내는 순간 이 역시 명백한 공적 발언이 된다. 이를 개인사 운운하며 축소하는 건 제대로된 사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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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당 윤리위원회 회부가 정당한지 등 당내 현안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식사를 마친 뒤 ‘다음에 식사 한 번 더 하시죠’라는 의례적인 인삿말을 건넸는데, 문 대변인에게서 이례적인 답이 돌아왔다. “다음에는 남성 기자님들과 함께 식사하시죠.” 이날 참석한 기자 3명은 모두 여성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변인이 되기 전 자신이 설립한 시민단체(당당위) 활동으로 인해 정신적 외상을 입었노라고 설명했다. 여성들의 성폭력 무고로 남성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들을 너무 많이 목격했고, 그로 인해 여성들만 있는 자리가 불편하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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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변인은 23일 기자에게 전화해 “어디까지나 제 개인사이고 힘들어도 스스로 감내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며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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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25일 토요일

CVPR 표절논문 게재를 보며: 지식생산자로서의 책임완수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논란이 되는 CVPR 표절 건은 워낙 큰 랩에서 일어난 일인데, 해당 교신저자인 교수님이 학내외로 명망이 있어서 바쁘기도 하고, 연구실의 분야 coverage도 (내가 볼땐 좀 지나칠만큼) 넓기로 유명했는데 그게 독이 된 느낌이다. 주로 학생들끼리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표절 및 부적절한 authorship에 대한 랩 내의 인식 제고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한다. 물론 연구실 자체적인 적극 인식제고가 없더라도 이런 일은 상식적으로 없어야 하는게 맞다. 그만큼 표절 건 중에서도 좀 굉장히 노골적이고, 표기 부주의 내지는 테크니컬한 실수와는 거리가 멀다.


결국은 그 1저자가 명백히 잘못한 것이고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겠지만, coauthor들이 섭밋 이후에라도 책임감과 애정을 갖고 한번 더 확인을 했더라면, 혹은 lab culture가 이런 문제에 조금 더 명시적으로 aware했더라면 이런 일이 방지될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대다수가 스스로 잘 한다고 할지라도 (사실 그조차도 의문이지만), '설마 하는' 그런 일을 막으려면 결국은 그런 명시적 awareness가 있어야 한다. 다른 연구실들에서도 참고해야 할 점이다. 나 역시 지금은 다른 과로 왔지만 학부가 ECE 출신이다 보니 이번일에 무척 신경이 쓰이고 실망감이 들기는 한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아주 촉박하게 섭밋을 하느라 이러한 문제에 대한 확인이 부족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리뷰어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학회 측에서 기술적으로 거를 수 있어야 했는데 (심지어 다른분야도 아니고 ai 학회인데...) 그런 절차도 작동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건 단순히 문제의 논문에 대한 blame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해당분야 연구자들 전체가 좀 무력감을 느끼고 학회들 전체를 되돌아보게 될 사안 같기도 하다. 누구나 게재되기를 원하는 학회인데 이런 식으로도 억셉이 되는구나 하니까.


2005-06년에 국제 학계를 뒤집어놓은 대형사고가 우리 학교에서 있었다보니, 출판윤리를 포함한 연구윤리에 대해 교과/비교과 교육도 의무화해서 시행하는 등 학교 측에서도 상당히 노력 하기는 한다. 그리고 교육 자료의 퀄리티도 생각보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괜찮다. 그럼에도 그런 탑다운 교육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모양이다.


내생각엔 연구자 개개인이 일상 대화 수준에서 연구윤리 관련 인식을 끊임없이 서로 환기할 정도의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이전에 지적했듯 결국 출발점은 연구실의 미시적 사회학이다. 이것을 그저 빡빡한 규칙이라고 여기면 안되고 qualify된 연구산출물을 생산하기 위한 재밌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야 연구윤리의 적극적 준수를 일상화할 수 있다. 이건 학교 측에서 단기간에 어떻게 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장기간에 걸쳐 향상시켜야 하는 문제같다.


학술적 글쓰기도 지식생산과정으로서의 연구활동의 당연한 일부라 생각하고, 거의 취미처럼(?) 그런 출판윤리 관련된 규칙들을 알아보고 서로 도와주고 확인해주는 문화가 필요할듯하다. 그런 집착적인 지적 작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대학원에 진학 하는게 좋다고 본다.


표절 방지를 위한 출판윤리의 준수는 단순히 귀찮은 규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자들의 오리지널리티가 충분히 드러난 하나의 자격있는 아카데믹 텍스트를 완성하기 위한 재밌는 지적 작업으로, 연구활동 그 자체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는 점도 이런 문제에 알게 모르게 기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나만해도 아무래도 논문의 디테일과 전모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다보니... 논문이라는 걸 완결성과 자격을 갖춘 하나의 글이라는 관점보다는, 좋은 연구 활동을 했다는걸 억셉 여부를 통해 증명하는 하나의 오브젝트로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는게 아닌가 하는것.


약간 비약해보자면 한국의 공부문화는 타이틀과 성적에는 커다란 관심이 있지만 그 과정 및 실제적인 내용에는 신경을 덜쓰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꼼수가 끊임없이 일어나는것 같다. 정말로 지식추구 및 생산 활동으로서 좁은 의미로의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위 명문대 중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적다고 본다 (의미를 좁혔으니 당연히 더 적겠지). 우리학교의 경우 1학년 물리학실험 과목이 그렇게 욕을 먹던데 가르치는 데 관심이 없는 일부 조교와, 대충 넘어가고 싶은데 빡빡하게 한다고 불만 갖는 일부 학생들의 자강두천인듯하다.


또한 막연히 공부 하면서 논문 쓰는걸 넘어, 자기분야의 커뮤니티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학위과정의 데일리라이프를 수행할수 있게끔 해야한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K-사회생활이 가미되면 그런 게 잡일로 느껴지고 부작용이 많게 되기 마련이다... 참여를 증진하는 그런 장치들이 연구에의 집중을 방해하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연구활동을 더 촉진시키고 동기부여 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건 상당히 좋은 환경에서야 가능한데, 그런 걸 더 보편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암튼 이건 윤리의 준수뿐 아니라 학생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요컨대 장기간의 노력을 통한 간헐적 실적 확보라는 일방적(?) 패러다임을, 책임성 기반의 데일리한 역할 수행을 통한 신뢰의 확보라는 상호적(?) 패러다임이 일정부분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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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6일 목요일

최무영 교수님의 비평형통계역학 특강 TA를 담당한 소감

교양과학서적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를 중학교 때 인상깊게 읽고 자기소개서에도 쓰고 그랬었는데, 10년쯤 지나서 이번 학기에 최 교수님의 '응집물질물리특강 1 (비평형통계역학)' 수업조교를 맡아서 하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학생들 과제물을 일일이 살펴보신 뒤에 조교에게 채점하게끔 주시는데, 이번에 마지막 과제 받으러 찾아뵐때 책을 가져가서 싸인을 받아도 되는지 여쭈었고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몇번 개정이 되고 표지도 바뀌어서 이제는 아마 구하기 힘든 판본일게다.


당시 내가 구입할 때 아버지도 같이 사 읽으셨어서, 싸인 받는다고 하니까 같이 갖고 가서 받아오게끔 부탁하셨다. 아버지는 이과 전공은 아니지만 수학도 내게 고등학생 초반까지 한 수 가르쳐 주셨을 정도로 워낙 잘하시고 했다보니 이런 과학쪽에도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으시고, 당시에 내가 물리학 관심있어 한다니까 함께 읽어보고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서 사 읽으셨던 것 같다.


다른 물리학자 교수님들과 최교수님이 공저하신 신간 <그렇게 물리학자가 되었다>도 마침 오늘(!) 출간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도 교보에서 사서 가지고 가려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 학교 교보에는 아직 입고가 안 되었더라. 자서전 느낌인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수업 얘기를 좀 해 보자면, 인문대 수업에서는 현실 정치사회에 대한 튀는 말씀도 꽤 자주 하신다고 하는데 (그러한 내용들이 종종 등장하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또한 요즘으로 따지면 '인문사회계를 위한 물리학'에 해당하는 수업에서 강의하셨던 걸 다듬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는 박사과정 특강 수업이다 보니 철저히 전공내용 위주로 진행을 하셨다.


그래도 가끔씩 수업 내용과 관련해서 과학지식의 인식론적 기초, 사회구성적 성격 같은것에 대해 말씀을 해 주시는데 교수님의 견해만을 바탕으로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해당 학계의 여러가지 설을 소개해주시는 식으로, 지극히 합리적인 견해 형성 방식을 갖고 계시다고 느꼈다.


특히 미시적인 대상들과 규칙들의 동역학이 실재에 가깝고 통계역학은 그것들로부터 유도될수 있어야 하는 부차적인 것이라는 물리학도 특유의 환원주의적 도식이, 반드시 맞는건 아닐 수 있다는 말씀도 재밌었다. 우리는 현상의 설명에 가장 유용한 이론적 틀을 골라서 적용하는 것일 뿐이고, 단단한 실재라고 믿어지는 것들도 마찬가지인 것.


이건 내가 시스템의 미시적 디테일이 irrelevant해지고 '근본적으로 거시적인' strict한 법칙들이 등장하는 universality class 같은 걸 보면서 했던 생각들과도 그 결이 비슷했다. 여하튼 소박한 환원주의에 대한 그런 의심은 언뜻 들으면 다소 신비주의적인 계기를 갖는 것으로 오해될수 있으며 한때 '신과학' 등의 구호 하에 지나칠 정도의 총체성에의 추구로 물리학자들을 이끌기도 했지만, 최 교수님은 한때 유행했던 그런 것들과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신 걸로 알고 있고, 해당 언급 역시 철저히 인식론적 문제의식이라고 생각된다.


뭐 모두 중요한 얘기들이지만 사실 여담들이고, 전공 내용 자체에 대한 최 교수님의 강의 실력 또한 두말할필요 없이 명불허전이셨다. 학기 중후반부에는 진도 때문에 너무 급하게 진행했는데 이것이 상당히 아쉽다.


물리 교수님들의 강의 방식을 내 마음대로 두 가지로 나눠 보자면 대단히 심오하고 미묘해보이게 설명하는 방식과, 최대한 클리어하고 담백하게 해설해서 아우라를 부수는 방식이 있다. 들어본 수업 중에는 김석 교수님이 대표적으로 후자 쪽이었다. 최 교수님 수업의 경우 관점은 기본적으로 전자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그 미묘한 것들조차 단순히 말로 하는게 아니라 정확한 이론적 statement들로 풀어내셔서 오히려 후자에 가깝게 느껴지는 탁월한 강의였다.


이번학기를 끝으로 퇴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명예교수 되시고 나서도 기회가 되면 강의를 열어주시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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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2일 일요일

디지탈 상업플랫폼에서 커뮤니케이션 직관의 사용자간 불일치가 가지는 잠재적 악영향

카카오톡에서 지인들과 얘기하면서 바로바로 식당 정보 검색할 때에는 주로 카카오톡 브라우저를 통해 카카오맵을 쓰게 되는데, 여기는 내가 주로 사용하는 네이버지도에 비해 식당 별점이 매우 안 좋게 찍히는 것 같다. 프리미엄한 곳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고 오래 가는 검증된 식당들은 네이버지도에서는 웬만하면 4점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데, 카카오맵은 리뷰가 수십 개씩 쌓였는데도 2점대, 3점대가 즐비함.


주로 크게 불만이 있을 때 카카오맵으로 와서 1점 찍어서 이렇게 되는 것 같은데 (사견으로는, 단순히 취향이 까다로운 것을 넘어 진상 내지는 테러에 가까운 납득 안되는 불만도 상당히 많음), 그러면 네이버지도도 똑같이 그래야 할 텐데 왜 안 그런가? 여기엔 뭔가 두 플랫폼에서 유저들이 다르게 행동하게 하는 구조적인 차이점이 있는 것 같음. 카카오맵이랑 네이버지도 쓰는 연령층이 특별히 다르다거나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궁금하다.


나는 기본도 갖추지 못한 곳에 대해서는 정말 안 좋게 생각하지만 그런 곳들은 주로 가격 자체가 싸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만 그러려니 하고... 명백한 실수가 있었거나 맘에 안드는 점이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멀쩡한 곳이라면 3점 이하의 점수를 줄 생각은 잘 안 드는 듯하다. 이게 옳다는 것은 아니고 사람마다 그 기준이 매우 다를 듯하다.


마치 스마트폰 도입 이후로 얼렁뚱땅 형성된 카카오톡 채팅 예절이 명시적 합의 없이 정착하면서 사람마다 커뮤니케이션의 직관이 달라서 가끔씩 불필요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것처럼, 별점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명시적인 사회적 합의가 딱히 없었다보니 필요 이상의 오해나, 필요 이상의 조심스러움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을 듯하다. 점주와 고객 사이에 기분 상하는 것은 인류의 상업 역사에서 언제 어디서나 있어 온 일이겠지만, 만약에 디지탈 플랫폼이 그러한 불일치의 해소가 아닌 강화를 구조적으로 유발하면서 신뢰가 훼손된다면, 그러한 현상은 기술적으로 혹은 UX적으로 완화될 필요가 있을것이다.


(+ Facebook에서 교류하는 분들이 좋은 답변들을 해주셨다. 요약하자면 카카오맵은 영수증 인증 등이 없더라도 익명으로 쓸 수 있는 게 제일 큰 차이점인 모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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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금요일

처음 도전해본 HTML 트러블슈팅

구축 중인 전공분야 관련 블로그 (https://yongjae-oh.blogspot.com) 상단에 있는 '게시물 목록' 가젯은 구글에서 제공하는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가져온 html 스크립트로 된 커스텀 가젯이다. 이게 원래 블로그(https://hapseda.blogspot.com)에서는 문제없이 잘 작동했는데, 이걸 새로운 블로그에 쓰려고 그대로 복사해서 넣었는데도 이상하게 그쪽에서는 작동이 안 돼서 지금까진 그냥 사용 안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게시물 목록이 표출은 되는데, 특정 게시물을 누른다고 해서 그 게시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블로그 최상단 게시물이 떴었다. 그러면 사실상 무용지물이고 어차피 피드 쭉 내려봐야 하는 구조가 돼서, 원하는거 바로 클릭해서 들어갈수 있는 블로그의 장점이 없고 페이스북이랑 다를게 없어졌었음.


원체 이런 코딩같은걸 생소해하는 편이고 어차피 그동안 방치해둔 블로그였어서 지금까지는 이거 해결할 생각을 안했는데, 큰맘먹고 html 열어 보니까 특정 게시물로 이동하는 동작이, 해당게시물의 최종 업데이트시각 관련된 정보(feed.entry[i].published.$t 이게 2021-10-07T17:03:0%2B09:00 이런 식의 시간관련 string을 뱉어줌)를 pub이라는 스트링에 저장해서, 이걸 포함한 url을 만듦으로써 이뤄지는 구조였다.


근데 문제가 뭐였냐면 url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눌러서 보니 이상하게 pub에 시간정보가 두번씩 써지는거다. 그러니까 제대로된 url이 아니게 돼서 최상단 게시물로 이동하는 거인듯.


그래서 매우 임시방편이고 다른데에 재활용이 불가능한 안좋은 스크립트긴 하지만... 게시물 제목 같은것과 달리 작성시간 정보는 문자열 수가 늘 일정하다는 것에 착안해서, string.substr(a,b) 이걸 써서 pub의 앞쪽절반만 url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니까 해결은 됐다.


아마 이 블로그 안에선 영원히 문제를 안일으킬것 같긴 한데, 원리적인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이다 보니 다른데 갖다쓰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수 있겠다. 스크립트의 원래 작성자 역시 스트링 관련해서 이런 땜질을 몇개 해놓은 흔적이 있던데, 그것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닐까한다.


근데 hapseda 블로그에선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여기서는 왜 이런건지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다.


하여튼 이런 코딩스러운거 난 못한다고만 생각하고 늘 피하기만 했었는데 막상 뜯어보고 문제해결에 접근 해보니까 재밌기도 한것같다. 스크립트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진 못하고있더라도 땜질식의 해결은 가능한데 그럴수록 돌이킬수 없이 사상누각처럼 되고, 잘 알수록 튼튼하고 깔끔한 해결이 가능한 그런 느낌이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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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학기를 마치며

학기가 거의 끝나 가는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보면 돌고 돌아 물리가 제일 재밌는 것 같다. 커다란 계산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풀어서 확인을 하고 그것들에 해석이 부여될 때마다, 혹은 어릴 때 교양과학서적에서 읽었던 내용이 실제 이론적으론 이런 거구나 하고 약간이나마 알게 될 때마다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음.


또 하나 느낀 점은 물리과 고급 이론과목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도 결국 수렴진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실제로 주변이랑 얘기 나눠 봐도, 학기 중반쯤 되니까 서로 다른 과목인데도 다들 비슷한 걸 배우고 있어서 웃길 때가 많았고... 양자장론, 상전이, 다체계, 응집특강 모두 교집합이 꽤 많다. 이건 다른게 아니라 그냥 현재로선 결국 물리를 기술하는 가장 보편적이고 진전된 언어가 장론이어서 그런것 같음.


다만 이번 학기에 내가 들은 수업들의 경우엔 Lorentz invariant한 이론들을 다루진 않았고 전부 시간과 공간을 따로 취급하긴 했다. 작년 양자장론 1은 상대론을 기본으로 깔고 가서 거의 제대로 못 따라갔는데, 지금은 장론의 기본적인 언어도 익혔고 일반상대론 수업에서 상대론의 언어도 익혔으니, 그때 내용을 지금 다시 본다면 좀더 수월하게 따라갈수 있을 듯.


대학원 초반에는 통계물리 분야는 다른 물리 분야랑 뭔가 아예 따로 논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요새 새롭게 다루는 대상들(네트워크, 생체, 머신러닝 등)이 물리학의 전형적 주제들과 살짝 따로 놀아서 그런거 같고, 이론적으로까지 그렇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내공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음.


근데 또 다르게 생각하면, 통계물리가 다른 분야랑 심하게 따로 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엄청 신기한 일이기도 함. 수많은 입자들이 모여 있는 거시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론(통계역학/통계장론)이, 그 입자들 한 두 개의 미시적인 상호작용 규칙을 다루는 이론(양자장론)이랑 출발점도 관점도 질적으로 아예 다른데, 결국 형식적으로 비슷하게 된다는거니까.


하여간 이론물리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들을 너무 모르다 보니, 그런걸 채워가면서 물리학도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자는게 이번학기 목표였다. 실제로 학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는 좀더 통합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학부시절에 전기과에서 신호처리 쪽 공부하면서 훈련받아서 델타함수, 푸리에변환, 복소적분 등을 잘 다루고 재밌어하는 게 내 부심(?) 중에 하나였는데, 고급 이론과목을 듣다보니 그런 것들은 기본 중에 기본소양으로 늘 깔려있는 느낌이다.


아주 구체적인 계산을 하지 않아도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따지는 것만으로 합리적으로 아귀가 맞으면서 올바른 물리를 주는게 되게 재밌다. 정확히 말을 못하겠는데 인과성, 동일성 같은 엄청 중요한 것들이 이런 계산들 속에서 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unphysical한 것들은 늘 절묘하게 제거가 됨. 암튼 내용적인 흥미나 직업적(?)인 목표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런 계산기법들을 늘상 다뤄볼수 있다는것도 공부의 데일리한 즐거움이겠다.


암튼 방학때는 작년에 너무 어려워서 던졌던 장론 수업 자료가 시스템에 남아 있으니 그걸 다시 공부해 보고, 이번 학기 수업 내용 중에서도 진도 나가느라 바빠서 상세한 예시 못 들어주셨던 걸 스스로 채워보고 하면 될 듯하다.


타과 출신이라는 것은 더이상 핑계가 되지 않는만큼, 일찍부터 공부 충실하게 한 동료들에 비해서 현재 내가 이해하고 활용할수 있는 이론의 폭은 정말 새발의 피도 안될 거라서 늦게나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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