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때 쓰려다 만 얘기에다 최근의 문제의식을 약간 더 섞어서 올려본다.
1.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준석 대표의 기획 중에는, 정치영역에서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약자 우대를 할당제라고 명명하고, 이를 없애겠다 라는 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역에서의 채용에 비유해서 이를 할당제라고 칭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같아보이게 만드는 잘못된 프레이밍이다. 평시 정치행위의 목적이며 대의제 민주사회의 핵심이벤트인 각종 선거에서, 각 부문, 각 인구집단의 실질적 파워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른 결과가 나오게끔 임파워링 해주는 것은 할당제라고 비웃을 일이 아니며 사회 통합을 위해 일부러라도 권장해야 하는 일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제를 운영하는 취지이기도 하다. 비례대표제가 없다면 각 지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텐데 이것이 진보진영에서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지역균형 의제로 흘러갈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실제로 할당제라고 칭할수 있는 일반 취업의 경우도 논할 필요는 있다. 궁극적으로는 학과, 그리고 해당 전공 유관 학계/산업계의 각 직급에 여러 인원이 지속적으로 고르게 분포되는게 지향점일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천장을 겪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장기적인 실적 면에서도 더 좋다는 리포트들도 꽤 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특정 직위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그 자체 수단이라기보단 이를 위한 과정이라고 볼수 있겠다. 물론 유일무이한 개인의 실적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는 종류의 취업시장에서는 좀더 애매해지는 이슈가 있겠으나... 마이너 디테일이고 각 부문의 특성별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리더가 조직에 존재하면 좋은 롤모델이 될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여성리더를 중심으로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그런거 아니겠는가.
즉 대의제 선거에서의 균형있는 선출, 일반취업에서의 할당제, 연구직 취업에서의 블라인드제 등 서로 비슷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논해야 한다. 무조건 같다고, 혹은 무조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단주의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2. 구획의 정치는 현실을 규정하고 추동한다
여성부를 독립 부처로 존치하는지 여부는 단순한 상징 싸움이 아니다. 직제 계통의 분리와 통합, 위계의 변화 등은 실제 정책의 방향 및 추진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전반적인 국정철학(?)을 반영할뿐 아니라, 어디에 힘을 싣고 어디에 힘을 뺄것인지가 구체적으로 결정된다.
예컨대 지자체 분리 및 통합을 생각해보라. 수도권 재구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거철만 되면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경기도와 서울시를 통합해서 '서울특별도'를 신설하는 방안, 그리고 경기도를 분리하여 '경기북도 및 경기남도'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있다.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예산의 관할주체와 각 사업의 유기적 연계 여부 등에 매우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며, 균형발전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현실에 매우 구체적으로 반영되게 된다.
정부부처 통합 및 분리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점을 염두한 채로 아래 단락으로 넘어가보자.
3. 분할과 정복: 개별화의 욕망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에 여성의제라는 단일한 의제는 실체가 모호하며 (혹은 그러한 묶임이 실용적이지 않으며) 철저히 개별 문제로 접근하면 된다는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잠깐 정반대로, 서로 다른 여러 부문을 하나로 엮는 이해에 대해 살펴보자. 이거 역시, 당연히 지적으로 위험하고 실천적으로도 올바른 결과를 주기 어렵다.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거라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대표사례는 평화라는 키워드 하에 여성, 생태, 군사, 국제 등 모든 키워드를 엮는 정희진 선생의 텍스트일것이다. 물론 그러한 글쓰기 및 사유 스타일은 이미 지성계 전반에 특정 조류로 이미 자리잡은 상태여서 지금와서 특정인을 탓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아무튼 만약에 그러한 신념이 권력을 통해 현실에 구현되어 부처가 통합된다면 특정한 이론, 보편적이지 않은 관념에 의존하는 셈이 되고, 제도의 공적 가치가 저해될것이다. 이는 민주적 권력에 의한 공적기구 재편에 사적 신념이 반영되면 안된다는, 광의의 세속주의적 문제의식으로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분별한 통합을 경계하는 만큼이나, 무분별한 분리 또한 경계해야한다. 여성 의제는 여성이 삶의 여러 경로와 단계에서 종합적으로 겪는 것들이므로, 이런 경우에는 정치적, 정책적으로 한 덩어리로 묶여있는 것이 그저 상징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시너지가 있다. 위 문단에서도 이미 밝혔다. 조금 과한 비유일수도 있지만 육군과 해군 모두 국방부의 통제를 받는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번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해서 법무부장관이 방문하여 주문한, 여성 안전 문제의 제도적 개선 같은 건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당연히 필요하고 또 정말 중요하다. 잘하는 거라고 본다. 그렇지만 만약에 지지층이나 정권이 그것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여전히 문제적이라는 얘기다.
위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정부는 '젠더문제란 없고, 파편적인 각 부문에서 여성과 관련있는 문제들이 존재할뿐이므로 쪼개놓아야 마땅하다'로 귀결되는 인식을 후보시절부터 매우 일관적으로 드러내고있다. 그 인식의 중심에 여가부 폐지가 있다. 이는 부처별로 이미 정립되어 있는 기능을 본인의 신념에 따라 재배열하여 이해하고있는 윤석열대통령 개인의 일관된 사고방식 (ex. 교육부의 존재 목적은 산업인력의 배출이라는 발언), 독립된 부문으로서의 젠더문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여가부폐지를 염원해온 청년남성 지지세가 절묘하게 조응한 결과일것이다.
4. 자유주의와 조화되는 평등론?: 자유의 총량 증진을 향하여
끝으로 자유라는 가치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조명해보자. 위에 말한 임의적 재구획이 일어나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다루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충돌하는 가치들을 서로 견주어보며 타협을 하든지 한쪽에 힘을 실어주든지 할 수 있는 정책적 논의의 장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그러한 분리는 자유로운 인간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에 따른 각자의 이해관계로의 통약불가능한 추구로 우리를 이끈다. 이러한 분리의 욕망은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소위 K-자유주의(여기에 이과감성을 곁들인)와 상당부분 관련이 된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예컨대 자유와 권리를 비롯한 법익은 민주사회에서 원칙적으로 불가침한 것이지만 타인의 자유와 권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들은 필연적으로 경합한다. 만약에 특정한 종류의 자유를 누리는 정도가 두 집단 (예컨대 두 성별집단)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라면, 사회의 다양성있는 통합을 위해서 한쪽을 임파워링 시켜서 자유의 총량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조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부분은 정치철학과 정치학에서 많이 논의하는 주제일 것 같은데, 잘 아는 바가 없어 이렇게 약간의 인상을 조심스레 던져두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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