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특히 많이 꾸었고, 지금도 아주 가끔씩 꾸는 꿈 중에 하나는 바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면서 비현실적인 수백 수천 층까지 표시되는 꿈이다. 주로 그 순간에 잠에서 깨게 된다.
(뇌피셜이지만, 잠을 깨게끔 하는 실제 물리적인 움직임이 꿈속 세계에서도 가속도로 작용해서, 그걸 해석하려다 보니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일수도 있지않을까 싶음. 만약 그런거면 꽤 재밌을듯)
한동안 잊고있었던 이러한 레파토리가 오랜만에 다시 생각났던 것은, aespa의 'Girls' 뮤비 첫장면에 딱 그런 장면이 나와서다. 아래에 쓰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걸 보면, 아마 실제로 꿈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렇게 연출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음.
아무튼 내 경우는 그런 꿈에서 나오는 엘리베이터들이 주로 평범하지는 않고, 유리 온실처럼 돼있다거나, 아니면 옛날 아파트에 간혹 있었던것처럼 칙칙하게 창문이 뚫려있어서 구동시스템 내부가 보인다거나 하여간 좀 이상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겪는다. 엘리베이터의 빨간색 디지털숫자판에 숫자가 아닌 이상한 문자가 마구 표기되거나 (참고로 점검을 하거나 합선이 된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인듯하다. 좀 무서울듯), 아니면 통제할 수 없이 위아래 층으로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거나 하는 등 사례를 많이 찾아볼수 있다.
내생각에 사람들이 이런 레파토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실제로 숫자판이 마구 바뀌어서 놀란 경험을 했다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 악몽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거나 하는것 말이다. 그것보다는 생활의 흔적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런 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자체와 거기에 숫자가 표시되는 방식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는 인식 및 정서의 틀과 효과적으로 조응하고 (아니면 강하게 불화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덕분에 우리의 꿈에 빈번하게 archetype으로서 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
엘리베이터 외에도, 내가 꾸는 꿈에는 주로 인물과 스토리가 등장하지 않고 여러가지 공간들이 등장한다. 특히 살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공간들이 실제보다 훨씬 넓어지고 그 특징 또한 과장돼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꿈의 특성상 '내가 보는 한에서만' 존재할 (즉 공간으로서가 아닌 장면으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몇년전에 겪었던 게 몇년 후에도 다시 나오고 하는걸 보면 어느정도는 정합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에 대한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사해보거나 하지는 못했다.
꿈에 나오는 그런 공간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공간들이 아니라 그 구조가 현대적으로 바닥부터 짜올려진 공간들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복잡다단한 플랫폼 및 환승구조를 갖고있는 지하철역 및 열차, 긴 복도가 있는 칙칙한 학교, 폭이 좁지만 수많은 층에 걸쳐있는 수직적인 학원건물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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