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예정인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한승혜 외, 문예출판사 (교보문고 해당 도서 링크))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어릴 때 유명하다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다소 뜬금없고 과도한 성적인 메타포, 그리고 여성 인물 재현 및 신체묘사의 폭력적 방식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곤 했다. 예컨대 인간성의 정수를 표현하거나 그 상실을 개탄하는 진지한 내용을 덤덤하게 다루는 부분에서도, 거의 작가의 포르노그라피적 애호에 가까워보이는 여성묘사가 끼워져 있는 그 언밸런스함 탓에 말하자면 '깬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시적 메타포로 사용될 경우에는 그래도 지체높은 문인들이 쓴 것이고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니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폭력에 대한 리얼리즘적 서술에서의 충분한 이유 없는 성적 묘사는 사회적 비참함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하게 용인되는 것인가보다 했다. 그래도 깬다는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현재에 알게 된 여러가지를 바탕으로 그 당시로 외삽해 보면, 그것들 중에서 꽤 많은 것들을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였구나 싶다. 요악하자면 다른 어떤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메타포 역시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독자에게 보편적 설득력을 갖출수 있다. 그리고 퍽 많은 독자 집단에게서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깎아먹는 요소는 보통은 보편적으로도 실패한 요소이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던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이다.
물론 정신분석학 및 그것에 근거한 문학비평 이론 등에서 성적인 메타포가 중요하고 특수하게 다루어지는 것에는 상당부분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머리속에서 분명히 약간 더 특수하고 뿌리깊은 영역이 관여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들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서술되거나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는 전복적 재구성을 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재구성의 시도들도 원본과 거의 패러렐하게 전개되며 이미 상당부분 정착한 듯하다.
또한 문학작품과 문학비평의 양방향적 상호작용을 감안할 때, 비평론에서 그러한 메타포들에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혹은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개별 문학작품들의 그러한 스타일이 더 강화되었을 수 있다.
본서에서는 개별 유명 문학작품들에 대한 애호를 잃지 않은 채로 이들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외설과의 거리두기를 암묵적으로 선언하는 지체높은(?) 작품들에서도 여성성이 당연하다는 듯이 폭력적으로 다뤄져온 기제를 해명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분들도 유명한 분들이 많이 참여를 했다.
물론 예술작품이 성윤리의 멸균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을 보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보다는, 폭력을 자신의 관점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켜 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치론적으로 더 바람직한 도덕적 태도를 가졌을뿐더러, 작품 감상에 있어서도 더 '충만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에서의 부적절한 여성 묘사에 대한 비판이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폭력 이해에 취약한 성윤리의 멸균실이 아니라, 폭력에 대해 세심하게 다루고 생각해볼 줄 아는 맷집이 있는 사회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 '금기'에 대해 썼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되 폭력에 대한 얘기로 이식하면서 끝맺자. 내가 생각하는 '맷집 있는' 사회는 금기가 일방적으로 위반되어도 (혹은 폭력적 태도가 드러나도) 문제삼을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금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그것이 적절한 방식으로 정교하게 위반될 때에 (혹은 폭력이 충분한 작품 내적 맥락을 가지고 묘사될 때에) 다들 괜찮아하는 사회이다. 만일 이것이 혼동된다면, 작품 속에서 시뮬레이션된 위반과 실제의 위반이 그 구별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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