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수완사회'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의 가치가 다소간에 낮게 평가되거나, 혹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실제로는 작동을 못 하고 유명무실화되어 있는 상황이 많다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완'을 검색해 보면 '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위와 같이 시스템이 부재한 영역에서, 이러한 인간적인 '수완'이 여전히 고평가되며 또한 실제로도 무척 중요한 면이 많은 듯하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이런 '수완사회'의 면모가 비교적 덜한 사회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매일 보고 듣고 생활하는 나라에 대해 굳이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 비교를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도 사실은 언제나 '사람'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충돌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수완사회'의 대표적인 단면은 바로 상업 부문에서 나타난다. 나는 정해진 금액을 내면 정해진 물건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현대 상업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러한 기본적인 상업윤리(?)에 대한 신뢰를 잃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 업종들에서 암묵적으로 돈을 추가로 받거나, 고객들한테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성들인 편지 내지는 선물을 받는 것, 혹은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행동과 관련된 과도한 규칙들을 관행처럼 만들어 둔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서 그렇다.
특히 (1)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며 콘셉트가 선명한 소규모의 공간 (식당, 카페 등) 이나, (2) 이사, 미용, 웨딩, 촬영 및 각종 이벤트 관련 업계 쪽에서 그런 현상들이 많은 것 같다.
(1)의 경우 한때 꽤 화제였던 레터링케이크 가게 운영방침 관련 갈등들도 어찌보면 이것의 연장선일 수 있다. 또한 극히 최근에는 일부 식당들을 시작으로 북미의 팁 문화를 한국에 이식해 오려는 게 아니냐는 논쟁이 생겨 언론에 보도까지 되기도 했다.
이런 게 요즘 실제로 많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데 요새 나한테 많이 들릴 뿐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대중의 구매력 및 소비 욕구가 높아지면서 소비형태가 변화하고,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효과가 커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 아닐까 한다. 사장님들이 공간과 고객경험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는 데에 갈수록 수고를 많이 들이게 되고, 그에 따른 충분히 많은 금전적 보상과 인간적인 존중을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왕이면 가게에서 원하는 공간의 콘셉트나, 업무의 편의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규칙들을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걸 존중하며 지키는 것을 참 재미있고 예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이면 돈만 내면 기분을 상하게 해도 된다는 태도 대신,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직업적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좋은 고객이 되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중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가게 입장에서 보편적인 고객이 지키기 힘든 규칙들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사람 가려 가며' 서비스나 가격을 달리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들도 실제로 존재하다 보니,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매 경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영역들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들에서는 사실 가게 측의 문제보다는, 손님들의 각종 갑질과 민원이 훨씬 많고 심각한 문제이기는 할 테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잘 없는 것 같다. 이상적으로는 두 문제는 경합하는 관계가 아니고, 둘 다 해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돈만 내면 다 된다, 혹은 돈을 못 내겠다 하는 갑질 고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이 잘못한 거다 vs 사장이 잘못한 거다'로 싸우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또한 더 크게 보면, 공론장(?)의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논점이 얼만큼의 비중으로 형성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두 문제가 경합하는 양상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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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위 (2)의 경우, 즉 이사, 미용, 웨딩 및 각종 이벤트 관련 부문에서 대금 지불을 깔끔하지 않게 하는 구조가 생기는 것에 대해 다루어 보자. 사실 이쪽은 (1)의 경우보다 여파가 더 심각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오가는 금액의 액수가 훨씬 크기도 하고, 서비스의 질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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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자의 관점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상업, 특히 서비스업에서 '수완'이 발휘될 여지를 줄이고 시스템적으로만 하자는 주장,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보호 요구가 과도해진다면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얘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가격과 서비스가 표준화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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