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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8일 일요일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 맛집 'Radio Cafe'에 얽힌 역사적, 정치적 이야깃거리

크라쿠프의 야기에우워 대학(Jagiellonian University,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열린 심포지움 "36th Marian Smoluchowski Symposium"에 참여하기 위해 다녀온 이번 폴란드 출장에서,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단순히 출국 항공편 때문에 들른 거라 저녁에 딱 한 끼 먹을 시간만 있었다. 그런데 바르샤바 중앙역 앞에서 랩 동료가 우연히 찾아서 함께 들어간 식당 'Radio Cafe'가 상당히 역사적, 정치적인 이야깃거리가 많은 장소였다. 이 식당이 국내 인터넷에서 바르샤바 맛집으로는 나름 유명함에도,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 한국어로 소개된 자료가 거의 없는 것 같아 한번 소개해 본다.


이 식당은 바르샤바 중앙역 역전앞에서 큰길을 건너면 바로 있는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달리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 푸틴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범상치 않은 식당이구나, 그리고 폴란드 사람들도 현재의 러시아를 커다란 위협으로 느끼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잠깐 건네주는 읽을거리를 보니 이 식당에는 과연 그럴 만한, 그러나 일반론을 넘어선 훨씬 구체적인 배경이 있었다.




RFE(Radio Free Europe)이라고 해서 마치 한국의 대북방송처럼, 서구권 국가들이 냉전시기에 동구권에 송출했던 선전 방송이 있는데, 우리가 들른 식당 Radio Cafe가 다름이 아니라 RFE의 전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폴란드에서 나중에 대통령을 하게 되는 레흐 바웬사도 이 RFE를 들으면서 국제적 대립과 동구권이 놓인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기자를 하실 적에 젊은 시절의 바웬사와 직접 인터뷰를 하셨다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때쯤이 아닐까 한다).


이 식당은 바르샤바의 대학생들과, 최근에 이주해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주로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RFE 직원들이라는 배경에 의해 형성된 그들의 사회적, 국제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는 나름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사진의 일러스트에서도 보이듯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우리가 뚫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지금의 푸틴도 갈수록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하고 전면전까지 일으키면서 주변국들과 서구사회를 위협하고 있기에, 이들에게는 과거의 소련 혹은 그 이상으로 대단히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는 듯했다.

이렇듯 정치적 요소가 있었지만 손님한테 부담을 주는 부분은 없었고 전반적인 음식 맛과 식당 분위기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비록 메인메뉴 나오기 전의 에피타이저 같은 거였긴 하지만, 서양권 문학에서 가족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종종 등장하는 따뜻한 닭고기 수프를 여기서 처음 먹어 보았다.

메인메뉴였던 슈니첼도 커다랗고 맛있게 요리되어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약간 매운맛이 있는 자우어크라우트 (빨간 김치와 비슷한 포지션일텐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전혀 맵지 않은 정도) 도 잘 어울렸다.






식당으로 가는 과정에서 본, 바르샤바 중앙역의 역전앞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두 건물은 바로 삼성과 LG 건물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럴 수밖에 없게끔 위치해 있다. 특히 LG 건물에 쓰여진 future is here 라는 문구는 정말 잘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 시선을 뒤쪽으로 돌리면 소련의 스탈린이 1950년대에 바르샤바에 지어 준, 2020년까지도 폴란드 최고층 건물이었던 문화과학궁전이 있다. 참 웅장한 건물이다.




바르샤바의 복합적인 역사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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