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노이즈 - 상상속의 너 (1995) 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1995)는 신나는 리듬과 인트로의 뚝뚝 끊기는 듯한 독특한 효과음, 그리고 무척 시원시원한 보컬로 잘 알려진 댄스음악이다. 96년생인 내 입장으로서는 90년대 댄스곡들 중에 제목까지 확실히는 모르더라도 들으면 무조건 아는 곡들이 여럿 있는데 이 곡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곡이 아르헨티나에서 1999-2002년 동안 방영된 유명 코미디 쇼 프로그램 'todo x 2 pesos'의 오프닝 장면에 통째로 쓰여서 (유튜브에 찾아보면 방송 중간중간 전환 장면 등에도 조금씩 나온다) 아르헨티나의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매우 귀에 익은 곡이라고 한다 (실제 당시 아르헨티나 방송에 삽입된 영상: 링크).


시원시원하면서 뭔가 재치있는 느낌이 이런 프로그램과 꽤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 중에 한국계가 있어서 이 곡을 알고 삽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축구스타 메시도 아는 곡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고 그냥 하는 얘기인 듯하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해서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여전히 추억삼고 있고, 무슨 곡인지 유튜브에서 찾아보다가 노이즈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하는 걸 보니 신기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3년 11월 7일 화요일

힘든 청년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시각: 위로(慰勞)에서 조롱으로의 전환?

요즈음 40~50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에 우연히 들어가보면, 어린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반동을 지엄하게 비판하면서, '우리는 인구도 많고 돈도 많고 똑똑하며 실력적으로도 프로페셔널한데, 너희는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부족하므로 성장해서도 우리를 이길수 없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글들이 꽤 인기있는 레퍼토리를 차지하고 있다. Facebook 유명인들의 덧글창에서도 많이 보인다.

그런 글들에서는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 확정적인 현재의 청년 세대를 상당히 불쌍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자신들과 같은 세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고 결속력을 제공하면서, 우연히 그 글을 읽게 된 청년 세대들을 열받게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다.

이렇게 감정 유발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지 못하는, 게다가 동정과 비난이 애매하게 섞여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인터넷 게시물 레퍼토리들 여럿이 대단히 의미있는 담론처럼 유통되는 것을 보면 나는 굉장히 괴상하다고 느낀다. 그 이름조차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소위 설거지론 역시 (공격의 구도는 이 글의 예시와 반대 양상이지만) 그 대표적인 예시다.


예전에는 현재의 청년세대가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데 대한 확고한 인식이 지금처럼 널리 자리잡고 부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힘든 것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혹은 '청년들에게 힘든 사회를 물려주어서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식으로 연대 의식을 드러내는 정서가 꽤 많이 보였는데... 글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은 레퍼토리의 유행, 위로(慰勞)에서 조롱으로의 전환이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순전히 통시적인 것 같지는 않고 비중의 문제이지, 언제나 공존해 왔을 것 같기는 하다.


원전 해체산업 주장이나 러-우 전쟁 우크라이나 무능론/책임론 등 다른 맥락에서 이미 몇번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무척 공격적인 말들이나 지극히 어색한 주장도, 본인이 신뢰하는 스피커들에 의해 유통되면서 자신이 불편감을 느끼는 부분을 시원하게 설명해 준다면 '저렇게 말해도 되나보다' 하면서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정보버블이 깨질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런 말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위와 같은 종류의 글들의 유행도 이러한 경향의 한 예시라는 생각이 든다.




캡쳐된 기사의 전문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부분만 보면 노인세대의 공로를 대우하고, 동시에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게 하자는 꽤나 의미있는 담론으로 보인다. 이러한 괜찮은 담론이,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청년세대를 이상하게 후려치는 레퍼토리와 섞여서 이야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3년 11월 2일 목요일

기계의 표현과 내 생각을 정렬하는 포스트휴먼적 체험

내가 아무렇게나 그렸던 그림이 그려 놓고 보니 테리어몬이랑 다루마를 섞은 것처럼 생겼다고 써 놓은 게 과거의 오늘에 뜨길래 (그림 1), 아예 테리어몬과 다루마를 섞은 걸 그려 달라고 무료 AI그림 웹사이트에 세심하게 프롬프트를 넣어 보았다.



당연히 꽤 잘 해 주며 (그림 2), 이것들을 내 그림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듯하다. 섞어 달라고 했을 뿐인데 실제로 그림 1과 비슷한 느낌이 조금씩 엿보이는 걸 봐서, 영 잘못 짚은 건 아닌 것 같아서 공연히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할 때, 즉 기계의 표현과 자신의 생각을 발맞춰 갈 때 사람들이 종종 느끼는 이런 뿌듯함 또한 일종의 포스트휴먼적인(?) 정서로서 인문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닐까 한다.

2021년 12월에 VQGAN+CLIP 기반의 text-to-image generation을 처음 제대로 접하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림 1에서 두 대상을 섞는다는 생각을 포스팅한 게 그 바로 직전쯤인 것 또한 흥미롭다. 그 직전만 해도 이런 걸 기계가 근시일 내에 정말로 잘 해 줄 거라고는 생각을 잘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부터 이런 생각의 경향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쓸만한 생성 ai가 나왔을 때도 서로 전혀 다른 두 대상 사이의 interpolation을 시켜 보면서 내부 표현공간을 탐색해 보는 관심사를 가장 우선적으로 갖게 되었던 게 아닐까 한다.

지금도 딥러닝의 부상은 곧 '의미 엔지니어링'의 대두와 매우 밀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차원 공간상에 임베딩된 피쳐들 혹은 표현들을 조합하는 의미 기계의 출현 말이다.

그림 3, 4는 구글링해서 퍼온 테리어몬과 다루마 이미지.





[음악 추천] john0 - Rebell10n 1n neVeRland

아티스트 겸 프로듀서 john0의 정규앨범 Rebell10n 1n neVeRland가 발매되었습니다. 메탈코어 계열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고 국내 음원 사이트 및 Spotify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3번 트랙 und1SPuTed에 기타솔로 라인작업 및 녹음으로 작게 참여를 했습니다.

melon의 앨범 정보: 링크
타이틀곡 deMol1SH 뮤직비디오 Youtube: 링크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매끄러운 설명을 경계하고 입체성을 직시하자 - 전청조 사기 사건을 보며 (2)

매끄러운 설명의 요구를 경계하고 사태의 입체성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회자되는 사기 사건은 결국 전청조라는 사람이 남현희 감독과 그 가족들을 작정하고 헤집어 놓으면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가족들끼리, 혹은 가족을 넘어 펜싱업계 사람들끼리 서로간에 이간질에 의한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이런 것은 마이너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이 전혀 없다는게 아니지만, 판을 짠 것에 말려들어서 그렇게 된 거면 당연히 제일원인은 전청조한테 있는 것 아닌가.

판단력이 흐려졌고, 계속 의심까지 했음에도 빠져나갈 계기와 용기도 부족했고, 그러면서 주변에 피해를 끼쳤고 이런 것들은 잘잘못을 가려야겠지만, 사기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려 놓는 가해자의 몇마디 언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락도 통제하고 주변 환경까지 통제해 가며 작정하고 달려든 사기꾼한테 말려든 사람의 심리는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의심되긴 했다고 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엄청 큰 선택까지 한 것이 밖에서 보면 너무 이해가 안될거고 나 역시도 그렇지만, 의심을 불식시키는 근거를 계속 제공함과 동시에 물질적 유혹과 인간적으로 조종, 통제하는 능력을 발휘하면 그 안에서 의아함을 갖더라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이 흔히 언급하는 사기의 메커니즘 중에서는, 어설프더라도 속임수 내용을 '믿고 싶어서', 즉 원하는 걸 제공해줘서 믿게 된다는 것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진의도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믿고 싶어서 믿게 된다는게, "거짓말인게 보이지만 나한테 이익이 되니까 믿어야지"라는 명시적인 악한 판단을 한다는게 아니지 않을까? 점점 의심이 안 발휘되게 되면서, 자기자신의 도식이 암시적으로 수정되면서 말려들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사태의 명백한 제일원인인, 작정하고 달려든 가해자가 있는 사기 사건인 이상 위 두 가지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지, 혹은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애초에 처음에 안 당했거나, 아니면 중간에라도 용기를 발휘해서 빠져나갔거나 하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암튼 남현희감독한테는 무언가 이상하다, 깔끔하게 설명이 안된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전청조가 하는 말들이 훨씬 깔끔하고 명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업적 사기꾼의 말은 단 한마디도 귀를 기울여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기꾼 본인이 상황을 통제하면서 사기를 친 입장이니까 당연히 설명이 더 매끄러운 것 아니겠는가.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인, 본인도 잘못이 없지는 않은 어떤 사람의 여러 입체적인 면모에 대해 꼭 '합리적 판단'을 하려 하지 말고 사태 자체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단순명쾌하고 매끄러운 설명만을 원하다 보면 오히려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피해자 찾는 것의 거울쌍인 것 같다.

(뱀발로, 이전 글에서는 사람이란 게 피차 별거 없는걸 너무 심오하고 대단하게 생각할 때에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했는데, 이 글과 얼핏 반대되어 보이지만 모순되지 않는 듯. 단순화/합리화된 이해와, 입체적인 판단중지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오갈 줄 아는 것이 메타적인 합리성인 것 같음)


전청조는 남현희 감독을 위해서 돈을 쓴 것이고 자신은 얻은 게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애초에 왜 재벌3세를 사칭하고, 임신 여부도 속이는 등 온갖 속임수를 써서 접근한 것인가? 명백히 거짓말과 설정놀음으로 판을 깔고 자기 자신한테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그 설정을 현실로 만들려고 한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남 감독을 위한 것이 되며 사람들도 그런 주장에 휘둘리는가.

남현희 감독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물질적인 선물을 남현희 감독도 거절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말은 표면적으로 '깔끔한 설명'은 될수 있을지언정, 전청조라는 가해자 본인이 애초에 판을 깔아서 주변 환경까지 통째로 바꾸어 놓고 조종, 통제하고 한 것은 쏙 빼놓으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아전인수격 발언들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처벌받겠다는 등의 말들은, 사기행위가 이미 들통난 상황에서 누구나 그냥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언설들이고 말이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정이나 이익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일적으로 얽히다 보면 공동 책임이 생기는 부분들,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는 것인데, 바로 그런 지점을 부각해서 '어쨌든 당신도 다 오케이하지 않았나' 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책임회피 수법인 듯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