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러운 설명의 요구를 경계하고 사태의 입체성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회자되는 사기 사건은 결국 전청조라는 사람이 남현희 감독과 그 가족들을 작정하고 헤집어 놓으면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가족들끼리, 혹은 가족을 넘어 펜싱업계 사람들끼리 서로간에 이간질에 의한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이런 것은 마이너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이 전혀 없다는게 아니지만, 판을 짠 것에 말려들어서 그렇게 된 거면 당연히 제일원인은 전청조한테 있는 것 아닌가.
판단력이 흐려졌고, 계속 의심까지 했음에도 빠져나갈 계기와 용기도 부족했고, 그러면서 주변에 피해를 끼쳤고 이런 것들은 잘잘못을 가려야겠지만, 사기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려 놓는 가해자의 몇마디 언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락도 통제하고 주변 환경까지 통제해 가며 작정하고 달려든 사기꾼한테 말려든 사람의 심리는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의심되긴 했다고 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엄청 큰 선택까지 한 것이 밖에서 보면 너무 이해가 안될거고 나 역시도 그렇지만, 의심을 불식시키는 근거를 계속 제공함과 동시에 물질적 유혹과 인간적으로 조종, 통제하는 능력을 발휘하면 그 안에서 의아함을 갖더라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이 흔히 언급하는 사기의 메커니즘 중에서는, 어설프더라도 속임수 내용을 '믿고 싶어서', 즉 원하는 걸 제공해줘서 믿게 된다는 것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진의도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믿고 싶어서 믿게 된다는게, "거짓말인게 보이지만 나한테 이익이 되니까 믿어야지"라는 명시적인 악한 판단을 한다는게 아니지 않을까? 점점 의심이 안 발휘되게 되면서, 자기자신의 도식이 암시적으로 수정되면서 말려들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사태의 명백한 제일원인인, 작정하고 달려든 가해자가 있는 사기 사건인 이상 위 두 가지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지, 혹은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애초에 처음에 안 당했거나, 아니면 중간에라도 용기를 발휘해서 빠져나갔거나 하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암튼 남현희감독한테는 무언가 이상하다, 깔끔하게 설명이 안된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전청조가 하는 말들이 훨씬 깔끔하고 명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업적 사기꾼의 말은 단 한마디도 귀를 기울여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기꾼 본인이 상황을 통제하면서 사기를 친 입장이니까 당연히 설명이 더 매끄러운 것 아니겠는가.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인, 본인도 잘못이 없지는 않은 어떤 사람의 여러 입체적인 면모에 대해 꼭 '합리적 판단'을 하려 하지 말고 사태 자체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단순명쾌하고 매끄러운 설명만을 원하다 보면 오히려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피해자 찾는 것의 거울쌍인 것 같다.
(뱀발로, 이전 글에서는 사람이란 게 피차 별거 없는걸 너무 심오하고 대단하게 생각할 때에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했는데, 이 글과 얼핏 반대되어 보이지만 모순되지 않는 듯. 단순화/합리화된 이해와, 입체적인 판단중지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오갈 줄 아는 것이 메타적인 합리성인 것 같음)
전청조는 남현희 감독을 위해서 돈을 쓴 것이고 자신은 얻은 게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애초에 왜 재벌3세를 사칭하고, 임신 여부도 속이는 등 온갖 속임수를 써서 접근한 것인가? 명백히 거짓말과 설정놀음으로 판을 깔고 자기 자신한테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그 설정을 현실로 만들려고 한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남 감독을 위한 것이 되며 사람들도 그런 주장에 휘둘리는가.
남현희 감독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물질적인 선물을 남현희 감독도 거절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말은 표면적으로 '깔끔한 설명'은 될수 있을지언정, 전청조라는 가해자 본인이 애초에 판을 깔아서 주변 환경까지 통째로 바꾸어 놓고 조종, 통제하고 한 것은 쏙 빼놓으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아전인수격 발언들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처벌받겠다는 등의 말들은, 사기행위가 이미 들통난 상황에서 누구나 그냥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언설들이고 말이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정이나 이익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일적으로 얽히다 보면 공동 책임이 생기는 부분들,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는 것인데, 바로 그런 지점을 부각해서 '어쨌든 당신도 다 오케이하지 않았나' 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책임회피 수법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