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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음악 추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예찬

1994년에 발매되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도입부만큼 세련된 것이 또 있을까?

이 곡의 도입부에서는 스크래치의 역할이 단순한 보조적인 효과음 이상으로 중요한데, 쓰래쉬한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가 자칫 실제 속도에 비해서도 곡을 더 무겁고 둠하다고 느끼게 할수 있으며 리프 자체도 단순함에도, 여기에 턴테이블 스크래치가 적절하게 더해져서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댄서블하게 느껴지는 듯.

특히 첫 보컬 '됐어~' 들어가기 직전의 5초 정도에 스크래치 들어간 질감이 너무 세련되어 있고, 100번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이 구체적인 질감은 라이브 공연 무대에는 잘 없고 원곡 음원 버전에만 있어서, 계속 원곡 음원을 찾아 듣게 된다.


랩댄스뮤직과 헤비메탈 기타리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는 전작의 타이틀곡 '하여가' (1993) 와 비교해 보자면, 곡의 전반적인 컨셉의 혁신성은 하여가가 더 뛰어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디테일이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 드는 하여가에 비해서 세부적인 터치의 센스는 교실이데아가 들을수록 탁월한 듯.

가사 면에서도 하여가는 재밌는 부분들이 있지만 주제의식 자체는 비교적 평범한 데 비해, 교실 이데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그러면서도 분노를 과격한 감정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당대에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맨처음 드럼 필인 들어가기 전에도 짧은 비트박스(?) 같은 게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서태지가 은퇴해 있는 사이에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누메탈 유행을 타고 다시 나온, '울트라맨이야'가 수록된 6집 (2000) 또한 뉴메탈 사운드에서 raw함을 좀 죽이고 서태지 특유의 집착적으로 갈고닦는 스타일을 결합했다 보니 편곡이나 사운드적인 완성도, 세부적인 아이디어는 탁월한 명반이지만, 수록곡들의 전반적인 독창성 면에서는 당대에 이미 피크를 찍어 가고 있던 세계적 뉴메탈 유행에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러한 랩과 메탈의 결합이라는 유행을, 미국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높은 완성도로 선취한 교실 이데아를 그래서 더욱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매일아침 일곱시~' 부터 시작하는 벌스 부분도 사실은 단순하고 둠한 기타리프인데, 드럼이 적절하게 들어가 줘서 거의 컴백홈 급으로 가볍고 복잡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드럼의 중요성이다.

3집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크래쉬랑 같이 엄청 길게 공연한 교실이데아 무대는, 물론 서태지 커리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힐 만한 명 무대이지만 오히려 전통적인 쓰래쉬 느낌으로 편곡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련된 스크래치의 맛은 안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시작 전에 오글거리는 교육 비판 연설(?), 3집 특유의 발해왕자 의상 입고 댄스 하는 것, 그리고 크래쉬한테 '하고 싶은거 다 하시라'고 한 듯한, 전면에 오랫동안 내세워지는 기타연주가 조화를 이룬 아주 좋은 무대다.

이외에도 3집을 요새 다시 탐구하고 있는데,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통일이라는 메시지를 떠나서 송라이팅 면에서는 기존에 내게는 잘 와닿지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서 잘 모르는 곡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들어 보니 오히려 너무 매끄러워서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고, 이것도 들을수록 대단한 완성도를 가진 록 음악인 듯하다.

이 외에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메탈 뮤지컬(?)의 원조랄까), '널 지우려 해' 등등 각 수록곡들이 기타사운드를 통해 한 앨범이라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제각각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영원'이랑 '아이들의 눈으로'는 록 사운드는 아니지만 뭔가 뮤지컬 느낌, 연극적인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는 상극에 있는 '제킬박사와 하이드'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접점을 이루면서 앨범에 새로운 축을 더해준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3집이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듯하다. 시간을 투입해서 들어 보고 이 정도의 장문으로 기록해 볼 가치가 있는 음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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