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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AKIRA (1988) 관람 후기

애니메이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아키라(AKIRA, 1988)가 한국에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직전에야 알게 되어, 12월 22일 밤 시간에 CGV 혜화에서 관람하고 왔다. 영화 상영이 끝나니 11시 10분이 넘어서, 결국 귀갓길에 사당역에서 막차가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익히 알려진 웅장하고 화려한 사이버펑크 배경들뿐 아니라, 뛰어난 작화와 높은 프레임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장면들과 훌륭한 동세 묘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작품의 장면들에서 유래되어 클리셰적으로 쓰이는 연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아키라 하면 모두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달리던 오토바이가 90도 선회하며 급제동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 등의 무기를 슬로우모션으로 (혹은 작중에서 실제로 느려지게 해서) 피하는 장면도 아키라에서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마침내는 매트릭스(1999)의 그 유명한 장면에도 오마주된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주요 설정들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스토리의 전달 방식이 어딘가 뚝뚝 끊기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도 잘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어느새 스토리의 세부보다는 대략적인 얼개만을 기억한 채 장면 연출 위주로만 감상하게 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원래 훨씬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은 만화책이 있고, 그 만화가 연재되는 도중 애니메이션화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만화책의 주요 사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으려고 하면 이렇게 뚝뚝 끊기는 느낌이 생기고, 그렇다고 특정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 내적 완결성과 박진감은 확보하지만 원작 팬들이 아쉬워할 뿐더러 일반 관객 입장에서도 뭔가 스펙타클이 부족하다고 느낄 공산이 생긴다 (후자의 예시로는 내 인생 만화 중에 하나인 BLAME! (브레임!)을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있다).

만화책의 애니메이션화에 따르는 위와 같은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박진감 있고 활달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아득해지고 멘탈해지는,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들이 세심하지 않은 방식으로 파괴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서사 전개는 여전히 내 취향과는 다소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거대한 자연 재난을 빈번하게 겪는,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를 신화화, 인격화해서라도 집단적으로 process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관념이 반영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또한, 웅장하고 커다란 이야기가 결국 한 소년의 심리적 문제로 귀결되는 건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 이전에 아키라에서도 (그리고 아마도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경로로 주워들어 이름만 알거나, 주요 장면을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고 정작 제대로 감상을 안 해 본 유명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약 2년 전쯤부터는 이들을 엑셀 파일에 리스트업해 두고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니,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감상하고 기록을 남겨 보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듯싶다. 이번 아키라처럼 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영화가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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