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식물이나 사물에 푹 빠져서 그걸 직접 보고 싶어하거나 비슷한 걸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들의 욕구,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들어 주고 체험시켜 주려는 양육자의 노력을 볼 때면 나는 마음 속 한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독특한 개별 사물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충족시켜 가는 과정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허용되는 것으로서,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욕구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신기하고 인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욕구가 너무 잘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것에 빠졌지 하고 다소 이해가 안 되거나, 약간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그런 신기함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여되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유발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인공물 중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어린이의 마음을 끌어당길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기에 뭔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이렇게 주변에 풍랑을 일으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인간성의 정수가 담겨 있는 욕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각자의 관심사를 형성해나가며 고유한 '소우주'(microcosm)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당이 안 되어서(?)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이러한 충동(혹은 이러한 충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정능력)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인간사의 여러 위대한 도전들과 경악할 천태만상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내 것으로 만든다'라는 건 그냥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쓰는 말인데, 소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신기함의 순간을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신기하다는 감정의 정체와, 애초에 호기심이 유발된 이유를 캐치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이를 좀 더 멋있는 말로 하자면 "박물학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조금 더 단순하게, 꼭 이런 종류의 충동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어떤 욕구를 양육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건없이 이해하려고 해 주고, 잘 대응해 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랑과 이해심이 있어야 되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따뜻하고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욕구들에 비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결부될 때가 나는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나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사물과 현상을 애호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굉장히 강하고, 그것들을 별 의미없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철덕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심적 경향은 철덕 및 각종 수집광들과도 뭔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들에게도 종종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식을 즐길 때에도 혀에 느껴지는 맛 때문에 먹고 싶어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이라는 사물 자체에 호기심이 들고 마음이 이끌려서 애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디저트 종류가 주로 그렇다. 음식을 예로 드니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가 소유 및 소비 욕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지는 듯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기억도 있다. 가족들이 나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여주신 경험은 일일이 기억은 안 나더라도 꽤 많이 있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아래의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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