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추진하는 일들의 귀결은, 지금까지 빚과 지출을 늘리며 대내, 대외적으로 확장되어온 미 연방을 어떤 의미에서 한 번 청산하는 것과, 더욱 노골적인 부자들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인 듯하다. 큰 정부를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어떤 평균적 의지(별로 정합적으로 작동가능한것 같지는 않은)가 이런 결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인데, 그 의지를 표명하는 개인들조차 지금의 이런 사태까지 속속들이 예상하거나 의도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경제 및 외교통상 관련 조치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언론, 시민, 외국인들의 비판을 막고, 기후, 다양성 등의 의제를 시민운동과 학술연구 양쪽에서 완전히 죽여놓다시피 하는 걸 보면 순식간에 유럽보다 중·러에 가까운 나라가 된게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게 회복이 가능할까?
특히 학계조차 컷을 당하고 탄압을 받고 있는걸 보니 참으로 무서운 일인 것 같다. 안그래도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태계가 돌아갈 만큼의 볼륨은 아직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이 지극히 중요할 텐데... 이는 한국인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한국이건 세계이건, 왜 내가 어렸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좋다가 하필 내가 커리어를 꾸려나가고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될 시기부터 이렇게 흉흉하게 되는가를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이것은 어릴 때의 순진함에 의한 착각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가 바뀌고 있는 것임이 명백하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데,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차라리 한국 내에서 가능한 커리어패스가 충분히 있다면 몸도 편하고 좋을 텐데, 세계를 유랑해야 하는 한국 과학도의 삶이란... 과학도들은 미국유학에 대한 흔한 한국적 관념처럼 '급'을 높이려는 욕심 때문에 해외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초과학계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디폴트로 굉장히 국제화되어 있는데다, 한국인 연구자들의 경우 해외 아니면 커리어패스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몸이 힘들고 정착이 늦어짐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돌아다니게 되는 것에 가깝다. 이를 알아야 한다.
내가 박사 졸업을 할 시점에도 미국의 상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말년 만화에서 유래된 유행어인 '명예로운 죽음'처럼 '명예로운 미국못감(?)'을 하고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자 시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다시 군비증강과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는 지금의 국제정세로 보면 과연 유럽 혹은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전할지... 그 이전에 한국은 멀쩡할지?
앞으로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대학이랑 연구소의 자리들도 점점 줄어들 텐데, 내 실력을 보니까 나는 개인적인 안정성을 포기한다면 평범하게 자리를 지키는 연구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늦지 않은 나이에 학계에 정규직으로 정착이 가능할 정도로 좋은 연구 업적을 쌓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팔자만 생각한다면, '명예로운 학계포기(?)'와 함께 빠른 취업을 생각하고 과학은 애호가로만 남는 것이 사실 제일 좋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수학, 물리학 하는 학생들 중에 일부 자존심 세고 소명의식 높은 부류는 취업하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난 공과대학 출신이다 보니 이런 면에 있어서는 생각이 유연한 편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까지는 없다. 사실 그럴 입장 자체가 못되는 게, 요새 박사 취업도 굉장히 어렵고 (신진 기업들뿐 아니라 전통의 삼성만 봐도... 과거 전기전자/물리학쪽 박사 삼성취업은 과장 많이 섞어서 럭키 티맥스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작년엔 박사 채용이 거의 없었고 특히 하반기 삼전은 박사채용 0명이었다는 말이 있음), 실제 혁신은 인더스트리에서 훨씬 많이 일어나니까 말이다.
후과를 생각하면 사실 이런 글도 올리면 안 되기는 할테다. 과학도로서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도 참 갑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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