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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8일 토요일

윤석열 구속취소를 보며: 직무정지의 실효성,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관 개편 제안

다시 힘든 시간을 마주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따른 직무 정지 이후로도 대통령실은 작동하고 있으며 회의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여도 행정관료 조직을 동원한 통상적인 범위의 '나랏일'을 못 하는 것뿐이지, 훨씬 정무적인 보좌의 성격을 갖는 대통령비서실 고위 인사들이랑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접촉해서 정치적, 비정치적, 법적, 비법적 헛공작을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직무정지 때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대통령비서실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음. 이미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신뢰 배반의 끝을 한번 본 사람이라, 안 되더라도 쓸 것 같긴 하지만). 그 사람들 다 관료적/자기보신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한몸인 사람들이지 않나. 그나마 특활비 삭감 해놔서 좀 제한되려나.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이 정상적인 헌정의 틀 내에서 나랏일을 잘 했냐 못 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을 한참 넘어가서, 아예 다른 헌법기관을 무력으로 건드리면서 직접 헌정위기를 초래한 상황이라는 점을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사람이 직무정지든 아니든 석방된 것 자체가 너무 걱정이 된다.

나랏일은 대행한테 맡기고 정국 대응 구상할 시간만 엄청 많은 상태인 거니까 나랏일 안 해도 되는 게 오히려 꿀이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석방돼 있는 사람이니까 사실은 나랏일에도 그의 의중이 작용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대통령이 최측근 동원해서 주요 라인 장악한 상태에서 선을 넘으려면 거하게 넘을 수 있다는 게 드러나 버리고, 상대진영이나 일부 헌법기관을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적대시하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 직무정지조차 그 실효성에 한계가 크다고 느껴져서 솔직히 절망감이 크다. 나는 대통령제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제대로된 민주국가에 대통령중심제가 은근히 드물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을 정도다. 지금은 정말 exceptional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폭주했을 때 어떻게 막을 것인지 앞으로 국가적으로 많은 고민과 디테일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고, 그 핵심으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통치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일인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 등을 안 한다면) 대통령 직속기관 개편을 통한 권력의 분산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하는 대통령실과 국가 행정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의 느슨한 상상일 뿐으로, 불가능하거나 말이 안되는 얘기가 많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지난번에도 썼듯이, 경호처는 정무적 성격을 빼고 철저히 대통령 개인의 물리적 안전을 위해 경호하는 조직으로 다시 축소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경호처장(혹은 경호실장)에 최측근이 임명되고 경호처가 정치화되면서 헌정위기가 생긴 게 이번을 포함해서 벌써 몇번째인가. 이미 김영삼 정부나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이전 정부들에서 몇 번 했던 것처럼, 그야말로 '원래부터 직업이 경호원인' 사람을 공채를 하거나, 경호처에서 내부승진으로 발탁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정착시켜야 될 듯하다.

대통령비서실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군사 안보 관련된 기능이 대통령비서실이 아닌 국가안보실, 국정원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일단 다행이지만, 대통령의 개인 품위유지나 일정 관련된 '비서' 기능과 정치/경제/정책현안에 대한 보좌기능은 대통령비서실이라는 조직 아래에 여전히 하나로 합쳐져 있는데, 이것도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까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정부에서도 대통령비서실 밑에 '대통령비서실장'이랑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둘다 장관급으로 동등하게 이원화되어 있기는 하다. 그럴거면 아예 실을 나눠서 더 확실하게 분리하면 어떻냐는것.

그럼으로써 위에 경호처장에 대해 말한 것처럼, 대통령비서실장도 정무적 최측근의 성격을 제거하고 그야말로 생활, 품위유지, 일정 등과 관련된 비서 역할 위주로만 하게 하는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더 나아가서, 홍보, 정무, 민정수석실의 역할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정책실은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일을 할지를 보좌해서,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현안관련 국정이 돌아가게 한다던지.

물론 국가원수라는 위치상 개인적인 보좌와 업무 관련 보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고, 비서라는 건 그 모든 걸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자리인지라, 비서실을 위처럼 쪼개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할수도 있다. 동의가 되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너무 강한 권한을 생각하면 불편이 따르더라도 이런 식으로 분산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왜 대통령 직속기관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윤석열 당선되고 나서 MB 때랑 똑같이 (심지어 이동관은 그 때랑 아예 같은 사람임..) 문제 많은 인사들을 방송 쪽에 등용해서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사들을 괴롭히는 꼴을 봤으니... 보다 독립성을 기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현재진행형으로 지극히 위험한 인물이 돼버린 상황인데, 구속기간에 대한 지극히 이례적인 해석까지 근거로 들면서 구속취소 판결을 한 재판부도 이 점에서는 너무 안이하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수사권 갈등이나 서부지법 영장청구에 대한 논쟁이 많은데, 이미 다른 재판부에서 문제없다고 판단이 이뤄진 부분들임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권 관련된 게 상급심 등에서 문제가 돼서 사건이 파기환송되거나 재심될 수 있으니 더 정리가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입장은 이해가 되는 면도 없지는 않다. 결국 이 부분은 내란죄 수사를 제외해 놓은 이상한 공수처법과, 출범 이후 수사기관 간에 수사권 관련 세부사항의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던 상황의 원죄라고밖에... 2년 반 만에 고위공직자의 내란죄 혐의가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냐만 말이다.

아무튼 또 다시 너무 힘든 시간일듯하다. 국민 앞에 군을 동원해서 대치시킨 반헌법적 계엄을 목도한 것 자체가 충격인데, 집권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광장정치에 고무돼서 기세등등한 바람에, 적당히(?)하지를 못하고 옹호해선 안 될 것까지 옹호해 버리고 있다. 현실적 정치여건 상 정당해산심판까지는 아마 하기 어렵겠지만, 일부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정당해산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강조했지만, 지금 상황이 그냥 고위직들끼리 싸움 좀 붙은 정치 갈등이나 흔한 비리 정도가 아닌, 헌정 위기 상황이며 대통령이 초 중대 범죄혐의자라는 점을 다들 잊지 않아야 하겠다.

여론 봐 가면서 광장정치에 영합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데 여당 정치인들이 자기 발언의 무게를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통령이 석방까지 돼서 활동이 자유로워졌으니, 탄핵심판에서 설령 파면 선고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너무너무 안 좋은 영향이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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