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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1일 일요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인면조의 밈화가 가지는 함의에 대하여

이미지: 사람 1명, 밤

'엄숙함'은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처럼 톱니바퀴 돌아가듯 설계된 서사로부터 정교하게 도출된다. 서사에서 약간의 허점이 발견된다면 엄숙함은 즉시 그 힘을 잃는다. 이러한 엄숙함은 텍스트 시대의 가치이다. 텍스트는 정해진 흐름대로 선형적으로 독해된다.
반대로, '웃음'은 여러 엄숙한 서사의 구성요소들을 원래 서사의 맥락으로부터 최대한 분리해 내어 자유롭게 재조합하는 데에서 온다. 이러한 웃음은 탈텍스트 시대, 이미지 시대의 특성에 매우 잘 부합하는 가치이다. 디지털 매체의 발전은 사이버 세계를 구성했고, 사이버 세계 속 이미지들의 바다에서 우리는 부유하며 유희한다.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개최국의 역사 상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했던 수많은 상징들이 동시에 보여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적 단절로 인해 단일한 거대서사를 구성하기 어려운 한국과 같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수많은 역사적 상징들을 탈맥락적으로 재조합하여 동시에 보여주면서 예의 엄숙함을 연출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아슬아슬한' 시도이다. 이러한 재조합의 방식은 그 본질상 엄숙함보다는 웃음 쪽에 가깝게 닿아 있으며, 따라서 약간의 '깨는' 점만 있더라도 바로 웃음으로 향하게 된다. 엄숙함을 의도한 상황에서 웃음이 유발된다면 이 웃음은 비웃음이다.

  그러나 만약 애초에 엄숙함이 아닌 웃음을 의도한 것이라면, 그 웃음은 즐거움의 웃음이 된다. 예컨대 드라마의 한 장면인 '다시는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가 과도한 국뽕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반면, 네티즌들이 박지성, 김연아, 싸이, 이세돌 등을 마구 합성하여 장난식으로 만드는 '국조디아'(국뽕+엑조디아) 짤은 진심으로 즐겁게 생산되고 소비된다(그리고 앞과 같은 진지한 국뽕에 대한 풍자의 의미마저 획득한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의 총감독인 송승환은 유쾌한 비언어극 '난타'를 기획한 사람이다. 이러한 그가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기괴한 비주얼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면조를 어떤 의도로 삽입했을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의도와 관계없이, 개회식 중에 갑자기 등장한 인면조의 기괴한 도상을 본 사람들은 그것을 사이버 세계 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한껏 웃으며 패러디하는, 유쾌한 방식으로 소비했다. 내가 보기에 개회식 자체에 대한 평가는 잠시 미뤄두더라도, 네티즌들의 이러한 소비 방식은 어쨌든 '긍정적인 의미로 한국적'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은 특정 국가가 문화의 '내용'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 상징들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국가의 어떤 역사적 상징이든지 디지털적인 인프라 위에서 그 엄숙한 아우라가 파괴되고 무한히 마음대로 재조합되며 유쾌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토양, 즉 문화의 '형식'이 아닐까. 각종 문화제에서도 대중의 위와 같은 특성을 고려하여, 자칫하면 웃겨지는 아슬아슬한 엄숙함보다는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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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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