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인생맛집 같은 것처럼, 뭔가를 생각하다가 때로는 '이건 진짜 내 인생주제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들이 여기서 종합되어 다뤄질 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이 마구 전개되고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인생주제라고 확신하는 관심사가 지난 1년만 해도 벌써 몇 번씩이나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주 넓게 보자면 '합리성'에 대한 관심인 것 같긴 하지만, 딱히 체계적이지 않고 그냥 산발적인 것들이므로 단순하게 요약되긴 어렵다.
그럴 때마다 카톡 나와의 채팅에다 써 놨던 글 조각들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뇌를 그 때의 모드로 되돌려 보고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불가능해지는 것이 대단히 아쉽다.
사실 중학교 때는 인생주제라고 일관되게 생각한 게 "물리를 계속 공부하면서도 '일반물리적 센스'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일반물리적 센스라는 것은 그냥 내가 만든 말인데, 지금은 그 때 생각했던 일반물리적 센스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시절 저 강령을 따르면서 써놓은 글 조각들을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 당시로 되돌아가서 생각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치 남이 써 놓은 글을 읽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때 생각했던 '일반물리적 센스'란, 물리적 세계를 이루는 원자들과 그 상호작용을 나름대로 '내면화'함으로써, 추상화된 개념들과 수학적 도구를 쓰면서도 계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수식에만 매몰되면서 현상을 못 보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함이었던 것이다. 그걸 일반물리적 센스라고 불렀던 것은 그냥 내가 그걸 일반물리에서 그나마 잘 해서 그랬을 것이고.
물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서 물리를 공부하면서, 저것이 아주 특별한 관심사가 아니라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공부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 '충분히'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는 것도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수하지 않고 일반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면 거기가 내 공부의 한계인 것이겠다. 그래서 '일반물리적 센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과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학도 아닌', 중간쯤에 있는 분야를 정초해 보는 것이 나의 인생주제라고 생각했다. 저것 역시 적절한 단어를 몰라서 그냥 내가 만든 표현인데, (물리적 세계가 아닌) 인간 세상을 문학으로만 다루는 것은 명백히 불충분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발전해서 모든 걸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며 모든 뇌피셜을 완전히 중단하기도 아쉬우니까, 그 중간 정도 위치에서 나름대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만든 표현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 자체를 배우는 걸 넘어 그 과학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 사회 내지는 인간관계에 대해 마치 과학처럼 나름대로 개념을 정의하고 이론을 세우는 것들, 그리고 국어 시간에 배우는 문학 작품들의 형식에서 느껴지는 형용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좀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것들 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첫번째와 세번째는 그냥 교과 공부를 하면서 든 생각이고, 두번째는 내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자책하면서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다 보니 든 생각이다.
그런데 웬걸, 대학에 와 보니 이런 분야가 이미 (너무도 당연한 듯이) 있었고 그것은 다름아닌 '철학'이었다. 위 문단의 세 가지 관심사는 각각 과학철학, 사회철학, 미학 정도가 되겠다. 중학교 때는 철학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도덕 시간에 단편적으로만 배우면서 부정적인 인상으로 접했고(뇌피셜로 훈계하는 느낌이라), 고등학교 때는 철학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그 이름도 익숙한 '철학'이 정확히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것일 줄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관심사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철학이란 말 자체는 많이 보았지만 대부분 그냥 물리에서의 어떤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말하는 것이었고,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대해서는 어린시절 모친께서 말해 준 '생각에 대한 학문'이라는 말만을 기억한 채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기에, 바로 그게 철학이라는 걸 알고 대단히 반가웠다. 철학 중에서도 여러 가지 우연적인 이유로 미학에 흥미를 느껴서 미학과를 부전공하게 되었고, 돌아보니 마치 필연이자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몇몇 이유가 있지만 필연이란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잘 맞는 것 같아서 계속 하고 있다.
(참고로 어린시절 모친께서 물리에 대해서는 '힘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문리대를 나오셨는데 발음 때문에 당시에 잠깐 동안은 물리를 전공했다는 줄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았었다. 그 당시에 사회과 교사이신데 물리를 전공했다고 하는 것의 이상함을 아주 막연하게밖에 못 느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서 이론 물리학자가 될 거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철학적 성향에는 위에서 말한 중학교 시절의 '일반물리적 센스'가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나는 뭔가를 과도하게 체계화하여 사변적으로 성을 쌓는 것, 상징과 은유, 서사를 오용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온갖 분야를 하나로 합치고 거슬러 올라가서 통합된 진리, 내지는 궁극인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냉소한다. 따라서 로고스중심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그걸 까면서 나온 상징과 은유, 내러티브에 과잉되게 의존하는 현대철학의 일부 사조에는 더욱 비판적이다. 철저하게 개별 문제의 성격에 따라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성향은 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학교 시절에 추구했던 '일반물리적 센스'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최근에 생각하는 '합리성'과도 통해 있다. 흔히 이성이라고 생각되던 오만한 사변을 철폐하되, 흔히 이성의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으로 여겨지는 상징, 은유, 서사의 오용 (양적 남용이 아닌 질적 오용이다) 역시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상으로 서사를 경계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겪었던 여러가지 생각의 변화를 자의적으로 엮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보았다. 서사를 경계하면서도 결국 서사를 만들어 내고야 마는 이러한 습관이 생긴 건, 내가 했던 생각들이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집착에 의해 사후적으로 어떤 '큰 그림'을 뒤늦게 요청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이것이 나의 지난 몇 년에 대한 최선의 요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생각이 바뀌어 다르게 요약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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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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