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교수 딸의 연구참여는 고교에서 대학 등의 기관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었나본데, 그걸 각계의 지위 가진 학부형들이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한 것이 상당히 놀랍다. 아무 학교에서나 하지 못할,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발상이고 공공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 위화감과 교육 공공성의 문제를 넘어 지금의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조국 후보자에게 직접적으로 문제제기할 만한 것은 이 프로그램 자체라기보다는, 무리하게 1저자를 받았다는 것일테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 대학교수가 개인적으로 알음알음 진행한 이러한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이건 고교 입장에서나 '프로그램'이었지, 사실 대학 입장에서는 학교의 자원을 자기도 모르게 고교생 개인 스펙을 위해 나눠준 셈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이런 프로그램을 교수 개인이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공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사전에 보고받도록 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단국대학교의 입장은 꽤나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하여, '우수한 학생 있으면 끼워서 논문 쓸 수 있지' 이런 예외적인(?) 느낌이 아니라, 상시적, 공개적으로 운영되는 쪽으로 대학 차원의 프로그램이 아예 마련되어 버렸으면 한다. 그러면 예컨대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던지 하는 공익적 목적도 생길 수 있을테고 말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부당하게 할 사람들은 언제나 생길 것이고, 지역/학군 등에 따른 위화감이 빠르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학연계 프로그램이 최소한의 공적 가치라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이쪽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더 나아가서 수시입학 제도에 대한 뿌리깊은 국민적 불신을 완화하는 것과도 관련될 것 같다.
조국교수와 같이 사회적 입지를 가진 민주/진보 인사들에게서 발생하는, 정치적 소신과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자 할 때 받는 국민적 요구들과, 자녀교육 및 개인의 경제적 풍요를 위해 해 온 일들 사이의 충돌이 그 자체로 뭔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여기서 비극적이라는 건 당연히 감정적으로 슬프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모순이 누군가에게 발생하도록 사회적 구조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의 첨단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비난을 피하기 어렵고 말이다.
물론 위화감 그 자체만으로는 특정한 이윤 추구 행적이 '부당하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길 테니,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활발하게 필요할테다.
나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찜찜한 선택의 순간에 사회적 소신에 따라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도덕적인 '성자'와 같은 공인들이 많아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그 자체로야 훌륭한 일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선택지가 그들에게 여전히 주어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는 환경, 그리고 설령 눈에 보이더라도 감시 및 견제 장치가 많아서 비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 주류집단에는 그러한 견제 장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 오던 사람들이 공직에 오르려 할 때 언제나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순 없이 정의로움을 유지하려면, '안' 하기보다는 '못' 하는 방향밖엔 없는 것이다.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국면에서 보이듯이 이런 쪽으로 개혁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그 문제의 당사자들이고(...), 그들이 공직에 나서고자 할 때 언제나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어 실망감을 안기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신뢰를 형성하고 바꿔갈 수 있을지, 찜찜하고 부당한 일들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참 막막하고 답답하긴 하다.
더불어, 이런 구조를 비판하는 청년들의 언어가 등장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주로 특정한 세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구조의 첨단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기성 보수 언론이 그들에게 부여한 '386 세대'와 같은 단어는 '내 언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오히려 그 단어를 사용할수록 시계가 거꾸로 돌아갈 거라는 불안감이 든다. 민주/진보 인사 개인을 비판하되, 그 사람들 개인이 위선적 운동권이라는 식의 비판에 머무르기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된 요인도 함께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장기적인 해법이 등장하면 현재의 보수언론이 좋아할까? 그러지 않으리라 본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