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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수요일

전염된 윤리적 둔감성: 상대편의 비인격화로부터

코로나19 시국과 관련해서 지자체장 대응을 비판하는 것이나, 무슨무슨 담당 공무원이 신천지였더라, 진짜 뭐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가능하며 유의미하다. 그런데, 대구라는 지역 자체를 신천지에 점령된 곳이라는 식으로 희화화하는 분위기를 은근히 내비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본인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도 없다. 그렇지만, 투표 성향이 본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막말에 대한 '필터'가 묘하게 무뎌지고, 굳이 없어도 될 조롱의 뉘앙스가 섞여 들어가는 그런 거, 확실히 있다.

심지어 대구경북 지역이 투표를 잘못 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유명 작가, 총선 예비후보 등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보수 우세 지역이라서 욕했다는 건 오해이며 지자체장 한 명에 대한 이야기였다라고 해명하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었다면 그런 식으로 오해(오해라고 해 두겠다)를 살 표현은 절대로 안 나오지 않았을까.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줄 수 있는 오해의 여지에 누구보다 신경써야 하고 또한 실제로 그래 왔을 사람들이 바로 작가, 정치인 아닌가. 그런데도 그렇다.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서 있는 대구의 모습을 보도하는 기사에도, 중앙정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다면서 조롱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특정 지역을 중앙정부와 분리해서 보는 건 반대쪽에서 쓰던 악의적인 프레임인데, 그새 배운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인간적인 격려와 위로의 효과를 갖는 그런 기사를 조롱하지 않으면서도, 정부여당 때리기에 나선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조국 교수 논란을 겪으면서, 존경해 온 분들, 나랑 비슷한 진영이라고 여겨 온 분들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다. 안 그래도 전염병 사태와 인프라 부족으로 고통받는데, 위로와 격려, 지원은커녕 그런 식의 말들을 들으면 그야말로 뽑으려다가도 안 뽑고 싶겠다.

해도 될 말일지 아닐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의외로 다들 알고 있다. 요새는 성희롱, 여성혐오 등 문제있는 발언을 할 때도 '요새 이런 말 하면 큰일난다던데'로 운을 띄운다고 하지 않는가. 다들 아는 것이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도의에 어긋나는 사고와 언동을 제발 자제해야 한다. 투표를 잘 하라고 훈계할 시간에,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찾아 실천하고,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길 때 보건, 공공의료, 방역이 잘 돌아가기 위해 뭐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개발해야 한다.

물론 특정 지역 차별에 편승하며, 없애기는커녕 재생산해 온 어떤 다른 정당에서는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호남에 차출시키겠다는 이야기도 나온 것을 보면, 상대방 진영을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묘한 재미까지 느껴 버리는 것은 한쪽만의 일이 아니긴 한가보다. '선택적 공감능력'이라는 말은 진보진영을 비판한답시고 오남용돼온 말인데다 약자 혐오의 맥락도 있어서 아주 싫어한다. 근데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머리에서 자꾸만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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