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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4일 금요일

정치적 의도라는 낙인에 급진적으로 맞서자

정치인에 의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폭로를 총선 이후에 하기로 했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결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러지 않고 당시에 폭로했다고 해도 그것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결정일 수 있었어야 할 것이다. 말들과 생각들의 묘한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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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1일 화요일

꿈에서의 무력한 불쾌감

내가 기억하는 꿈들은 주로 장면 없이 설정만 주어지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일상적인 꿈이거나, 아니면 서사 없이 구조화된 공간들만 나오는 꿈이다. 그 중 전자의 하나로서 종종 나오는 레파토리는 수업들 중 한 개의 존재 자체를 계속 잊어버려서 아 또못갔네.... 하는 그런 내용이다. 심지어 은근히 있을법한 일이고 뭔가 실제 학기랑 연동돼서 꿈이 계속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꿈을 생각하다 보면 현실이랑 잘 분간도 안가고 마음 한구석에 슬픈 느낌이 생긴다.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정작 계속 잊어버려서 늘 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으면서 파국을 예고하는, 무력하고 일상적인 불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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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6일 목요일

21대 총선에 대한 단상

1. 선거 제도 개편에 따른 혼란에 더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들이 많이 나와서 솔직히 말하면 의욕이 들지 않는 선거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정당투표는 결국 더불어시민당에 했다.

당에서 육성해온 인사들이 아닌, 외부 군소정당이나 시민사회 인사들에 대해서는 검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을 앞쪽 순번에 배치시켜 놓은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시민당에 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표를 주지 않아도 그 분들은 어차피 되실 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핵융합 과학자 출신의 이경수 후보를 포함해서, 내가 좋게 봤던 뒤쪽 순번 인사들의 당선을 돕겠다는 심정으로 투표했다. 방송의 예측치를 보면 대다수가 16, 17번에서 끊길 것으로 예상하는데, 조금 더 파이팅해서 18번인 이경수 후보가 꼭 당선되면 좋겠다. 보다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 투표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 문제가 내게 어쩔 수 없이 크게 다가왔다.


2. 사실 현재 주민등록된 관악갑 쪽 판세보다는, 본가 쪽 동네인 강동, 송파 쪽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당선여부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자취하기 전 지역구였던 송파병의 남인순 의원, 치과의사이자 변호사인 강남갑 전현희 의원, 명성교회 영향력 하에서도 힘들게 노력 많이 한 진선미 의원 등 좋게 봤던 의원들이 많다. 이번에도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현재 개표 상황을 보면 진선미 의원과 전현희 의원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3. 민주당과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을 동일시하고 동시에 적대하는 소위 청년극우의 탄생은 여전히 우려되는 점이다. 특히 국민의당 4번 후보가 당선될 경우 안티페미 청년극우의 중앙 정계 진출은 세간의 비웃음과 달리 매우 이른 시점에 이뤄지는 셈이다.

4. 내가 해 본 첫 투표는 20대 총선이었다. 비록 내가 특정 진영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난번 총학생회 선거(...)를 제외하면 '진 선거'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굳이 따지면 '이긴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한 느낌이 있기는 하다.

결국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선거보다는, 20대 총선과 박근혜 탄핵 이후 혼란상이 정리되고 힘의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더 강성, 퇴행적인 측면 역시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선거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우려와 다르게, 진영을 떠나 미래적인 가치가 자리잡을 공간이 생기는 4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당에서도 역대급으로 많은 의석을 가졌으니, 좀 여유를 가지고 그런 공간을 열어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사실 선의를 기대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며, 들어 줄 수밖에 없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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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수요일

시민의식을 박탈하는 엘리트교육은 귀족주의일 뿐이다

트위터에서 고소득층이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플로우가 있었다고 한다. 학원비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중고등학생들인 듯한데, 학원비가 월 수백만원씩 나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고소득층도 사실 힘들다'의 근거가 되나? 어떻게든 그럴 여건이 되니까 그렇게 보내는 것 아닌가. 차라리 세금 많이 떼어 간다는 얘기를 하면 정치적 견해로서 존중이 될 텐데, 학원에서 내용적으로 우수한 학습컨텐츠는 제공받겠지만, 그러한 환경이 학생들로 하여금 필수적인 시민적 덕목을 결여하게 하고 오히려 시야를 좁히는 면이 있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학원과 특목고를 중심으로 한 기형적 엘리트교육 환경에서 학생들이 듣는 이야기들과 서로 주고받는 얘기들이,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는 면이 꽤 있었다. 특히 학부모들도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들이는데' 류의 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말들이 문제의식 없이 유통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다. 동질적인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의식을 체계적으로 박탈시키는 엘리트교육은 21세기 귀족주의에 불과하다.

더 문제적인 것은 중고등학생들의 트위터뿐 아니라 서울대 대나무숲에도 이러한 종류의 개복치 글(?)이 참 많다는 사실이다. 9, 10분위 학생이 70% 이상이라고 하던데 그러한 환경과 결부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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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4일 토요일

코로나19 시국의 교육: 과감한 선택으로 무리한 운영을 예방해야

코로나19 시국에 교육의 현장에서 종종 보이는 것은 오프라인 강의를 최대한 모방하려는 운영의 경향이다. 그러나 이는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어렵고, 여러가지 무리한 일들이 따를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이버강의의 이점을 전면적으로 살리도록 준비하기엔 이번 사태가 지나치게 급작스러워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강의의 운영방침은 준비 부족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라기보다는, 굳이 없었어도 될 다소 인위적인 제한사항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수업시간 외에는 각종 자료(수업 영상, 강의ppt 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출석률과 참여도를 확보하기 위함일테다. 그러나 이는 강의를 몇 번씩이라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이버강의의 가장 큰 이점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물론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강의가 학생들에게 배포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사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수업시간에 해야 하는 일은 공지 전달과 질의응답 위주이므로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글로 올리는 식으로 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소 정제되지 않은 강의라도 다시 들을 수 있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학생들에게 더 낫다는 면도 분명히 있다.

또한 강의자의 얼굴이 나오도록 하는 것, 그리고 출석체크 및 집중 여부 확인을 위해 학생들의 얼굴이 나오도록 하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학생들이 집에서 부스스한 상태로도 마음껏 수강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이버강의의 이점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현 시국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또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무단으로 저장 유포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도 여러 방면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집중하는지 여부의 확인을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뿐더러, 사이버강의에서 그걸 반드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관건은 강의자의 수강생들에 대한 통제력이다. 그 통제력이 사이버강의에서도 현장 강의 수준으로 확보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가지고 현장 강의의 방식을 사이버강의에 억지로 이식하려다 보면 여러가지 무리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왕 사이버강의를 하게 된 바, 현장 강의와의 어쩔 수 없는 차이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매체의 이점을 살려 강의컨텐츠가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자원이 많이 드는 적극적인 실험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굳이 없어도 되는 제한사항이 인위적으로 추가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 의무교육에서 통제력 확보가 안 되는 것은 공적 책임의 측면에서 고등교육과 그 의미가 현저히 다른만큼 그 나름의 고민의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대학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이고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발상이 필요할 것 같다. 개별 가정에 지나친 관리책임을 지우는 것은 공교육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깨워서 학교 보내는' 것에 준하는, 비교적 간단한 관리만으로도 의무교육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묘안이 없을지 궁금하다.

입시도 문제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 많은 게 결정되는 지금의 입시체제에는 이런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역량이 근본적으로 없다. 사람별로 놓인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여러모로 갈리면서 엄청난 논란과 원한(?)이 발생할 것이며, 사교육이 가져 온 과도한 영향은 기존보다 더 커질 것이다.

일단 현행 체제 하에서 오래 준비해온, 입시가 임박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상황에 맞게 연착륙을 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좀 더 장기적으로, 이번 사태처럼 변동이 조금 생기더라도 학생들이 크게 동요하거나 원한을 갖지 않을만한 튼튼한 입시제도가 필요하다.

여러모로 코로나19 사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능력을 테스트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그 일상적인 작동방식마저 전면적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가 매 순간 비상 체제일 수 없으므로, 재난은 그 극복 과정에서 많은 비일상성과 불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재난에 의해 지나치게 손상되지 않는 제도라면, 대체로 일상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스트레스를 덜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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