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노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요구하는 정서에 관한 담론이 핫한 모양이다. 여러 성취지위 중에서도 특히 '등용문' 느낌이 강한 지위(대학, 고시, 공기업 등)들에 대해 그런 정서가 많이 표출되는 것 같다. 이번 인국공 논란도 (적어도 언론이 그렇게 연결짓는 방식을 따른다면) 그것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이런 식의 '공정한 노력->보상 시스템' 자체가 그리 보편적이진 않다. 이런 시스템에 대해 (1) 여러 정보를 잘 알고 있고, (2) 속할 예정이거나 속해 본 적 있으며, 결정적으로 (3) 그 속에서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을 할 기본적인 여건(가정에서 기다려줄 수 있는지 등)이 되는 계층도 꽤 한정적이다.
결국 이에 관계된 주요 계층은 특정한 이익관계 속에 놓인 특정한 계층인 건데, 이게 보편적 루트라는 사회적 믿음이 있다. 글공부가 업인 부류이다 보니 실제 발화권력과 언어적 능력도 비교적 갖춘 편이다. 또한 학창시절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험공부의 절대적 우선성(?)을 규범으로 체화하고 있는데다, 꼭 저런 자리들이 아니더라도 모든 성취지위에 어느 정도는 노력->보상이라는 요소가 있으므로, 저 시스템에 딱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어느 정도 공감대를 얻을 여지도 꽤 있어보인다.
그러면서도 21세기 이후의 사회적 기조는 그런 루트가 보편적이지 않음을 드러내려는, 혹은 보편적이지 않도록 만들려는 방향인 경우가 많아 이들은 여러모로 당국과의 알력이 있고 실제로 그런 정책들에 대한 반동으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강력함에 주목하여, 저걸 아예 시대정신으로 승격(?)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어서 요새 이런 게 핫해지고, 또 그 반작용으로 여러모로 조소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한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위와 같은 다소 거친 인상비평 이상은 못 할 것 같고, 이 글은 사실 그냥 일기 같은 건데 하필 시사이슈와 얽히길래 여기에 써보는 것이다. 나는 저런 이슈들에 대해 잘 모르고 정서적 공감대도 적은데, 바로 그렇다는 사실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반쯤은 소외감을, 반쯤은 묘한 부심을 가져 왔다. 잘 모르는 이유는 아마 위의 (1), (2)를 갖추지 못해서일 것이다. 일단 (3)을 만족하는 가정환경임에도 집에서 그런 사회적 루트들에 대해 딱히 적극적으로 알려주거나 보여주는 편이 아니었고 진로에 대한 권유도 크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지 뭐 하는, 어찌보면 유아적인(?) 생각을 오랫동안 유지한 것 같다. 노력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전형적인 방법으로부터 밀려난 건지, 내가 일부러 벗어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주변에 비해 내가 저런 것에서 정서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기질적으로도 생활을 통제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식의 노력을 해 본 경험이 많지 않기도 하다. 오죽하면 집에서도 나한테 수능이나 고시 타입은 절대 아닌 것 같다고 했겠나. 주로 매 순간 서 있는 위치에서 재밌는 걸 하고 재미없는 걸 안 하는 길을 찾기 위한 메타적인 노력만을 많이 한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상태가 됐는데, 이게 약점이 되게 많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저런 공부 하고 싶다는 탐색전만 깔짝깔짝 많이 해봤고 정작 공부는 그리 열심히 안했다보니(...) 주변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다들 비슷한 걸 하는데 나는 그게 재밌으니까 성과가 높았던 거고, 학부에서는 아무거나 다 해도 되고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환경에 갑자기 expose되다 보니까 그런 차이점을 극명하게 체험한 게 아닐까 한다. 물론 메타적인 노력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개별적인 태스크들도 충실히 뚫어낸다면 퍼포먼스가 높겠으나, 내 경우 후자가 안됐던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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