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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임에도 학부모 단톡방이 존재한다는 소리에 의대생들이 조롱을 받는 모양이다. 그런 반응들은 표면적으로 비웃음이지만, 그 네트워크가 효과적인 재생산의 도구로 기능할 거라는 데서 오는 묘한 씁쓸함도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아예 다른 얘기긴 하지만, 비록 성인들이지만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보호해야 마땅한 집단도 필자의 생각엔 분명히 있다. 바로 군대에 가 있는 병사들이다.
군인이 겪는 여러 제한과 압박 중에 ▲군대의 특수성에 의해 요구되어 마땅한 부분과 ▲그렇지 않고 허용해줄 수 있음에도 안 해 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한국군 병사들이 겪는 것 중 후자에 해당하는 게 꽤 많다는 데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에야 해결된 핸드폰 소지다.
병사 개인이 그런 걸 구분해서 요구하기 어렵다. 사회 초년생이라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렇다는 것도 틀리진 않은데, 좀 더 근본적으로 상명하복 질서가 생활 전반에 매우 내밀하게 파고들어 있는 군대의 구조 때문에 그렇다고 봐야 한다.
군에 대한 민간감시 차원의 여러 공적 제도를 병사 개인이 직접 활용하기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러한 환경은 분명히 보완이 필요하다. 개인의 신뢰할 만한 대리자로서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군대는 이들의 요청에 대해 지금보단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기밀 유지 때문이 아니라 자기 보신과 사건 은폐를 위해 병사 가족들한테까지 고압적 비협조로 일관하는 일이 그동안 많지 않았나.
물론 이게 생각대로 제대로 안 돌아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 부모가 자식을 챙기는 건 사적인 것이며, 공적 보호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군대에 대해 병사 부모들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하게 되면, 대리인으로서의 부모들이 다 같이 합심해서 병사들의 권리 일반을 공적으로 챙겨주는 것보다는, 권력 가진 부모들, 싸울 줄 아는 부모들의 사적인 제 자식 챙기기로 흘러갈 가능성이 무척 높다.
그러면 이게 요즘 비웃음 받는 의대 부모 단톡방과 대체 뭐가 다른가? 바로 당사자들이 기본권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제한받고 있으며, 그에 대해 국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해명하고 조정해야 할 군대라는 조직이 수십 년간 뻔뻔하게 나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술한 부작용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군대와 관련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저런 게 지금보단 활발히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적 토양에서 그런 부작용은 어느 정도 선에서 관리될 수 있어 보인다.
자녀의 학교 생활 및 입시에서는 물론이고, 직장 생활 등에까지 나서서 좌지우지하려 드는 '헬리콥터 부모'가 군대에서까지 사적인 부탁으로 악영향을 주는 것을 경계하는 의견도 물론 정당하다. 따라서 거창하게 말했지만, 필자가 얘기하는 건 사실 상식적이다: 사적으로 챙겨달라고 청탁하는 건 금지하되, 공적인 보호장치 및 민원창구는 확대해야 한다. 물론 이 두 가지의 구분이 모호한 게 난제지만 말이다.
이쯤 되면 최근 이슈를 하나 더 꺼내지 않을 수 없다. 현 법무부 장관이 당 대표 시절, 아들의 군대 휴가 미복귀 관련해서 챙기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에 대한 논란이다. 아들 서 모 씨의 휴가 미복귀가 원활히 처리된 것이, 위에서 언급한 '특수성에 의해 요구되면 안 되는 부분'에 해당하는지 '허용해 줄 수 있는 부분'에 해당하는지 필자가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진실은 많은 카투사 병사들이 그런 사례는 자기 경험상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진술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사례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사안은 간단하다. 부당한 영향력 행사이다. '허용되지 말아야 할 일이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만약 후자에 해당한다면 얘기가 좀 더 복잡해진다. 물론 부당한 영향력 행사인 건 변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일반인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는데, 소수에게만 허용된' 것이 문제라는 점에서, 비판을 위해 필요한 단계가 위보다 조금 더 복잡하다.
지위에 의한 특권 행사의 방식으로 기회의 부족을 극복할 때, 그 개인 차원에서는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획득한 것이 된다. 그러나 남들이 따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그런 획득과정은 공적이지 못하기에, 사회적 불평등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기회의 보편적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그 특권 행사를 옹호하는 것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적 논의는 오히려 축소되므로 국민 전체의 권익은 도리어 침해된다. 특수한 루트를 통한 권리획득이 나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를 휩쓴 조국 교수 자녀 논란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 인턴을 제대로 안 하고 1 저자로 실렸다는 것, 그리고 표창장을 허위로 발급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서 인턴을 할 기회 자체는, 많을수록 좋고 일반적일수록 좋다. 그런 공식적 루트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적 연락에 의해서 소수에게만 허용되는 기회가 존재했던 것은 분명히 문제적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어때야 할까? 그런 기회들을 없애는 것보다는, 그런 기회들이 실질적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하게 확대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조국 사태가 그런 '수시스러운' 기회들의 보편적 확대가 아닌, 수시 축소와 정시확대라는 정반대의 결론으로 이어진 것을 필자가 무척 반동적이라고 보는 이유이다.
군대 문제에서는 저런 것이 일상이다. 누군가가 어떤 과도한 제한사항을 특권적으로 극복하면, 사회는 그 제한사항 자체에 대해 재고하기보다는 특권 행사를 욕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은 사회의 당연한 속성이며 나는 이걸 비난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제한사항 자체를 논할 창구가 점점 좁아지는데, 군대라는 조직은 이런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이를 기회로 삼아 극복의 여지를 아예 차단해 버리며, 그에 대응할 당사자들의 정치적 결집력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말하는 필자 역시도, 자기 혼자만 빠져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그 특권적 개인을 욕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참으로 유감스럽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현역 군인들의 휴가 관리만 더 빡빡해지고 끝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군필자들이 많다. 병역과 관련해서 특혜 논란이 생겼을 때 이렇게 하향평준화식 대응으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일을 막으려면, 군대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의 구체적인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한 담론이 상시적으로 있어야 한다. 여당의 몇몇 의원들이 이번 논란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되려 분노를 자극하는 발언을 했는데, 군대가 왜 이토록 민감한 문제가 되었는가를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인이 특혜를 받았는지의 여부만 논의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현역판정률,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데 따른 불안감, 그리고 권익 침해가 만연한 군복무 환경 같은 것들도 공적인 논의의 주제가 되고 정치인들의 관심사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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