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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6일 목요일

임기응변식 여론대응이 아닌 중장기적 원칙과 기조를 바란다

확고한 기조가 없이 사안별로, 혹은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정부여당 옹호 논리가 만들어져서 유통되는게 상당히 많이 보인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싶긴 하지만 나중에 보면 흑역사인 것도 많을 것이다.


민주당이 리버럴세력으로 확고한 기조를 잡고 자리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쩌면 나만의) 처음의 기대가 물론 사안별로 꽤나 달성된 부분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그간 민주당이 축적하고 주장해온 기조와 반대로 가는데도 위기감을 갖지 못하고 옹호 일변도로 나가고있는 점들도 많다. 자유를 침해하는것 아니냐는 반대진영의 비판에 자꾸만 더 연료를 제공하는 최근의 몇몇 입법시도들을 포함한 얘기다.

(리버럴로서 기조가 있어야 한다는게 어떤 건지 또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극단주의를 '상대방이어서' 비판하는게 아니라 '극단주의여서' 비판할수 있어야 건강한 민주세력이 아닌가 이런 느낌인 건데, 민주정치에서 이건 조금 조심스러운 주장일수도 있긴 하겠다.)

자유, 인권 등의 보편가치를 둘러싼 큰 그림들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 실패하고 나니까 타국사례를 봐도 원래 선진국 수도권은 엄청 비싸다, 원래 월세 사는 사람이 많은 게 당연하다 이런 식으로 묘하게 옹호하는 의견도 많은데, 당장 집 구하기 어렵게 된 사람들한테 그 말이 어떻게 들릴지를 간과하는 언행인 듯하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에 SMR 밀어주자는 게 꽤나 히트친 것도 (사실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뜬금없지만 아무렴좋아 느낌이었던 거 같긴 한데) 에너지정책 및 관련 알앤디 정책에 있어서의 어떤 일관된 기조에 의해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인들과 정치 고관심층의 상호작용 속에서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채택되거나 기각되는 그런 것중에 하나일 뿐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사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걸 처음 느낀 것도 예전에 '원전 해체기술' 밀어 줄 때였다. 원전해체가 마치 원전산업의 지속가능한 차세대기술이자 탈원전 기조 속에서 너네가 살 길이라는 식으로 원전업계한테 메시지 던져준 것인데...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꽤 많이 퍼져있고, 그것이 유통되는 방식 또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방책으로서에 가까운 듯했다.

정작 대통령은 오히려 원전에 대해 너무나 확실하게 의중을 가지고 있어 이를 의식한 청와대 비서진들과 산업부가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정도였던걸 감안하면, 지지자들의 이러한 임기응변식 여론 대응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중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확실한 의중이 있음에도 그걸 정확한 언어로 대중 앞에서 설득하는 일을 꺼리는 편이라면, 지지그룹이 이렇게 상황에 따라 대응논리를 유통시키며 지지고볶고 하는 성향을 갖게 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다시 부동산 얘기로 돌아오면, 월세 살아도 괜찮다라고 할 거면 부동산정책 실패 하기 전에 미리 그 말을 하던가, 혹은 그런 새로운 방향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도록 욕망의 구조와 인식을 바꿀수 있는 따뜻한 대안을 얘기하던가 해야 했다. 점점 부동산으로 실질적 계급 고착화되는게 자연스러운 수순인지 (그치만 설령 자연스럽더라도 그걸 가능한 완화하고 기회를 여는게 평등의 가치 같긴 함) 의 여부와 별개로, 정책에 의해 집값상승이 부스트된 게 분명한데... 내집마련 하고 싶다는 꿈 자체가 잘못된거라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늘 말하지만 대중들의 의지는 비판과 계도의 대상이 아닌, 받아들여야 하는 (그러나 정석적인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는) '자연현상'처럼 대해야 하는 면이 있다. 처음엔 집값 잡겠다고 했다가 폭등하고 나니 이제는 욕망이 잘못됐다는 훈계를 하고, 그에 대한 반발으로 지면이 채워진다. 이런 상황을 넘어 좀더 건설적인 얘기들을 많이 보고싶다.

여하튼 이렇게 동적으로(?) 여러가지 옹호 논리가 유통되는 것이 수준높은 민주정치에 도움이 되려면, 정부가 무언가를 원칙에 근거한 확실한 (그리고 확실히 작동하는) 기조로 추진하고 지속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공격적인 비판들도 수용하는 것과 활발하게 조화가 되어야 할텐데 그런 면모들이 약해지는 거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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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5일 일요일

에반게리온: 신적인 것의 양적 표상

에반게리온 지금까지 봤던 편들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이카리신지의 자아 및 성장과 관련된 주제의식을 내 경우엔 잘 캐치해내거나 공감하지는 못했다. 제일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바이오한 것과 정신적인 것을 병치시켜 숭고감을 연출하고 신적인 것을 표상해내는 방식, 그리고 메카닉하다고 부르기엔 애매한 에반게리온 특유의 공허하고 거대한 인공물들로써 인간들이 그 신적인 것과 대립하면서도 제어하고 활용하는 방식 등 다소 표면적인 설정과 연출들이었다. 이거 메타-중2병일지도...? 하여튼 그랬다.

AT필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작품 자체로부터도 대충은 느꼈지만 여러가지 해설을 보고 아 이런거구나, 무척 매력적이다 싶었는데, 이걸 연결고리로 해서 상술한 그런 주제의식에 대한 공감에 가 닿을 수도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가 봤었던 타 작품들은 (물론 나름대로의 고민은 있었겠지만) 신화들로부터 설정과 인물 등 모티브를 빌려오고 압도감을 연출해 낼지언정 결국엔 아우라를 다소 약화시킨다고 느껴진 반면, 에반게리온의 경우에는 설정 및 연출의 매우 핵심적인 부분에 신화적 구성방식이 자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TV시리즈와 신극장판 서만 봤는데, 이번에 나온 마지막편을 보기 전에 아직 안 본 EoE, 신극장판 파, Q도 한번 꼭 봐야겠다. 그런 뒤 여러가지 해설을 보면 에바에 대한 이해가 좀더 깊어질수도 있을 것 같고.
하여튼 만화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본 것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은 연출과 설정이 압도감을 주면서 그에 대한 작품의 셀프-호들갑이 심하지 않은 그런 작품들(혹은 그렇지 않은 작품일지라도 그러한 포인트들)이었다. 인터넷에서 소개받고 어렵게 구해 읽었던 브레임(BLAME!)도 그 중 하나다.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판을 봤었는데 장면들이 멋지지만 만화책으로 봤을 때의 맛은 안 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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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14일 토요일

헌법적 가치와 원칙에 충실한 민주시민교육을 바란다

시민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사회과 등에 원래부터 내용이 있는 헌법교육이나 자유, 권리 등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켜서 편성한다면야 적극 찬성하는 편이다. 특정 정파가 좋아하고 다른 정파가 싫어할 만한 내용이더라도 그것은 우연에 불과하며, 추구하도록 되어있는 헌법적 가치라면 편성하는것이 옳다. 통일이라던가 보편적 인권교육 같은 게 대표적. 내용상에서 삐끗하는 경우가 많지만 조정해나가야 할 일인거고.


그러나 현행 시민교육 중에서 특히 민주시민교육은 (실제 현장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모르지만) 그 교과서 등을 봤을때, 헌법적 가치만으로 판단이 어렵고 입장이 갈리는 이슈들에 대해서까지 상당히 직접적으로 집권여당 및 협력적인 정치단체들의 신념을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상당히 문제적으로 보인다. 특히 탈핵과 같은 경우에는 시민교육의 특정 챕터가 아니라 아예 별도의 교과서 및 교육자료가 제작되어있기도 하다.

그런거 하나하나가 업보 스택을 쌓는것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인데, 정권교체와 같은 타의적인 모멘텀 없이 자정이 가능할지 회의적이다. 이런 종류의 이슈는 상대진영을 향해 꼬우면 너네도 하라는 식으로 해서 자강두천 되는것이 일반적 수순인데, 사실은 정권을 잡은 입장에서 선제적으로 안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이 정권의 민주성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말이다.

만약 어차피 선택사항이고 현장에서 안쓰면 되지 않냐고 반박하더라도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 역사교과서도 결과적으로는 선택을 거의 못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과서의 존재를 가능케한 모종의 인식(나아가 정권수뇌부 및 전직 군인 단체 등의 구체적인 개입) 자체가 문제였던 것 아닌가.

물론 이번 정권이 돌아가는 방식상, 이런게 100% 탑다운으로 일사불란하게 흘러간 거라기보다는 시민단체들과 지자체, 교육청의 관계 속에서 상호적으로 구성됐을 가능성도 없진 않을거다. 설령 그렇다 해도 중앙에서부터 시민교육에 대한 원칙이 확실히 서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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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7일 토요일

과학 지망생들의 정서에 관하여: 지위의 적극적 인식이 지원을 정당화한다

이공계 지망하는 우수 학생들 중 꽤 많은 수가 왜 이렇게 자신들과 '일반인'을 나눠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저 단어를 많이 사용함). 설령 무시하는 의도가 아니라 건조하게 '과학 비전공자' 정도를 뜻하는 것이더라도, 상당히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 하나의 단어일 뿐이지만 그 단어 사용 자체만 말하는것은 아니고... 소위 영재교육 테크나 그 근처에 계셨던분들은 여기서 말하는 일반인과 자신들을 나눈다는 게 어떤 분위기를 일컫는지 느낌 아실 것임.


특히 공부를 단순히 입신양명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과학지식 자체에 대한 지적인 흥미가 클수록 오히려 더 그러는 것 같아서 안타까움. 그러나 공부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전자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발화는 너디한 과학 덕후로서 나오는 자조/불만 섞인 묘한 부심 같은 게 아니라, 공부잘하는 엘리트의 특권의식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고, 이건 잘못하다간 엄청난 어그로가 될 수 있는듯. 뭐랄까 그런 분위기에는 경제적, 계급적인 귀족의식은 명시적으론 크게 안 드러나는 데 비해 지적인 엘리트의식이 느껴진다 해야되나... 그러나 후자도 종국에는 implicitly 계급적 귀족의식에 가 닿기 쉬운듯함.

나도 장기간의 가정교육으로 억눌러 놔서 그렇지 원래대로(?)라면 그런 정서에 더 깊게 몰입했을 것 같기 때문에 이건 자아비판이기도 하다. 실제로 과학기술계가 외부 풍파에 휩싸이는 사건이 생길때 나오는 온갖 설화들을 보면 안 해도 될 말이 혓바닥에서 꿈틀거리기도 하고.

어떻게 예방할수 있을까? 일단 하드사이언스에 특별히 관심 없었거나 학창시절 과학을 잘하지 않았더라도 과학기술산업에 종사하거나 대학원 가서 연구 하면 넓은 의미의 과학기술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사람들보다 영재교육 테크를 지망하는 과학 애호가 학생들이 오히려 더 '일반인'이라는 생각을 일부러라도 갖도록 해야 한다. 설령 영재교육 대상자 중에서도 정말로 우수해서 실제 협의의 과학기술 활동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경우일지라도 (왜냐하면 그럴수록 제일 부각되고 제일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현 정권 들어 일어난 자사고, 외고 관련한 풍파에서 과학고와 영재학교가 비교적 예외가 되고 있는데 난 이게 엄청나게 운이 좋은거라고 생각함. 위에 말한 정서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도록, 나아가 실제로 그러한 정서를 갖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교육할 때에야 비로소 과학영재교육이 장기적으로 특권교육이라는 오명 없이 민주적으로 정당화될 것임.

이는 사회에 신경쓰지 말고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사회적 행위자들의 관계와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고 적극적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비로소 가능함. 풍파에서 자유로운 환경은 내츄럴하게 주어지는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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