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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국립현대미술관 2021 올해의작가상 관람

북촌 한옥마을을 산책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21 올해의작가상 수상작들을 관람했다.


오민 작가는 예전에 다른 작품으로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사물들의 끊임없는 재배열이라는 수행을 통해 음악의 형식과 그 창작행위를 모사하고 표현하는 비디오작업이었다. 오늘 본 《헤테로포니》는 악곡의 형식보다는 아마도 한단계 더 직관적인 차원에서, 음향이 발생하고 통제되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종합되는 과정을 전시실 전체 규모에서 체험할수 있는 대형 작품이었다.


땅과 인간의 관계로 기술되는 문명사, 그리고 그 속에서의 소유개념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최찬숙 작가의 두개의 작품(《60호》, 《qbit to adam》)도 인상깊었다. 《60호》에서는 dmz근처 100여개의 선전용 마을이라는 경계지대의 사람들을 미시적으로 조명하는 리얼리즘적 작업을 그 배경이 되는 거시적 국제관계와 병치하면서, 일상을 규정하는 제도의 힘이 극대화되는 공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같은공간의 《qbit to adam》에서 제시되는 땅과 인간에 대한 빅히스토리(?)와 또 한번 엮이면서 좀더 근본적인 통찰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준다.


선과 면이 조형되는 방식에 대한 순수미술적 사유와, 사회적 의식을 절묘하게 결합한 방정아 작가의 회화작품들 《흐물흐물》도 흥미로웠다. 각기 다른 문제를 단일 원인으로 엮어내는 방식에는 개인적으로 꽤 회의적이지만 시각적 압도감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형회화의 힘에는 충분히 공감할수 있었다.


올해의작가상을 보고 나서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현대차 시리즈)도 관람했다. 대성동 마을을 소재로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두 영상물이 서로 등지고 상영되는데 연출의 디테일과, 모호하지 않고 무척 선명한 촬영에서 마치 케이팝 뮤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영상 중 한쪽은 과거, 한쪽은 미래인데 어떤 단서로 연결된다는 점도 뭔가 케이팝같았다... 음향과 조명을 상당히 잘써서, 한쪽 영상을 보면서 다른쪽 영상이 어떤 상황일지 상상하게끔 하는데 작가의 의도가 매우 높은밀도로 깔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전시실이라는 공간과 결합하여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전시되면서 의미가 극대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자료를 시공간상에 적절히 배열하여 일련의 경험을 제공하는것 자체가 미술적인 작업이 됨을 상기시켜주었다. 이는 심지어 오늘 본것중 전통적 의미의 미술에 가장 가까운 방정아 작가의 회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부때 전시예술공학이라는 인기강좌가 있었는데 못들어봐서 아쉽다.


한옥마을에서는 예쁜 이태리음식점 플로라에 갔다. 거의 3-4년만에 다시 왔는데 예나 지금이나 메인식재료를 임팩트있게 내세우는건 만족스럽지만 가격대비 맛은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블루보틀에도 처음 가봤다. 기와의 바다 같은 2층뷰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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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좌/우파가 적정기술을 전유하는 방식, 그리고 운동권 동아리의 추억

학부 1학년 때 적정기술 동아리라고 된 홍보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연락해 보고 갈비탕도 얻어 먹었는데 알고보니 민족주의 성향 운동권 동아리였던 적이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른 동아리에서도 꽤 오래 활동해서 학생사회에서 이름 자주 보게 되는 분이더라.


그분이 그 단체 이름으로 적정기술 대회도 참가한 기록이 있는걸 봐서 아마 그당시 실제 개인적인 관심사랑, 본인이 해 오던 (협의의)정치적 활동이랑 엮어서 겸사겸사 단체 운영한 게 아닐까 생각됨.


내가 알기론 적정기술이란 게 백그라운드가 꽤 복잡해서, 공학 및 국제협력 부문의 제도권에서도 밀어주는 등 '불온하지' 않은 자본주의질서 속에서도 꽤 히트를 쳤지만, 사상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래디컬한 경제적/문화적 좌파 쪽에서도 많이 관심을 가지고 좌파적 근거를 정립하려고 했던 개념임. 물론 반대로 적정기술이 우파와 잘어울린다는 시각도 많고. 아무튼 그런 맥락까지 의도 된것인지(혹은 그런 관심과 정확히 동일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걸 생각해보면 재밌긴 하다.


그 동아리에서 사과모랑 같이 우희종 교수 강연도 개최해서 거기에도 한번 감. 대중적으로는 4대강 반대랑 더불어시민당 대표로 잘알려진 분인데 당시 강연 주제까지는 잘 기억은 안 나고... 암튼 소위 말하는 운동권 동아리구나 하는걸 이때 확신을 했다. 교수님인데 그런 자리에 온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암튼 위에 말한 밥 얻어먹은 거랑 이때 강연 간거 말고 여기서 뭔가 더 한 기억은 없음. 적정기술 궁금해서 들어갔는데 관련해서 뭔가 알려주는것이 없으니...


그런데 내 기억이 맞다면 몇년 뒤에는 그 동아리가 이름을 그대로 두고 적정기술이 아니라 아예 다른 테마로 바꾼 포스터를 봤었다. 역시나 조직은 따로 있고 동아리형태로 걸어두고 홍보 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확 들었다.


여하튼 이쪽은 짬이 있는만큼, 정돈되고 확실한 기조가 있는 텍스트를 생산하는 실력, 정치적으로 각재는 실력 자체는 아마추어리즘 종종 내보이는 반운동권에 비해서 뛰어나다고 본다. 그렇지만 동아리에 걸어두는 활동내용 말고 진의도, 조직도 따로 있다는 느낌때문에 마음편히 대하기는 어려웠다고 회고해본다.


운동권이 축소되면서, 거기서 나온 소스들을 아예 탈색시켜서 학생자치활동에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혁투가를 학과 특징에 맞게 재밌게 개사한 과가라던가) 그런경우는 정치적인 색채나 의도는 전혀 없는경우가 많다. 실제 옛날과의 연속성을 가지고 활동하면서 남아있지만 활동방식은 여전히 다소 은밀한 민족주의 좌파 조직들과의 대조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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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8일 수요일

최신의 text-to-image generation 모델들: archetype에 대한 창의적 재조합자의 출현

페친분들이 올리셔서 알게된 https://app.wombo.art 라는 사이트에서 text-to-image generation을 직접 해 볼 수 있다. 아무 문장이나 넣으면 상응하는 그림을 그려 주는데 창의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척 잘 해 준다. 지금까지 봤던 여러 신기한 AI 필터들이나 GauGAN 같은 것들에 비해서도 격이 다른듯...


그리고 진짜 이게 될까 싶은것도 척척 알아듣고 그려주는데, 기존에 학습된 오브젝트들만으로 하는게 아니라 즉석에서 구글링을 해서 뭔지 찾아내는 방식인 것 같음. 그것들을 가지고 기존에 없던 조합들까지 잘 표현해 준다는 것도 강점이고.


몇가지 잘된 예시들을 첨부한다 (하단 Facebook 게시물 링크). 대응되는 지시문은 각 사진 하단에 써 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이 인터넷상에 형성해 놓은 어떤 대상이나 개념에 대한 공통적 archetype을 얘가 뽑아낸 뒤에 재조합해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듯.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의 퀄리티로 실현된 기분임.


뭔가 상황을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얘한테 시켜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다거나 할 수도 있을 것. 그 전에 이걸로 이것저것 해보는 것 그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다만 해보실 분들이 주의할 점은 사람과 관련된 건 주로 징그럽거나 선정적으로 되는 경우가 많아서 비위가 상할 수 있음. 첨부한 결과들도 사람에 따라 징그러울수 있긴 하다.

인공지능이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의 조수로서의 머신러닝에 특별히 많은 흥미와 기대를 갖고 있는데, 이런 방향으로 재밌는게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 2022.05.28 내용추가: 그리고 요즈음은 diffusion model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것보다 훨씬 선명한 이미지들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모델 크기와 학습 시간의 이슈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state-of-the-art에서 디퓨전 모델이 줄세우기를 하고 있는데 내 전공분야인 통계물리학에서 비롯된 모형이 머신러닝 커뮤니티에서 최전선에 쓰인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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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유를 훼손하는가? 도그마와 정설을 구분하자

어떤 분야에서 이미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로 확립된 정설이 있을 때, 그걸 뒤집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없이 의심을 하면서, 그 정설이 부당하게 권위를 취하고 있다며 의심할 자유를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진화 부정을 비롯한 각종 유사과학이 대표적이다.


잊을만하면 중앙 정치무대에 소환되지만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5.18을 둘러싼 극우적 발언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주로 합리성과 냉철함을 내세우지만 그 논리적 구조와 정치적 지위는 상술한 숱한 유사과학 및 음모론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5.18에 대해 역사적으로 확립된 평가를 대놓고 부정하는 경우는 은근히 드물며, 민주화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인정한다고 주로 말한다. 그러면서도 의심할 자유 그 자체를 계속 외친다. 이 말대로면 도대체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지 알 수가 없는지라 사실 더 이상하다. 실제로 어떤 의심을 품고있지만 말하지 않고 있거나, 정설이긴 할지라도 그것이 헤게모니를 차지하고있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들거나 둘중에 하나일 거다. 그것을 파헤칠 생각은 없다.


물론 악인에게도 변호사가 필요한것처럼 논란성 발언에도 자유는 필요하지 않냐는 주장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단지 그거라면 무척 중요한 얘기고 당연히 동감하는데, 문제는 표현의 자유가 대체 얼마나 침해가 되었길래 그런 발언을 해온 노재승이 공당의 선대위원장으로 임명되고 그러겠냐는 거다. 표현의 자유 침해의 실체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발언내용과 명확히 선긋기를 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잘못된 주장을 링 위에 올리고 싶다는 말에 다름 아니게 되며 이는 자유로운 비판의 적법한 대상이다.


나도 단톡방 같은 데서 내 생각과 다른 말을 볼 때는 무조건 열내지 않고 최대한 차근차근 얘기하려는 편이다. 애초에 찍어누를(?) 언변이 별로 안되기도 하고. 그러나 공인을 논하는 태도는 다르다. 사인이던 시절 발언이라며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도 없는 상황인 만큼, 영입 철회가 안되고 이대로 간다면 음모론의 공적 권위로의 부당한 추인을 가만히 지켜보는 셈이다.


과연 누가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가? 자유사회에서 어떤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미 확립된 정론을 향해 근거가 불충분한 의심을 표했다가 공적인 비판을 받을때 자신들의 자유가 침해되었다고 외치는 것은 또한 얼마나 개복치같은가. 그 민감함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안 들면 성역화라고 막연한 불만을 가질 것이 아니라 섬세하고 올바르고 진지하게 토픽을 다루는 방법부터 익혀야한다. 민감함을 이해하려는 공부와, 상황에 맞는 질문이 필요하다. 성역화라는 그들의 진단이 과장된 언사라고 생각하지만, 설령 그런 게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그 원인이 어디 있는지는 자명할것이다.


물론 어떤 헤게모니가 또다른 부당한 도그마로 작용할 가능성은 당연히 경계해야 하며, 그걸 막는 과정에서 사회가 한단계 진보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론적인 얘기고, 현재 이들의 문제제기 내용과 방식은 도그마틱한 권위와 정설의 권위를 혼동하고 있으므로 그 필요성이 전혀 설득력있지 않다. 그런 과정은 극단주의적/음모론적 주장을 배제한 판에서 알아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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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일 수요일

가루삼겹살의 수학: 사영 연산자를 도입하여 표현하기

가루삼겹살 밈을 복습하다가 생각난 건데, 삼겹살을 가루로 만드는 operator를 일종의 projection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한 삼겹살을 x \in V라 하고 가루 연산자를 P라고 할 때, 가루삼겹살 Px \in P(V)에 대해 Px는 x와 다르지만 P(Px)=Px 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어떤 센스에서 linear한지 그리고 어떤 서브스페이스로 내려 주는 건지는 잘 정의를 해야겠지만, 대충 full 상태공간 V에서 구성 입자들의 상대적 위치관계가 상태 1에서 상태 2로 뒤섞였을 때도 두 상태를 같게 보는 축이 있을 것이다. 그걸로만 스팬되는 게 P(V)라고 하면 되고, 아마 삼겹살의 양에 해당하는 것일 듯하다 (구성 물질이 동일하다는 전제 하에 가루의 identification은 양이 중요하지 디테일은 안 중요하니까). 반면에 V를 스팬하기위해 추가되어야 하는 기저들은 상대적 위치관계와 관련된 방향들일 것이다.

또한 한 번 갈았을 때 믹서의 성능이 허용하는 최대한까지 갈려서, 한번 가루가 된 건 더 이상 갈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니면 더 갈리더라도 사람 눈에 어차피 가루니까 똑같이 취급하거나). 이런 것까지가 물리(?)고 이 다음부터는 대수의 영역이겠다.

원본 영상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표현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삼겹살: x
가루삼겹살: Px
가루삼겹살을 입힌 삼겹살: Px + y
가루삼겹살을 입힌 삼겹살을 간 삼겹살: P(Px + y) = Px + Py = P(x+y)

이와 달리 대중문화에서 가루만들기의 대표 사례인 MCU의 핑거스냅은 공간을 어떻게 정의해 봐도 프로젝션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그냥 스톤 가진 사람이 스냅 할 때마다 그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 (즉 매번 다른 연산자) 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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